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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Aug 07. 2023

여행이 주는 두려움과 기쁨

박상영 에세이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사는 내내 그런 생각을 해왔다.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 나는 살고 있다.’ 뭔가를 위해 계속 나아가는데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던 긴 시간이 나에게 있었다.     



대학교 2학년, 처음 사귀게 되었던 남자친구가 어느 날 부모님의 차를 빌려왔다. 그는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2개를 사 왔고, 나에게 “이걸 먹으면서 드라이브하자”라고 했다. 드라이브라는 건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앞을 향해 달리는 차 조수석에 앉아 양손에 하나씩 아이스크림을 든 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기다리는 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한참 달리던 중 본인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주지 먹지도 않는 나를 이상하게 여긴 운전자가 놀라며 말했다. 이후 대화는 이랬다. “왜 안 먹어?” “아. 어디에 도착해야 먹을 수 있는 거 아니야?” “드라이브! 차로 운전하면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는 거였어. 드라이브 안 해봤어?”      



나는 양손의 아이스크림을 바라보며 난감해했다. 나는 별 수없이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내밀었고, 내 몫의 아이스크림을 급하게 마시듯 먹어치웠다.      



이후 나는 그 연애에서 (다행히도) 벗어났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했다. 목적지를 기다리며 아이스크림을 먹길 미루다가 녹여버리는 것과 비슷한 일들은 이후에도 자주 일어났다. 이것만 마치면 해야지 하는 하는 안부 연락하기,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 갖기, 가족들과 시간 보내기, 나 혼자만의 여유 등. 지금 생각해 보니 무엇보다 소중한 것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나갔다. 


나에게 두 번 다시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이스크림 녹듯 모든 게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다른 기회가 또 오겠지, 나는 아직 행복에 도착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믿었다.     



물론 이후 여러 번 태도를 바꿔가질 기회는 있었다. 충격적인 일도, 슬펐던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변하지 못했다. 많은 일을 겪었음에도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라는 생각을 매일 한다. 행복감을 느끼는 일도 마음 놓고 사는 일도 아직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몇 개의 아이스크림을 더 잃어야 정신을 차릴까. 


나는 오늘도 무지하게 크고 웬만해선 녹지 않는 아이스크림만이 진짜라고, 그 진짜가 언젠간 나에게 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눈앞의 작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외면하고 있다. 그 아이스크림에 평안, 안도, 행복감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쯤 나에게 대단한 평안, 안도, 행복감이 찾아올 것인가. 나는 아직 그것에 도착하지 못한 채 매일같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런 나에게 박상영 작가의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은 현존을 위한 연습문제 같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떠나면 나아지겠지, 이곳을 벗어나면 좋아질 거야 하며 벌어지는 여행들에서 작가는 끊임없이 “나를 진정으로 쉬게 할” 휴식은 어떤 방법으로 이룩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곳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다른 곳에서 일어날 가능성을 찾아다니던 그는 “어쩌면,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 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 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마음을 졸였다. 여행을 힘들어하는 나는 여행 내내 집을, 나의 일상과 루틴을 그리워한다. 이런 나라서 여러 장소와 상황에서 작가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나도 함께 겪는 고단함까지 느껴졌다. ‘피곤해, 힘들어 보여, 지친다 지쳐’ 이렇게 생각하며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책을 다 읽은 나는 소파에 누워 배를 긁으며 배우자에게 물었다. ‘우리 여행 안 가나?’      



집과 혼자만의 고독을 사랑하는 내향인을 여행으로 등 떠미는 이상하고 신기한 책이다. 나는 또 여행지에서 집을, 고요함을 그리워하겠지만 이번에는 조금 가뿐하게 떠날 것 같다. 나는 분명 “열렬히 일상에 대해 생각”하겠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을 것 같다.      


내가 왜 여행을 힘들어하는지 연습문제들로 충분히 풀어봤으니까. 이제 내가 겪어볼 차례다. 쉬지 못하는 작가님의 성실한 글쓰기 덕분에 이렇게 내가 덕을 본다. 작가님의 평안과 숙면과 만수무강과 안전 여행을 기원한다.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의 10 문장          


- 나를 진정으로 쉬게 할 순도 100퍼센트 휴식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룩할 수 있을까?(12쪽)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김없이 여행을 떠나고, 고통받고, 또 집으로 돌아와 다시 일상을 살아갈 일말의 힘을 얻고는 한다.(15쪽)     


- 어쩌면,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 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 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15쪽)     


- 나는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고 그저 하루하루가 벅차게만 느껴졌다.(79쪽)    

 

- “휴식에도 질이 있어요.”(101쪽)     


- 세상에서 내가 가장 못 하는 게 있다면 생각을 멈추는 일일 거다.(102쪽)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까지고 그들을 기다려줄 여력이 있었다.(182쪽)     


- 우리는 각자의 술을 가슴에 품은 채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199쪽)     


- ‘나의 말’을 하고 싶어서, 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서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한 나는, 당시 나 자신을 지키며 세상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강박에 기달리고 있었다.(239쪽)     


- 이 글이 또 나를,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가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안고서.(260쪽)     


- 그러나 역설적으로 여행을 하는 중에 나는 가장 열렬히 일상에 대해 생각한다.(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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