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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데레사 Jul 05. 2019

태어나는 순간 주어지는 운명

인생의 페르마의 원리

이 책은 당신 자신의 죽음은 물론이요 당신과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한 책이다. (중략) 이 책에서 나는 애도를 표현하는 방법, 시신을 처리하는 방법, 죽음을 앞두고도 기쁠 수 있다는 낯설지만 명백한 사실을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정확히 무엇을 두려워할까?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기 몇 달 전과 몇 주 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사람은 죽을 때 그리고 죽은 다음에는 어떤 모습일까?

참 의미심장한 서문이다. 죽음이 무엇일까? 죽음을 왜 알아야 할까? 

이 책의 작가인 샐리 티스데일은 완화의료 분야의 전문가이자 작가로서 가족과 친구, 환자의 죽음을 일반인 보다 많이 목도하였으며 직접 시신을 처리하기도 하면서 우리가 그동안 외면해 왔던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충고한다. (이 책의 영문명은 Advice for future corpses: 미래의 시체들을 위한 충고 이다) 

얼마나 담담한 지는 목차를 보고도 알 수 있다. 


난 어릴 때부터 죽음을 듣고 인지 해왔지만, 아직 한 번도 시신을 보거나 장례에 참여한 적이 없어 죽음이라고 하면 막연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죽어가는 환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심경인지, 어떤 대화가 좋은지, 시체는 어떻게 처리하고 부패하는지, 애도가 어떤 신체적인 반응을 유발하는지 지식적으로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물론 안다고 해서 죽음을 잘 받아들일 지는 다른 문제다.


수십 년간 불교를 수행했고 죽어가는 사람 옆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통렬한 슬픔에 잠긴 몇 주 동안 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간의 경험은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해준 게 아니라 받아 들일 수 없음을 인식하게 해주었을 뿐이다. 

작가의 말이다. 전문가도 이러한데 나라고 이 책 한권 읽었다고 해서 죽음을 담담히 대하는 혜안을 얻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죽음에 대해 알아햐 하는 이유를 작가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대부분 죽음을 아주 막연하게 생각하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바로 내가, 누구보다 소중하고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나 자신이 죽을 거라는 사실을 퍼뜩 깨닫게 된다. 생각만 해도 섬뜩하지만 순식간에 스쳐 지나는 이런 통찰이 우리 삶을 변화시킨다 육신이 언젠가 소멸한다는 걸 알면, 이승을 하직해야 한다는 걸 알고나면, 우리는 달라진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전기에 감전된것 같은 충격과 달콤한 행복을 동시에 맛봤다. 사기그릇의 아름다움이 내 안에 있다니, 얼마나 멋진가!!


그렇다. 우리 모두 편안하고 좋은 죽음을 꿈 꾸지만, 그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충고를 들어야 하는 것은 어떻게 살 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광자가 어느 지점에 도달 할 지 미리 알고 그에 따라 굴절 각도를 결정하는 것 처럼 (페르마의 원리) 이 보다 훨씬 복잡다단 인생사를 사는 우리지만, 우리도 언젠가는 죽을거라는 사실을 인지하면 현재를 좀 더 의미있게 존재(being)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 책의 출판사의 브랜드도 비잉(being)이다. 아마 존재에 큰 무게를 둔 이름이 아닐까 싶다. 

더 잘 살기 위해, 의미있게 존재 하기 위해 우리는 죽음의 어떤 것들을 알아야 할까?

아래와 같이 단상을 적어 본다. 


육체의 죽음은 분리된 자아의 고통 없는 소멸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의 본질은 우주 공간처럼 무한히 펼쳐져 있다. 하지만 비행기가 구름 사이로 지나가면서 흔들릴 때면 다시 심장이 몹시 두근거린다. 유기체가 반응한다.

이쯤 되면 육신이 주책인지 정신이 주책인지 헷갈린다. 어쩌면 인간이 산다는 것은 정신과 육신 사이를 위태롭게 줄타기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정신이 육체를 또는 육체가 정신을 견인하며 불완전하게 공존하는 상태. 불완전, 역동을 긍정해야 한다.  완벽한 평형은 죽음이니까 말이다. 


호스피스 병원은 죽어가는 사람과 그 가족을 안심시켜주고 각종 지원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멋진 시설일 수 있다. 하지만 한심할 정도로 부적절한 시설로 전락할 수도 있다.

호스피스는 1차 의료 즉, 편두통이나 관절염 같은 병증에 대한 처치는 제공하지 않는다. 오직 불치병에 따르는 고통을 더는 처치만 제공하며 (1차 의료 제반 비용은 환자 부담) 가정형 호스피스는 더 열악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런 지점이 전문가만이 알려줄 수 있는 팁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임종을 앞둔 환자는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아야 오히려 더 편안하다. 그들도 때로는 갈증을 느끼지만, 물이나 음료가 그들의 갈증을 해소해주지 못한다. 임종 환자가 일주일 이상 전혀 먹거나 마시지 않아도 갈증이나 통증을 호소하지 않고 오히려 평온하게 죽음을 맞는 모습을 간호사와 의사는 수도 없이 목격한다.   

믿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을 알지 못 했다면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억지로 음식을 먹여서 구역질이나 호흡곤란을 야기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다. 정말이지 실질적인 조언이 수두룩 한 책이다.


"불치병에 걸린 환자에게서 생명 유지 장치를 떼어낼 때, 우리는 '플러그를 뽑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죽을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과도한 기술과 침습적 치료에서 환자를 '해방시켜주는 것'입니다. 죽을 자유를 주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돌보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연명치료의 중단은 여전히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된다. 연명치료가 무익한지 아닌지 알 도리가 없고 말을 못 하는 환자의 의지가 어떤지도 알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결정의 그날을 최대한 피하거나 늦추길 바란다. 그래도 벼락같이 그러한 운명의 날을 맞게 된다면, 참고해 볼 필요가 있는 의견이다.


뜬금없이 용서를 구하지도 마라.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일을 언급하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라. 그런 일은 죽어가는 사람이 할 일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옛날 일을 꺼내 바로잡거나 해명하려 든다. 지금은 그런 얘기를 꺼내 대화를 주도할 때가 아니다. 당신은 목격자이지 주인공이 아니다. 당신 짐은 당신이 져야 한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짊어지라고 요구하지 마라.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 작별인사를 한다는 것은 당황스러울 것이다. 해서 중언부언 하거나 불필요한 말을 할지도 모르지만, 임종을 앞둔 이의 시간은 산사람의 그것과 같지 않다. 나를 위한 말이 아니라 상대를 위한 말을 할 수 있도록 두번 세번 생각한 후 언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당신의 몸은 당신이 책임질 수 있는 마지막 대상이며, 그몸을 어떻게 처분할지는 당신이 내릴 가장 개인적인 결정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결정을 상실감에 빠진 가족들에게 떠넘기지 마라.(중략)어쩌면 당신은 멋지게 다듬은 머리와 예쁘게 화장한 모습으로 관에 들어가고 싶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냥 독수리 먹이로 던져지고 싶을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속내를 몰라 갈팡지팡하게 하지는 마라.

어릴적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남인 아버지가 준비한 가족묘 말고 다른 방식으로 해 달라는 유언을 사위(내 고모부)에게만 하셔서 큰 분란이 났던 기억이 있다. 장례라는 것이 어쩌면 반은 또 산 사람을 위한 의례라는 생각이 든다. 철저히 자신의 장례식에 주인이 되고 싶다면 충분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내가 퇴비로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죽은 뒤에 진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마음이 무척 흡족하다. 나는 평범하고 불완전하고 소중한 내 몸을 생각한다.

우리는 막연하게 죽은 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 책에선 더 개별적이고 전문적으로 시신을 볼 수 있다. 화장을 할 때 필요한 열량이나, 부패를 막기위한 처치가 얼마나 공기와 토양을 오염시키는지, 관의 종류와 최신 시신 처리법 등. 또 하나의 과학이다. 미국에서는 유골로 탄환을 만들기도 하고 인도정부는 갠지스 강의 시신처리를 위해 해마다 수천 마리의 거북을 방류한다. 징그럽고 피하고 싶다만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여러 MRI의 연구 결과, 애도하는 뇌는 다른 감정과 다른 패턴을 보인다고 드러났다. 감정은 보통 뇌의 특정 부위만 밝히지만, 애통은 기억과 소화, 시각적 이미지 등 온갖 부위에 영향을 미친다. 애통은 당신을 아프게 할 수 있다. 심지어 죽을 만큼 아프게 할 수도 있다. 

떠나간 이를 기억하며 애도하는 것도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뇌의 여러 부위를 자극하고 심지어 신체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다. 심리적인 불안 증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심리 치료를 통하여 우는 등의 애도 과정을 지나면서 실제로 상당 부분 호전되는 메커니즘도 이와 깊은 연관성이 있으리라고 본다. 죽음과 관련하여 누군가를 애도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포괄적인 행위이며 치유의 과정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겠다.


세상일을 다 제쳐두고 한동안 공동체 속에서 부대끼는 전통은 그 나름대로 현명한 방법인 것같다. 어쩌면 그 기간은 성가셔야 마땅하다. 새 생명을 낳기 위해 겪는 진통처럼 떠나간 사람을 온전히 보내기 위한 시련의 시간이니 말이다.

작가가 시바(유대교의 장례 후 문화로, 일주일 가량 조문객을 맞는 일 외에 세상일을 제쳐두는 것)를 성가셔 하는 유대인 친구를 보며 한 생각이다. 우리는 보통 죽음 자체만 생각 하는데 이를 새 생명의 환희와 동등하게 보는 작가의 진중한 시선에  안도감을 느꼈다. 


애도하는 사람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너무 많다. 그렇다면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널 사랑해." "정말 안타까워." 그중에서 가장 좋은 말은 바로 이거다. "혹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무슨 이야기든 괜찮아."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죽은 자를 애도하는 사람에게도 진실된 대화는 꼭 필요하다. 단, 듣는 대화가. 


우리가 잃게 될 것을 떠올리는 순간, 우리의 심장은 더 이상 자제하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애통은 다른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갈 기회이다. 애통은 마지막 숨을 거둔 후에 내쉬는 또 다른 숨이다.

모든 생물은 한순간 스러지지만 그 숨은 또 나머지 생명이 들이고 내 뱉는 숨으로 연결이 된다. 그 과정에서 진실해 지는 순간을 놓지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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