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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된 사람 Dec 10. 2022

그것은 네 세상

K에게

별로 어렵지 않은 과제를 낑낑거리다 결국 다 풀지 못하고, 학교로 나섰다.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동안, 흥얼거리던 노래를 운전길에 들었다.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보고 그대는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 봐
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 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 들국화, 그것만이 내 세상 중



무슨 청승으로 눈물이 흘렀는지 내 마음이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처음에는 쉬운 문제인데 풀지 못하는 내 실력이 한심하다가 학교에 가서 동료들에게 물어봐야지 하는 내가 조금 기특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을 것. 그러다 사람들과 다른 방향으로 거꾸로 걸어가는 나를 믿어주지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지도 않는 스스로에게 서운해졌다. 세상 사람 모두가 나를 향해 '조금은 걱정된 눈빛과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나를 바라보아도, 나는 나의 길을 걸어가려는 나를 믿고 힘껏 안아주어야 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 큰 소리로 외치지 못하고, 내가 걸어온 길을 후회하고 초라하게 여긴 나에게 서운한 마음이 터져버렸다.


그러다 네가 떠올랐다.

며칠 전, 뒷자리에 앉은 아이를 달래 가며 구불한 시골의 밤길을 운전을 하던 너는 그 소란의 한가운데에서 묵직한 너의 여러 상황들을 말했다.  네 얘기들을 듣고, 나는 주절주절 훈수를 두었다. 노래 가사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내가 뱉은 훈수들이 너무 부끄러워 졌다. 뭘 안다고. 나는 너에게 어쭙잖은 충고와 조언을 한 것일까.


비슷한 길은 있지만, 같은 길은 하나도 없는 것이 삶인데

내가 걸은 길이 네가 걷는 길과 같다고 만용을 부렸다. 대신 걸어주지도 겪어주지도 못하는 각자가 걸어가는 인생길인데 말이다. 나를 비롯한 모든 충고와 조언(혹은 조언을 가장한 자기 욕심)은 단지 참고할 만한 여행지도일 뿐이다. (그래서 모든 충고들은 내 길이 아니면 과감히 버려도 된다.)


미안하다. 내가 나의 지나온 길을 함부로 초라하게 여겨버린 잘못을 너에게 충고를 가장해 모욕을 주었다.

너는 너의 길을 너만의 보폭과 방식으로 여행하는 것이다. 걷다가 한 번씩 길에서 마주치는 또 다른 여행자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질 수도 있고, 방향이 같다면 같이 걸어갈 수도 있고, 그러다 목적지로 가는 방향이 달라지면 흩어지기도 하는 것일 뿐인데 말이다. 네 길을 그대로 인정하지 못했다.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 또한 너에게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 봐
혼자 그렇게 그 길에 남았나 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그것만이 네 세상


- 들국화, 그것만이 내 세상 중



응원하고 축복한다. 내가 나에게 바라는 것처럼 길에서 만날 인연과 겪을 일들이 때로는 목적지를 한참 벗어나게 할 수도 있고, 어디인지 헤매도록 하기도 하겠지만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꽃도 보고 시원한 바람도 느끼며 마침내 가고자 하는 곳으로 도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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