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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비 May 12. 2019

토니 스타크, 고마웠습니다.

어벤저스 : 엔드게임 그리고 나의 20대.



"토니 스타크라는 캐릭터를 만난 건 제 나이 열아홉이었습니다."




나도 같이 사진 찍고 싶다.


'빨간 갑옷을 입고 하늘을 나는 멋진 아저씨' 정도로 저에게 인식되었지요.

그렇게 마블과 나의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약 11년 전 이 장면 때문에, 아직도 나의 최애 버거는 치즈버거다.





 군대에 있던 어느 날, 선임이 영화를 틀었습니다. 제목이 '토르'였습니다. 포스터만 보고 무슨 중세시대 전사 영화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선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마블 시리즈 중에 이게 가장 좋아.'  


마블? 마블이 뭘까요? 알지는 못했지만 토르는 꽤나 매력적인 남자였습니다. 어릴 적 세계 신화 속에서 봤던 천둥의 신인 토르. 그냥 천둥의 신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묠니르'라는 망치를 막 던지네요? 천둥의 신 맞나요? 그런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습니다. '콜슨 요원' 이 분 분명 아이언맨 2에 나왔었거든요. 이름도 똑같고 복장도 똑같았습니다. '모두 분 편이구나!'



나의 20대를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


그 이후 마블 영화 거의 대부분을 봤습니다. 마블 스튜디오의 첫 개봉작인 캡틴 아메리카부터 이번에 개봉한 어벤저스 : 엔드게임까지 말이죠. 아직 캡틴 마블은 보지 못했는데 꼭 봐야겠습니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에서 말도 안 되는 강한 모습을 보여줬으니, 이유를 좀 알고 싶네요.





'잘 가 나의 20대'



대학생 때 용돈을 조금씩 모아 샀던 아이언 맨 피규어. 나의 유일한 피규어였지만 돈이 모자라서 다시 팔았다.



사실 어벤저스 엔드게임을 보자마자 감상평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못 보신 분들께서 스포일러에 대해 워낙 민감하셨기 때문에 날짜를 넘기고 넘겨 이 날까지 왔네요.  이 날까지 오면서 그 날 느꼈던 총체적인 감정을 담아야 하는지, 아니면 내가 느꼈던 '잘 가 나의 20대'에 대해 쓸지 고민을 했습니다.



조만간 꼭 다시 볼 거다.



'잘 가 나의 20대'라는 말을 꺼낸 이유는 마지막 씬 때문이었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소환한 포탈이 열리고, 나와 20대를 함께했던 모든 마블 영웅들이 쏟아져 나오는 장면에서 참 많이 벅찼거든요. 정말 타임스톤으로 시간을 돌린 듯, 많은 감정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쏟아져 나온 영웅들이 타노스를 상대로 정말 마지막처럼 싸웠고, 아이언맨은 명대사와 함께 손가락을 튕깁니다.


"I am Iron man."



그렇게 마블 시리즈에서 퇴장한 아이언맨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였습니다. 굳이 좋아하는 캐릭터 순위를 매긴다면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정도가 되겠네요. 제일 처음 접한 마블 캐릭터가 아이언 맨이 어서라기보다, 그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공감했던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하면 '잘난 뺀질이' 같았거든요. 그 '잘난 뺀질이'는 자신이 불안하거나, 남이 자신의 자존심을 긁으면 아무렇지 않은 척 빠르게 쏘아붙입니다. 소심하게. 이미 삐진 것 같은데.


얼음 속에서 70년 만에 깨어난 사람에게 이렇게 자기 자랑을 하는 소심 쟁입니다.

                                                                                                     

                                                                                                  "그래서 슈트를 벗으면 너는 뭐지?"


  "천재, 억만장자, 플레이보이, 박애주의자."


자칭 신이라는 토르를 갈구는 저 대범함.




'그런 토니 스타크의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공감했다!'



소심 그리고 불안. 제가 타인에게 철저히 가리고 싶어하는 두 가지입니다. 은근 잘 삐져서 삐지는 모습은 가리기 힘들지만, 불안한 모습은 절대로 남들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불안할수록 더 차분하게 웃고, 괜히 시시한 농담을 하는 편입니다. 나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제가 하는 일은 촬영기자입니다. 뉴스에 사용할 영상을 기자의 시각으로 촬영 혹은 취재를 하고, 회사에 들어와 편집 후 뉴스를 내보냅니다. 지금은 잠시 부서를 옮겨 유튜브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가끔 현장에 나가면 '극도의 긴장 상태'가 됩니다. 뉴스 영상은 있는 사실 그대로를 담아야 하는 것이 기본 전제이기 때문에, 상황을 놓치면 끝입니다. 혹은 방송 시간이 임박했을 때에는 제가 찍은 영상들이 편집 없이 그대로 나가기 때문에, 녹화 버튼을 신중하게 눌러야 합니다. 편집까지 생각하면서요. 혹은 편집 중 방송 시간이 임박하면, 심장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자진모리장단으로 뛰는 기분이 들어요. 혹은 흰머리가 100개쯤 늘거나, 10년쯤 한 번에 늙은 기분이 들거든요.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 종일 긴장 상태를 보내고 오면 멍한 상태가 됩니다. 뇌의 회전이 멈춘 기분이 이런 기분일 거예요.


스톰 브레이커를 만들러 니다벨리르에 들른 토르의 심정도 그랬을까?



하지만 이런 것과 또 별개의 문제가 있습니다. 카메라가 무거워서 몸이 아픈 것은 둘째입니다. 사건 사고를 뉴스를 촬영하고 나면, 시청자들에게 너무 자극적이지 않은 영상을 보여주기 위해 모자이크를 하나하나 칩니다. 사고 현장을 촬영할 때 한 번, 편집할 때 한 번, 모자이크를 칠 때 한 번, 완본 확인을 할 때  또 한 번. 총 네 번을 정말 열심히 그리고 자세히 봐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날이면 집에서 독한 술을  마십니다. 깊게 자고 싶거든요. 그래서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한 가지 버릇이 생겼습니다. 집에 오면, 정말 죽을 듯이 졸릴 때에만 침대로 갑니다. 혼자 살면서 불 꺼진 캄캄한 방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거든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안고 가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잠깐 내용이 샜네요. 그런데 굳이 이 말들을 적은 이유는, 이런 저의 일상을 버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준 것이 '토니 스타크'라는 캐릭터였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토니는 어벤저스 1편에서 핵무기를 들고 우주 밖으로 나가는 선택을 합니다. 자신이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그런 희생을 한 것이었죠. 그리고는 토니는 기적적으로 돌아와 슈와마를 먹으러 가자고 농담을 합니다.





아이언맨 3에서 토니는 트라우마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지만, 불면증에 취미(?)로 만든 아이언맨 군단을 불러 모아, 악당을 때려잡으며 "크리스마스니까 다 교회로 데려가!"를 외칩니다.




그리고 어벤저스 엔드게임에서는 능청스럽게, 혹은 비장하게 "I am Iron man."이라는 대사로 최후를 맞이하고요.



와 이게 장난감으로 나왔을 줄은..


토니라는 인물을 보면서 어떻게 불안을 숨겨야 하는지 어느 정도 알게 됐습니다. 꽤나 이기적인 캐릭터임과 동시에 남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저런 말주변을 가졌다는 건, 천재가 정말 맞다는 생각도 들고요. 새로운 무언가를 발명하는 것 그리고 그 동기부여, 쫄아도 쫄지 않은 것처럼 대범한 토니 덕분에, 나는 20대를 버틸 수 있었습니다.


마블 시리즈에서 이제 아이언맨 시리즈가 끝나고 토니 스타크가 퇴장했습니다. 마음이 많이 휑하지는 않아요. 나의 20대에 참 많은 것들을 던져주고 갔거든요. 30대는 어떻게 '존버' 해야 하는지, 3000만큼의 힘을 주고 사라진 토니 스타크, 고마웠습니다.


3000만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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