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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현정 Apr 14. 2019

영아 통곡(詠鵝痛哭, 거위를 노래하며 슬프게 울다)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를 보고...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장률 감독의 11번째 영화이다. 이 영화를 두 번째 볼 때는 순전히 감독과 배우들의 명성을 굳게 믿고 영화 속 진짜 이야기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 믿음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별점 3.2점의 싱거운 로맨스 영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못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이 영화에 대해 감히 4.5점의 높은 점수를 매기고 역대급 상향 조정을 했노라 단언할 수 있다.



‘우리 혹시 본 적 있나요?’ 

크고 깊은 눈을 끔뻑이며 윤영은 묻는다. 군산에 도착했을 때 낯설지 않은 길과 집들, 비행기 소리, 민박집 안에 걸려있는 사진 속 공간들은 알고 보면 윤영이 어릴 적 경험했던 것들이다. 어스름한 기억이 떠오를 듯 말 듯 한 윤영은 민박집에 들어서자마자 송현을 통해 엄마의 쇄골 부위를 기억해내려는 듯 만져본다. 그의 잠재된 기억들은 그의 꿈을 통해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꿈속에서 윤영은 사진 속에서 본 것과 같은 섬에서 어떤 여자와 함께 있는 꿈을 꾼다. 그리고 기억을 찾아 헤매는 그의 노력은 계속된다. 민박집 옆의 폐가(그가 어릴 적 살 던 집으로 본인은 추정한다), 절, 기찻길. 공간뿐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칼국수집 할머니에게 주은에게 무언가 모를 친근감을 느끼고 다가가려 한다. 

영화 속에 나온 시기적 설정에 상상력 조금 더하여 영화를 다음과 같이 재구성해보았다.



1983년 독립운동가의 후손 미영은 현 윤영의 아버지 장 모 씨와 결혼한다. 그리고 이 부부가 삶의 터전으로 삼은 곳은 미영의 고향 군산이다.

1985년 장윤영이 태어난다. 독립군의 후손인 미영은 그녀와 역사관이 다른 남편과 자주 다툰다. 

1989년 부부 사이의 불화로 미영은 결국 남편을 떠나 재일동포와 조선족이 많이 모여 사는 후쿠오카로 간다. 그리고 재일동포인 이사장(정진영 역)을 만난다.

1997년 미영과 이사장 사이에 딸 주은이 태어난다(주은의 현재 나이는 23살이다). 둘은 미영의 고향인 군산에서 민박집을 하며 살기로 계획하고 중간중간 군산을 방문한다.

2008년 남편 이사장은 일본에서 자리를 잘 잡은 재일동포였으나 일본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동포들을 외면한다. 어느 날 둘은 딸 주은이 보는 앞에서 크게 싸운다. 미영은 일본을 떠나 다시 혼자 군산으로 온다.

2009년 그녀는 군산 기찻길에서 자살을 한다.

2010년 이사장과 주은은 군산에서 미영과 함께 하기로 했던 민박집(미영이 머물던 집 옆에)을 운영하면 산다. 민박집에는 미영과 함께 갔던 군산 곳곳을 찍은 사진을 걸어 두고 그녀를 추억한다. 



미영의 자살 후 이사장은 세상을 피해 어두운 암실로 들어간다. 그는 군산의 풍경을 계속 담아내지만 그 사진 속에 사람은 없다. 그녀의 딸 주은 역시 CCTV 모니터에 갇혀 지낸다. 일본에서 재일동포 2세대로 살았던 그녀가 어릴 적 겪어야 했던 고난과 엄마가 아빠와의 싸움 이후 자살했다는 충격으로 아빠에 대한 원망이 크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는 아빠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처는 칼국수 할머니(재일동포로 추정된다)와 유쾌하게 떠들며 술을 마시는 것이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거위이다. 음악(노래방, 항일운동 행사에서 불린 노래, 절에서 연주한 피아노 연주) 그리고 중국 시 낙빈왕의 영아(詠鵝)(윤영이 중국집에서 읊은 시이며 영화 마지막 엔딩에 다시 나온다)를 통해 감독은 관객들에게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려 한다. 거위는 미영(윤영의 어머니)이고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지만 빨갱이로 혹은 조선족으로 멸시받고 차별받아야 하는 시대의 멍이며 우리의 잃어버린 36년의 아픔이기도 하다. 

윤영의 아버지는 어느 날부터 집에서 키우는 거위를 미영이 혹은 영이라 부르며 끌어안고 사람한테 하듯 이야기를 한다고 전해 듣는다. 미영을 그리워하며 미안해하는 심정은 유영 아버지가 오랜 세월 잘못된 역사관으로 소외시키고 배척해왔던 이들을 향하여 조금은 달라진 모습이었다. 윤영은 한때 희망이 없는 아버지에 대해 ‘죽었다’고 했었으나 변화하는 모습이 반가워 난생처음 과일을 잔뜩 사들고 찾아가 아버지에게 안겨준다. 


‘윤동주가 일본에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냥 조선족이지.’


우리는 독립운동가 이자 아름다운 시인 윤동주를 지금껏 추앙해왔다. 연희 전문학교에서 시를 발표하고 독립운동을 계속한 후 일본으로부터 체포를 피해 다시 중국 용정으로 되돌아갔더라면. 역사는 그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특히나 조선족에 대해 한국인들의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잘못된 역사인식으로 인해 많은 한국에 체류하는 조선족들이 불이익과 차별을 당하고 있다. 일본에 사는 재일동포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찌 보면 영화에서 군산이라는 장소는 역사의 수모를 겪어 아픔을 가진 이들이 한데 모여 사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윤영은 군산 여행에서 돌아온 후 김미숙의 치과가 있는 자리에서 윤동주 시인 문학관이 있는 야경을 바라본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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