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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구비 Nov 19. 2024

이수명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를 읽고

아이디어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시는 아무래도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형식의 글이다. 특히나 현대시는 더 어렵게 느껴져서 전문가의 해설이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이해해 볼 엄두가 잘 나지 않는다. 요즘 보통 그렇듯이 나도 시집을 거의 읽지 않는데, 이수명 시인의 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집 중 하나다.   


<슬퍼하지 말아라>

슬퍼하지 말아라, 저쪽에서 보면 이 길도 우회로이다. 들키지 않은 허위들을 감당하면서,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서만 배운다. 삶은 환기되지 않는 것이다.

슬퍼하지 말아라, 저쪽에서도 이 길을 볼 수가 없다. 방심한 터널이든 위압적 대로이든, 투항하는 것이 삶인 까닭에 우리가 들고 갈 선물꾸러미는 우리를 위한 것이다.

슬퍼하지 말아라, 과녁을 벗어난 화살들이여. 떨어져 내린 곳이 삶의 과녁임을,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와버렸다고 슬퍼하지 말아라.


역시 낯설고 어려운 표현이 있음에도, 각각의 단어가 모이면 떠오르는 심상과 정서가 있어서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만 같았다. 우리는 자신의 삶만 진실로 알 수 있고, 주어진 삶을 받아들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과녁을 벗어나 떨어진 화살이 된 자로서 슬픔을 느끼고, 그렇지만 삶의 과녁은 바로 그 자리라는 말에 위로를 받는다.  

<중력이 소멸한>

뒤를 돌아볼수록 중력이 소멸하는 땅이다. 더 멀리 더듬을수록. 때때로 꺼냈던 사치한 희망도 내 생애, 사과의 제스처였나. 그렇게 살지는 않겠다고 생각한 삶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버렸던 마지막 자유였나.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리. 허공에서 시들은 이파리의 혼곤한 용서와 용서보다 깊은 한기를.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중력이 소멸하는 땅이다. 앞으로 나서지 않아도. 어떤 그물로도 건져지고 마는 커다란 동공을 띄웠던 해저는 내 생애, 못다 한 몰락이었나. 흘러다니는 수초는 흘러다니는 일이 힘들고, 잃어버린 발바닥은 홀로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였으므로 내 생애, 떠오르지 않는 유적지였나. 아무도 노여워 못하리, 그리워 못하리. 중력이 소멸한 땅, 중력이 화해한 땅.   


중력이 소멸한다는 말이 땅에 발 붙이지 못한 채 허공에 떠 있고, 세상을 부유하는 느낌을 떠올리게 다. 2연의 바다 심상, '몰락'과 '떠오르지 않는 유적지'란 말이 잘 어울린다. '슬퍼하지 말아라'와 비슷하게 꿈이 좌절된 사람의 감성과 맞닿아 있는 것 같지만, 물론 이것도 새로운 오독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살의로 살아가는 것, 살아가는 것의 살의를'(뒷모습), '익어가는 열매처럼, 세상을 이해하는 순간 몸을 던지는 것이다'(토요일 오후), '그때마다 가슴 속 어디선가 전선이 끊어져 내렸다'(밤길) 같은 표현에서 시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오랜만에 시집을 꺼내 읽어보니 마음에 드는 단어를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소설은 말 자체보다 전체 스토리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데, 시는 말의 물성에 더 주목하게 되는 것 같다. 선과 색을 아름답게 쓸 줄 아는 화가, 목소리가 좋은 가수를 볼 때처럼, 말을 잘 쓰는 시인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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