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설마 내가 비행기를 놓치겠어. 여유로운 제주행. 그 시작부터 시간에 쫓기고 있다. 9시 15분 비행기인데 8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날 생각을 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그래. 김포공항역에서 내리자마자 미친 듯이 뛰는 거야. 벌써 8시 15분. 비행기가 이륙하기까지 정확히 60분이 남았다. 아아 나는 아직 집에 있었다.
무튼 나는 자주 이런 식이다. 공항에 너무 일찍 도착해서 어디쯤에 던킨 도넛이 위치하고 어디 육개장이 맛있고 따위의 정보를 수집할 때도 있는 반면, 종이 한 장 차이로 비행기를 놓치는 아슬함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기도 한다. 탑승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줄을 서는 부지런하고 성질 급한 승객이면서도 거의 만석인 비행기로 숨을 헐떡 거리며 겨우 들어오는 게으른 승객이기도 한 것이다. 대체로 본가인 경기도에서 출발을 하면 전자가 되고, 자취방인 서울에서 출발을 하면 후자가 된다. (자취방에서 김포공항까진 공항철도로 15분이다.) 괜히 학교 코 앞에 사는 자취생의 지각이 더 흔한 것이 아니다. 마음이 여유로워 어쩌다 보니... 뭔 말인지 알지요?
사람들로 붐비는 공항.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이 은근히 불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짐을 부치면서 승무원의 말이 나를 무감하게 만들었다. “지금 바로 올라가셔서 타셔야 해요!” 어,, 진짜 날 두고 비행기가 떠날 수도 있겠다. 비행기를 제시간에 타야만 한다. 길게 늘어진 보안 검색대의 얼굴 수를 촘촘하게 세어보았다. 15명 남았고,, 이제 12,,, 7,,,6,,5,,1. 노트북과 보조 배터리를 야무지게 골라 빼고 ‘저는 폭약 따윈 가방에 지니고 다니지 않아요’의 순진무구한 얼굴로 팔과 다리를 대자로 뻗어 검색원의 레이더에서 합격 도장을 받았다. 그리고 당장 13번 게이트로 달렸다. 다행히 탑승객으로 보이는 줄의 끄트머리가 보인다. 후우.
제주공항에는 한라산과 맞짱이라도 뜰 듯 F/W 등산복으로 무장한 이들과 당장 렌터카를 빌리자마자 애월 핫플로 향할 것만 같은 커플 부대가 보였다. 삼각대를 바리바리 싸오고 앙증맞게 시밀럴룩을 맞춰 입은 모습에서 그들의 포부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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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냅사진 버금가는 멋진 사진을 남기고 가겠다는 사랑스러운 마음이겠다. 그들은 어디로 갈까. 송악산 둘레길에서 바람과 싸워 멋들어진 사진도 찍고 카멜리아 힐로 향하려나. 쌍쌍 삼삼오오 옹기종기 모여 여행의 기대감을 부풀리는 그들 사이에서 나만이 고요했다. 적당한 외로움과 누구와도 가벼운 밥 친구를 할 수 있는 자유로움! 당분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된다. 이 여정의 기대감과 흥분을 표현해야 된다는 마음에서부터 자유로워졌다. 도시에서 벗어난 마음에는 삶을 부대끼는 사람들로부터 사회적 얼굴로부터 탈출한 해방감도 포함된 것이었다.
사람도 빌딩도 차도 소음도 적은 곳. 혼자라서 조금 외롭고 그렇기에 더 귀를 열고 온 감각을 기울일 수 있는 곳. 다시 제주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