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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Aug 04. 2023

살아내느라 생긴 힘으로 여태껏 살아왔다

최현숙 산문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문학동네


제목: 353페이지 인용


숨 쉬듯 쓰고, 그래야 살 수 있는 사람이 쓴 글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서 거죽을 뒤집어 속을 몽땅 내놓고 보여주는 이의 내장을 본 듯하다. 그가 이 책을 쓴 것은 자신이 품었던 질문들을 통과하는 과정을 타인을 위해 내놓은 일이라 생각한다.


이건 마치 자기 몸보다 훨씬 큰 망태를 이고 지고 다니던 이가 ‘너는 이렇게까지 무겁게 지고 다니지 말라’며 숨기고 싶은 살림살이까지 기꺼이 보여주는 일 같았다. 망설임 없이 줄줄 엮여 나오는 그의 이야기들에 아직 젊은 나는 실속을 차릴 생각부터 했다. 꼼꼼하게 그의 시행착오를 기억하려는 그런 마음으로 읽었다.


책 속의 그는 머리도 몸도 쉴 새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생각을 벼리고 처절하게 여러 갈래로 찢어발겨 생각해 내고 써낸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마음속 작은 불편함들, 타인의 시선과 표정, 얽히는 감정과 상황들을 놓치지 않으려 촉수를 내민다. 생각과 단어를 고르며 ‘게으르지 않은’ 생각과 글쓰기로 매일 길을 터간다.


노년에 막 발을 들여놓은 그의 길은 돌아보면 쭉 뻗고 깨끗한 길이 아닐 것이다. 누가 봐도 길이 없는 맨바닥을 비집고 그 아래로 들어가며 바득바득 길을 만들었을 것이다. 빛과 길이 없는데도 손으로라도 길을 파내며 들어가고 또 밖으로 나와서는 다른 길을 파들어가고 있는 사람.


그와 그의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바깥에서 대충 살핀 후 ‘여기에 길이 없네’하고 돌아서겠지만 그는 ‘그러든지 말던지’하며 오늘도 내일도 손으로 파내가며 길을 만들 것이다.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를 읽고, 그의 첫말이 내 안에서 움트는 것을 느낀다. 그의 시행착오가 나에게 큰 ‘쓸모’가 된 것 같다. "살아내느라 생긴 힘"으로 나도 잘 살아보고 싶어졌다.


먼저 늙어본 언니의 가방 털이가 이렇게 유용하다.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의 10 문장



- 그럼에도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전 생애를 바쳐도 부족한가보다.(8쪽)



- 느리고 집요하게 뒤지며 기록하자.(34쪽)



- 나는 누구이고, 내 길은 무엇인가?(35쪽)


- 피해든 욕망이든 혹은 비정상이든, 할머니들은 자기 성의 담지자이자 실천자이며 싸우고 전략하는 주체로 서고 있다. 인생 말년이어서 더 신나고 단호하다. 그래도 싫어 죽겠는 사람들은 그러라고 하고.(212쪽)



- 지지받지 못한 열정과 영리함 탓에 엄마들과 할머니들과 내 또래 여자들은 주변과 불화했고, 아픈 여자이자 미쳐버릴 것 같은 여자인 채로도 열나게 자신과 세상을 살아냈다.(221쪽)



- 나는 짧게 살든 병에 걸리든 나답게 사는 삶을 원하며, 나다움이라는 욕망의 연장선에서 동물들 역시 자신답게 살다 죽는 것이 가장 나으리라 가늠할 뿐이다.(235쪽)



- ‘몸소’는 나의 한계일 수 있지만, 나의 방식이다.(268쪽)


- 사람에 대한 내 관심은 죽음까지다.(315쪽)


- 빈곤을 바라보는 빈곤하지 않은/덜 빈곤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과 느낌과 해석들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빈곤을 밑천으로 전략하며 몸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말을 얻어듣는 일은 개인적으론 ‘더 추락해도 살아지겠구나’ 하는 안심을 얻고, 사회 속 저력(밑바닥 힘)을 확인하는 탐문이기도 하다.(334쪽)


- 살아내느라 생긴 힘으로 여태껏 살아왔다.(3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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