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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 Dec 25. 2018

사카나

j에게. 

제이, 물고기를 있잖아, 일본어로 발음하면 사카나가 된다니, 신기하지 않아? 누가 처음 언어라는 걸 만들었을까?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이 모든 것들을 무엇이라 부르고 무엇이라 발음할지 정했을까? 


제이, 나 물고기가 되고 싶어. 그래, 사카나가 되고 싶어. 그것들은 때로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서라도 형체 없는 집으로 향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에는 그저 물살이 가는 대로 향해도 괜찮잖아. 어쩌면 물고기는 내가 선택하느라 보내는 일생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음으로 보내고 있을지도 몰라. 


제이, 사카나. 사카나라고 발음해봐. 이 경쾌한 떨림을. 이 미묘한 희열을. 내가 아주아주 작아지고, 외딴곳의 생명체가 된다는 상상을 해봐. 우리, 그렇게 작아지는 거야. 우리, 그렇게 바뀌는 거야. 



제이, 눈을 감았어? 비늘이 돋아난 피부를 느꼈어? 벌어진 아가미로 들이닥치는 숨을 들이켰어? 


저 먼 곳의 풍경을, 아른거리는 너의 형체를, 일렁이는 햇살을 보았어? 제이, 저걸 봐, 또 하루가 가고 있어. 




아, 제이. 내 생각이 짧았어. 제이, 이걸 봐. 이 쉬지 않는 꼬리를 봐. 두 다리가 없어진 대신 없는 힘을 쥐어짜 내가며 요동치고 있는 우리의 꼬리를 봐. 내 생각이 짧았어. 저기 저 무엇보다도 못한 생각이었어. 이 가냘픈 몸부림을 봐.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어. 우리, 살아가는 걸 멈출 수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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