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매이지 않은 관계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막 고등학생이 되어 우리를 찾아왔던 너가 생각나. 우리 중에서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해줄 게 없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너는 그런 나를 알아봐 주었어.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인간이란 바깥의 껍데기 틈 사이로 서로의 없음을 만나게 되었고, 신형철의 말마따나 그 '없음'이, 우리 영혼의 공명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했지.
나는 이제 막 스무 살을 벗어났고, 너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었어. 언젠가는 내가 서른 살이 되고, 너는 이십 대에 걸쳐있게 되겠지. 더 먼 미래는 사실 잘 생각이 안 나. 그냥 언제까지나, 우리는 한 발짝 떨어져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으로 남을 거란 느낌뿐.
내가 너를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알아. 언제나처럼 내가 우울해할 때, 네가 그런 나를 위로하지 못하고. 며칠 전처럼 너가 힘들어할 때, 내가 너에게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하지만. 나와 당신은 그렇기에 '우리'에 얽매이지 않고 오롯한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러니 슬퍼하지 말아. 아니, 슬프다면 마음껏 슬퍼해도 좋아. 나는 그런 너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