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제 처음 만났고, 오늘 헤어졌어요. 제주에서 하루를 함께 보낸 이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으로 느껴져요. 서로의 손과 손이 홍색 실로 이어져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오늘 아침 비요뜨를 결제해 준 얼굴조차 까먹은 편의점 사장님처럼 지나칠 수 있었으니까요. 간혹 우리는 서로의 삶 속에 작은 조연 정도로 자리 잡아 함께 영화를 만들어 가요. 우연이라고 하기에 그들은 제 삶의 굴곡이 오목하게 들어가 있을 때 이따금 나타나 필연이란 이런 걸까 생각하게 해주어요. 마침 이 사람이 필요했는데, 뿅 하고 나타나고 스르르 사라져요. 오늘은 그들 중 곶자왈에서 요가를 나누는 선생님에 대해 써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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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꽝꽝 언 마음을 하고 제주에 내려왔어요. 서울도, 고층 빌딩도, 사람도 그저 다 질려버렸던 때였지요. 열흘간 무계획으로 머무르려 하늘을 건넜던가요. 얼굴을 할퀴는 바람을 등지고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롱패딩을 입고 왔을 텐데, 멋 좀 부리겠다고 코트를 입었었네요. 핸드폰을 쥔 손이 부끄러울 것도 없는데 새빨개졌어요. 점점 무감각해지는 손을 입김으로 후후 불어가며 텅 빈 아스팔트 길을 걷고 또 걸었어요.
오들오들 떨며 요가원의 나무 미닫이문을 드르륵 밀었더니, 평온한 두 미소가 눈에 들어왔어요. 길을 헤매며 생겼던 긴장이 증발하고 온기를 머금은 찻잔이 손의 감각을 되돌려주었어요. 꽁꽁 얼어붙었던 제 마음도 서서히 녹아 내리더라고요.
열흘 내내 요가만 했어요. 제주 서쪽 시골의 이곳, 이 안에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들에게 마음을 홀라당 빼앗겼거든요. 요가원 뒤쪽에 있는 치유의 숲, 걷기 명상을 위한 소망 지도, 동백 핀을 꽂은 나무와 귓가에 울리는 새소리까지. 그리고 이 공간을 지키고 계신 두 선생님에게요.
그 겨울 제주에서의 마지막 날, 저는 아침부터 얼굴에 아쉬움을 그리고 있었어요. ‘마지막’ 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니 오늘이 정말 선생님과의 끝일 것 같고, 어쩌면 이렇게 바람처럼 지나가는 인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때 선생님이 말했어요. 종종 연락하고, 다시 만나면 된다고. 야무진 다짐을 하며 저도 입을 앙물고 단어를 뱉었어요.
“다시 만나요. 또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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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옷차림이 가벼워진 7월에는 백팩 하나를 등에 지고 다시 제주를 찾았어요. 빨간 오두막의 앞 마당을 가꾸는 선생님의 모습이 저 멀리서 보이는데, 어찌나 반가웠는지. 신이 나는 마음을 감추지 않고, 한걸음에 언덕을 뛰어넘어 선생님들에게 포옥 안겼어요.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여름의 이별은 조금 쉬웠어요. 다시 왔으니까, 또 오면 되니까요. 겨울에 와야겠다는 작은 마음을 먹으며 말했어요.
“다시 만나요! 또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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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지금은 제주공항에서 김포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태풍이 제주를 훑고 한가위가 스쳐 갈 즈음 하늘을 건너 이곳으로 왔어요.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지요. 곶자왈 요가원에서 하는 1박 2일 리트릿을 하고 제주에 조금 더 머물다가 육지로 가는 길이에요. 이제는 이별이 두렵지 않아요.
어제는 이렇게 말하고 서로의 평안을 소망했어요.
“추워지면 또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