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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ice Feb 12. 2024

남편에 대한 이해

아이를 위해서 동맹관계여야 했다.

어느 노부부가 손을 맞잡고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 듯 걸어가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되겠지'라 는 생각을 하곤 했다. 젊은 시절 아등바등 사느라 서로를 자주 바라보지 못했어도 나이 들어 주변에 신경 쓸 일도 없어지고 둘이 남게 되면 길어진 하루가 심심하지 않게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일상을 보내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게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여느 노부부의 일상이고 내 노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런 더없이 소박할 것 같은 기대도 당연히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 깨닫는다. 노년의 다정한 부부의 모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그들이 함께 한 시간 동안의 노력이고 그것으로 생겨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쌓인 결과라는 것을. 그러기에 그런 바람이 소박한 게 아니라 부단히 노력하며 간절히 소망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고 큰 일이라는 것을 50을 바라보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이의 문제로 힘이 들고 불안할 때면 남편과의 관계가 소원한 상황이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 우울감은 그동안 내가 잘못 살아왔다는 생각으로 한없이 빠져들면서 내 인생이 실패투성이 인 것 같아 나를 더 괴롭게 만들었다. 

남편은 나와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런 생각은 나만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힘든 결혼생활을 참고 살아온 나만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남편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고 내 처지가 너무 불쌍하고 초라해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감정을 추스르고 한 발짝 물러나 생각해 보면 사람의 관계에서 오가는 감정은 언제나 상호적인 것이어서 내가 불행하다고 느꼈다면 상대방도 행복하지 않았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남편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남편이 행복하지 않다는 말에 화가 나는 내 감정이 오히려 이기적인 것이었다. 그렇게 그동안 나는 남편을 원망하고 내 처지를 한탄하면서 나와 주변을 불행하게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걷잡을 수 없이 엇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견딜 수 없는 우울감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지칠 때로 지친 상황에서 아이를 위해 내가 의지하고 도움을 청할 사람이 남편뿐이었다. 남편은 나에게 아이를 전적으로 자기에게 맡기고 자신의 방식에 어떠한 이의제기도 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나는 남편을 의지하면서도 남편을 믿지 못했다. 아이에 대한 불안이 급증되는 순간순간 마다 남편의 기다림의 방식이 답답하기만 했다. 아이에 대한 내 생각이나 내 요구에 남편은 어느 것도 공감해 주지 않았다. 아이에게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내가 아이를 더 망치고 있다는 남편의 비난에 가득 찬 훈계 속에서 수없이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쩌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아이에게 나는 철저히 거부당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내가 지금 아이를 대면해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나는 오늘도 기도하며 남편의 기다림의 방법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면서 남편의 상황을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매일매일 아이 식사를 챙기며 아이에게 회신 없는 한 줄 문자를 보내는 남편을 보면서 어느 순간 안쓰럽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아버지에 대한 정을 모르며 자랐을 남편이, 롤모델이 되어 줄 아버지가 없었던 남편이, 홀어머니의 아들로 세상의 편견 때문에 더없이 바르게만 살아왔을 남편이 정상적인 삶을 놓아버리고 은둔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얼마나 막막하고 답답했을까. 그리고 아버지의 빈자리만큼 누구보다 자신의 아들에게는 좋은 아버지가 되어 주고 싶었을 남편이 지금 얼마나 속상하고 허무할지 생각하니 남편에 대한 미움은 사라지고 한 사람으로 한없이 애처롭기만 하다.


부모의 역할은 부모가 되어야만 비로소 배워갈 수 있다. 

우리는 부족한 부모라서 더 서툴렀고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우리 둘의 소중한 아이라서 그냥 놓아버릴 수가 없다. 방법은 서툴러도 누구 못지않은 아이에 대한 사랑과 아이를 위한 마음이 고집세고 이기적인 정말 다른 두 사람을 강하게 결속하게 만드는 것 같다. 아이를 위해 우리 부부는 어느덧 그렇게 동맹관계가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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