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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된 사람 Dec 04. 2022

이 겨울의 김치를 기억하자

옆마을로 술 한잔 하러 가는 남편을 데려다주러 나가는 길이었다. 마침 집 앞을 나서던 이웃 아주머니께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신다.


큼지막한 김치통을 들고 나오신다. 김장을 하는 다른 집들에는 비닐 한봉지로 정을 나누시고, 김장을 안 하는 우리집에는 통째로 주셨다. 얼마 전에는 동네 언니가 갖가지 묵은지, 짠지와 함께 김치를 주셨다. 앞집 할머니, 옆집 할머니까지...이웃들의 김치로 한해 김장이 되었다.


어느 때의 나는 애살있고, 센스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어 무던히 노력했었다. 그런 날들을 보내다보면 별것도 아닌 사소한 일이 방아쇠가 되어 마음을 생채기 냈다.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 없다는 서운함은 억울함으로 커지고, 내가 쌓은 공든 탑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이 동네에서의 나는 살가운 사람도 최악도 아니다.

접촉사고, 주차시비, 사생활 침해 등. 어디에나 있는 흔한 사람들과 어디서나 있을 법한 사건들을 지나오며 동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할머니들이 텃밭의 푸성귀를 현관에 두고 가시는 것처럼, 나는 명절에 카스테라를 드린다.


맵기도 짜기도 한 각양각색의 김치들이 우리집 냉장고에 모인 이 겨울밤을 기억해야겠다. 서운하고 억울한 감정이 밀려오는 어떤 밤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서로의 균형을 이루어가는 것을 알게한 이 밤을 떠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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