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이 된 그녀의 사정
얼마 전, 대학에서 근무할 때 같은 연구실에서 동고동락하던 연구원 언니가 제주에 놀러 왔다. 형부의 제주 출장 일정에 맞춰 여행 겸 일하러 왔다고 했다. 아이 돌잔치 이후로 서로 사는 곳이 달라 얼굴을 못 봤는데, 이제야 만났지만 어제 만난 것처럼 정말 반가웠다.
30대, 그 질풍노도의 힘든 시기를 연구실에서 함께 버틴 동지인 우리는 눈빛만으로도 10년이 넘는 세월을 읽을 수 있었다. 얼굴은 못 봤어도 통화와 톡, 명절 선물 교환으로 계속 연락해 왔기에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소녀 같은 언니는 나보다 네 살이 많고 얼굴은 너무 동안이지만, 나이는 어쩔 수 없는지 작년에 폐경을 맞이했다고 한다. 생리가 안 와서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검사 결과를 보고 "폐경이네요"라고 툭 한마디 던졌을 뿐인데, 언니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한다.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단 한마디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10년 전의 나도 언니가 만났던 의사처럼 결과만 보고 툭 던지듯 폐경을 진단했을 것 같다. 그게 일반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검사 결과가 좋지 않은 환자들을 만나면, 내가 만든 결과가 아님에도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진다. 나에겐 많은 환자 중 한 명이지만, 나쁜 검사 결과가 나오면 앞에 앉아있는 환자와 함께 고민하기 시작한다.
폐경을 진단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떡하죠? 이제... 생리가 끝나고 좀 편해지는 시기가 오는 것 같아요."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환자가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이 반응하면, 속으로 안도하며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상담으로 넘어간다. 증상을 물어보고, 호르몬 치료나 약물 복용에 대해 설명하며,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조언을 한다.
그러나 "네? 제가요?"라며 당황해하는 환자를 만나면, 한 발 물러서서 상황을 관찰한다. 특히 40대지만 아직 아이를 갖고 싶어 하거나 폐경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분들에게는 단정적인 진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추가 검사나 대학병원 진료를 제안하며 환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언니는 의사 앞에서 울고 나왔지만, 실제 갱년기 증상은 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다행이라며 신기해했다. 나는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그때 너무 힘든 일이 많아서 오히려 갱년기 증상을 못 느낀 거 아닐까? 갱년기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거지. 생리는 마지막 이었지만 더 큰 행복은 지금부터 시작일 거야. " 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동의했고, 언니의 힘든 일에 어느 정도 일조한 형부는 옆에서 머쓱하게 웃기만 했다.
"언니, 이제 나도 나이 들어서인지 조금 보이네. 병만 보이는 게 아니라 마음도 보이는 것 같아. 나이 드는 게 나쁜 게 아닌 것 같아. 예전에 대학에서 환자 컴플레인에 경위서 쓰던 싸움닭 같은 모습은 아니야. 하하."
언니와 한바탕 수다를 떨고 집에 오는 길, 기분이 좋아지고 웃음이 난다. 나이 든 아줌마 의사도 좋은 점이 분명 있다는 생각에 힘이 난다.
몸도 마음도 힘이 들어가는 갱년기... 나만 힘든 것도 아니고, 여자라면 누구나 거쳐 가는 시기다. 누군가 따뜻한 말 한마디, "힘들지요? 다 지나가는 일이에요. 이제부터 더 큰 행복이 시작됩니다. "라고 건네준다면 마음을 조금은 열고 속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고, 나아가 갱년기를 조금 더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진료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