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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 han Mar 27. 2024

The show must go on.

찻잔 속의 태풍이 아닌 작아도 의미있는 변화 만들기.

그때의 감정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삶의 시간은 거센 물살을 타고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 브런치의 글들은 언제나 마음 한 켠에 남아 가끔 나를 신경 쓰이게 했지만,

어쩌면 5년이라는 시간도 생각들을 추스리고 정리하기에는 부족한 날들이 아니었나 싶기도.


며칠전 한 대학의 건축과 학생들과 알렉스룸에 대한 인터뷰를 했다.

오래된 내 생각들을 읽고 온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용을 한번은 업데이트 해두어야겠다 싶더라.

내가 어떤 인터뷰를 한다하니 이웃 카페 사장님께서 대뜸 '사장님 그런거 싫어하시잖아요' 하며 털털 웃는다.

그동안 싫어도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싶게 만드는 좋은 이웃들이 많이 생겨났다.


알렉스룸은 코로나를 거쳐 2021년에 확장 이전을 했다.

두배쯤 넓은 공간으로, 이제는 5층이 아닌 조금 더 오기 쉬운 2층에 자리를 잡았다.

가게를 이전하며 내가 없는 이 공간이 어떻게 이곳에 또 적응할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사실 여전히 고민하며 경험치를 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아무튼 이제 알렉스룸에는 알렉스가 없다.

다행히 좋은 스텝들이 돌아가며 자리를 지키고 있고 나름 이제 을지로에선 오래된 카페가 되었다.


을지로는 원래 힙지로로 불리우곤 했지만, 이제 '힙지로'라고 하면 을지로3가역 쪽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본격적인 상권이 형성되었다.

오래된 건물 일부는 재건축 등이 불가피했기 때문에, 나라에서 진행하는 대대적인 도시 정비 사업은 조금씩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한 부분들이 많고, 군데군데 일부 공간들은 재건축이 진행되고 있다.


알렉스룸은 을지로에 거의 가장 먼저 들어왔던 젊은 상인 중 하나인 '마구간'이라는 카레 식당와 2020년 와디즈 펀딩을 통해 콜라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바람막이 점퍼를 만들어 팔았는데 판매 자체보다는 을지로에 자리를 잡은 젊은 이상들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없었던 상징적인 사건이라 생각했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 목적이 컸다. 프로젝트 준비가 끝나고 런칭하자마자 코로나가 왔고 지지부진한 판매에 재고도 좀 남아 결국 다 처분하는데 애를 먹었지만 그때 '언오디너리'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그 브랜드가 남았다.


코로나 기간은 좀 답답하기도 했지만 한편 내 안식년을 연장시켜 주었고, 기어코 회사에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회사를 알아보지 않거나 면접을 안 본 것도 아니지만, 첫번째 면접에서 이제 내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걸 알았다. 회사는 내게 좋은 곳이다. 여전히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회사의 오퍼가 들어올 때마다 '너네 자꾸 그러면 나 다시 회사 취직한다'라는 협박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알렉스룸은 2022년 그 '언오디너리'라는 브랜드를 다시 가져와 힙지로 중심 골목에 와인다이닝을 오픈했다. 지금은 주방 스텝 위주의, 그래도 을지로에서 수준있는 요리들을 서빙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요리에 맞는 와인들을 페어링하기 위해 WSET라는 국제와인자격증도 초보 수준인 레벨1부터 전문가 수준이라는 레벨3까지 공부했다. 나는 여전히 막걸리가 와인보다 더 좋은 것 같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알고 택하는 것과 모르고 소비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2023년에는 언오디너리에서 함께 한 친구들과 충무로/을지로4가 쪽으로 다시 빠져 무작위MZW라는 캐주얼펍을 오픈하였다. 무작위는 나 자신 보다는 함께하는 스텝들의 자립과 자율성을 위해 셋팅해본 공간이다. 내 취향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손을 안 댈 수는 없었고, 그래서 여전히 그 '무작위'한 이름답게 지금도 이런저런 것들을 고민하며 정체성과 방향들을 조금씩 개선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광고로 도배되버린 변질된 인스타그램을 꼴보기 싫어 하다가, 대체 이런 것들은 어디서 얼마나 어떻게 하고 있는건지 알고 싶어 광고대행사를 설립해 공부하고 있다. 챙겨야 하는 직원들도 많아져 나긋나긋한 내 낭만만 즐기기도 어려워 어쨌든 남들 하는 건 어느정도는 알고 경쟁력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 회사에서 내가 했던 마케팅은 좀 거대하고 높은 것들이 많았는데 여기서는 매일매일 야전에서 뛰어다니는 느낌이다. 재미와 현타가 동시에 오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걸 보면 아직 내가 청춘이란 생각을 한다.


'숨도 못쉬게 열심히 살아요. 극한직업 보셨죠? 소상공인들은 늘 목숨을 겁니다.'

글 서두에 얘기했던 그 건축과 대학생들에게 했던 말이다. 

이곳에 와 깨달은 몇가지 것들이 있지만, 우선 말을 줄이고 요즘 주변 젊은 분들에게 많이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전보다 많이 바쁘지만 여전히 하루에 한번 정도 한숨을 쉬고 커피를 한잔 마시는 시간을 잊지 않으려 하고,

지금도 '내일은 뭐하지'하는 생각을 하는. 좀 더 빠르지만 패턴은 그때의 '을지로바이브'와 다른 것 같지 않다.


을지로에는 처음 알렉스룸처럼 10평 내외의 작은 카페가 여전히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대체로 나는 그런 곳들을 좋아해 한번씩 들러 커피를 마시곤 한다.

지금도 10평이나 될까 싶은 좋아하는 카페에 와 글을 쓰고 있다.

을지로에서도 이제 융드립으로 내린 좋아하는 게이샤를 마실 수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며.


2024. 3. 27 from A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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