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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디 뻔한, 김밥에 대한 단상

싱가포르에 사는 나에게 김밥이 주는 의미


INTRO: 한국인들에게 김밥이란


김밥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소풍 날 김밥을 싸 가던 추억이 하나쯤은 있을 테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지만, 우리 엄마는 늘 소풍 전날 할머니와 함께 김밥을 싸셨다. 옆에서 꽁다리를 얻어먹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의 사랑 뿐인가, 김밥은 나의 대학시절 영양을 책임 진 공신이기도 하다. 


수강신청은 늘 전쟁과 같았기에 점심 시간 확보는 꿈도 꾸지 않고 그저 원하는 수업이면 무조건 넣곤 했으니 늘 공복에 기운이 없기 십상이었다. 


그럴 때 나를 살린 김밥. 간단히 사서 걸어다니면서 먹을 수 있거니와 책을 보면서 먹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김밥이란건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라기보단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한 음식 정도였다. 싱가포르에 오기 전까지는.



나도 이렇게 이쁘게 말고 싶다. 내 김밥은 보통 엉망진창이다.



김밥을 처음 싸보다. 싱가포르에 와서야!


남자친구와 막 데이트를 시작하던 때였다. 그땐 아직 썸남이었는데, 싱가포리언 친구 모임에 함께 초대받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 친구가 “내 한국인 동료가 싸준 김밥이 정말 맛있었어!”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듣기에는 좋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 “다음 주 바베큐 파티에 김밥 좀 싸다 줘!” 오마이갓.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한국에서도 김밥을 싸본 적이 없는데, 하필 싱가포르에서 첫 김밥을 싸게 된 것이다.


백종원 선생님의 간단한 요리는 따라 해봤지만, 김밥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김밥 재료를 사려면 한국 마트까지 가야 했다. 


햇반을 돌리고 차돌박이를 굽고, 지단을 부치며 시작은 괜찮았는데, 김밥 모양이 문제였다. 재료들이 한쪽으로 쏠리고 모양이 엉망진창이었다. 


솔직히 부끄러웠지만, 다행히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그 덕에 낯을 가리는 나도 자연스레 어울릴 수 있었다.



김밥에 대한 요구로 나를 고뇌에 빠트린(?) 싱가포리언 친구들



OUTRO: 싱가포르에 사는 나에게 김밥이란

회사 근처 한식당. 소풍을 나온 느낌!

싱가포르로 오게 되면서, 김밥은 더 이상 일상적인 음식이 아니게 되었다. 싱가포르에서 김밥 한 줄의 가격은 무려 13,000원에서 15,000원. 


김밥천국이 이렇게 그리워질 줄이야. 


다행히 K컬처의 영향 덕분에 한식당이 많아 김밥을 사 먹을 수는 있지만, 이제는 "마음 먹고 먹어야 하는" 음식이 되었다.


며칠 전에도 회사 근처 한식당에서 김밥을 먹었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야외 자리밖에 없는 식당에서, 잔디를 보며 소풍 나온 기분을 느꼈다. 


김밥과 함께한 소풍 같은 그 시간이, 모국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 덜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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