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있는 단편들이 대체로 스토리 면에서 더 훌륭하다는 느낌을 받지만, <숨> 특유의 관조적인 분위기, 다분히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주제가 좋았다.
단편 '숨'의 우주에서 생명의 원천은 ‘기압 차이’이다. 생명체는 금과 아르곤으로 구성되어 있고, 뇌는 공기로 차 있는 모세관이며, 공기의 흐름에 따라 금박 조각들이 다양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화자는 그들 세계에서 언젠가 기압이라는 동력이 없어지고 사고가 정지할 것이며, 우주는 평형상태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화자의 통찰은 비종교적인 현대인이 받아들일 만한 죽음관이라고 느꼈다.
“우리 우주는 그저 나직한 쉿 소리를 흘리며 평형 상태에 빠져들 수도 있었다. 그것이 이토록 충만한 생명을 낳았다는 사실은 기적이다. 당신의 우주가 당신이라는 생명을 일으킨 것이 기적인 것처럼.”
단편 '옴팔로스'의 우주는 ‘젊은 지구 창조설’이 진실인 우주다. 성경의 창세기 그대로 수천 년 전에 지구가 창조된 우주에서는, 성체인 채 창조됐던 동물들의 배꼽 없는 화석을 볼 수 있고 나무에 나이테가 없다. 우리 우주와 달리 에테르가 존재하고, 빛의 속도가 바뀌며, 상대성 이론이 성립하지 않는다. 상대성 이론은 등속 혹은 가속 운동을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을 물리법칙으로 설명하는 것인데, 이곳에서 지구는 세계의 중심으로서 멈춰 있으므로 뉴턴식의 절대적인 시공간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우주의 인간들에게도 신앙의 위기가 찾아오고야 만다. 에테르 기류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이 우주에서 지구가 아니라 에리다누스자리 58 항성이 공전하는 행성이 유일하게 절대적인 정지 상태임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신이 세계를 창조한 의도가, 하필이면 지구가 아니라 에리다누스자리 58이 공전하는 어떤 행성이었던 것이다.
"언제나 제가, 당신의 의지와 저를 만든 당신의 의도에 따라 행동해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저라는 존재에 대해 사실상 아무런 의도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제가 느낀 성취감은 순전히 저의 내부에서 발생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 사실은 제게 인간이 자기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설령 인류가 우주가 창조된 이유가 아니라고 해도, 저는 여전히 우주가 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우리 인간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떻게'라는 질문의 해답을 계속 탐구하겠습니다. 이런 탐구야말로 제가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당신이 저를 위해 그것을 선택해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저 스스로 그것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단편 '숨'과 '옴팔로스'를 읽으면 새로운 우주에 빠져들었다가 어느새 우리 우주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아이디어에 감탄했는데, '우리 세계에 함의가 있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