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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 Sep 06. 2021

공중에서 그린 생(生)

죽음의 냄새가 난다. 검은색도 갈색도 아닌, 빛을 잃어 색을 빼앗긴 모습이다. 해리포터에서 사람의 영혼을 빼앗아 먹는 디멘터가 내가 자는 사이에 왔다  모양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생생하게 살아있던 룸메이트가 하루아침에 공기를 내뿜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죽음의  목격자가 되었다. 어쩌면 용의자일 수도 있겠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언제부터 였을까. 어질러진 방을 치울 기운이 없던 내가 참 무심했구나. 시들시들 말라비틀어진 잎은 간신히 줄기에 매달려 있다. 큰 목소리로 도움의 손길을 뻗었을 텐데,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마도 찰나의 순간은 아니었겠다. 그러면 이 생명의 죽음은 어느 시점으로 선고해야 하나. 목격자가 죽음을 마주한 시점? 혹은 숨통이 끊어지기 일부 직전이었던 그 시각. 나의 첫 반려 식물에게 사망선고를 내렸다. “2월 22일 23시 45분, 사망하셨습니다. 미안해요.”


나의 지구는 소행성과 충돌하여 쉬이 중심을 잃고 맥이 떨어지곤 했다. 파란 바다와 녹색의 풀들이 사(死)를 한 번 그리면, 생(生)을 다시 그리는 일이 어려웠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반려 식물이다. 다른 생명과 함께하면 내 손에 쥐인 생명 줄을 조금 더 소중하게 부여 잡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기대였다. 더해진 생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깔려 뭉게지는 것이 아니라, 타의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식물과의 동거를 시작했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 첫 룸메이트를 떠나 보내고 나는 새 룸메이트를 만났다.


현재 연희동에서 동거 중이며 이름은 ‘테라’인 친구와의 첫 만남은 이러했다. 양재 꽃 시장이었다. 모든 것이 죽어 있는 명동 한복판과 달리, 초록의 엽록소를 지닌 생명들이 서로 활기찬 에너지를 뽐내고 있었다. 키가 크고 덩치도 큰 개업 선물 같은 식물들 사이에서 나는 아담한 몬스테라를 골랐다. 그렇게 나의 품에 안긴 테라는 임시 보금자리였던 플라스틱 화분을 떠나 토분에 자리 잡아 더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다. 테라는 기존에 있던 줄기를 두 개로 갈라 새로운 길을 보여주더니, 어느새 동글동글 말려있는 잎을 선물해 주었고, 그 잎은 서서히 펴져 하트 모양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어느 늦 봄. 테라는 공중에 뿌리를 내렸다. 본디 땅으로 하강하여 정해진 토양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 줄 알았는데, 이 친구는 그 순리를 거슬러 원하는 곳에 새로운 뿌리를 내렸다. 당시 나는 내가 나고 자란 판교에서도, 도서관을 오르내리던 신촌에서도, 그리고 잠깐의 회사인이었던 명동에서도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새롭게 뿌리 내릴 곳을 찾아도 된다고. 기존에 뿌리라고 생각했던 그 토양에서 벗어나도 괜찮다고.


그 어디에도 뿌리 잡지 못한 나는 공중 뿌리를 내리기 위해 하늘을 통과해 제주로 갔다. 저지리라는 예술인들의 마을에서 집보다도 집 같고, 영어로는 house가 아닌 home에 가까운 공간을 만났다. 네 명이서 거주하는 이 홈에서 나는 레이지 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성실하게 풀 냄새를 맡았으며,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닥뜨렸다. 게스트하우스보다는 게스트 홈인 곳이었다. 게스트도 하루만 지나면 호스트가 되는 공간이다. 게스트 홈 사장님의 똥땅거리는 기타 소리에 느지막이 일어나, 치유의 숲에 위치한 요가원에서 요가를 하고, 근처 책방에서 책을 구경하곤 했다. 단순하고도 충만한 이날들을 저지리의 한 게스트 홈에서 보냈다. 겨울에도, 봄에도, 여름에도 이 곳을 다시 찾았으며 다가올 가을에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한 뿌리는 육지에, 공중 뿌리는 섬에 두며 본디 하강하는 뿌리에 벌레가 꼬이면 공중 뿌리로 시선을 돌려 영양분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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