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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노아 Mar 12. 2018

세이건 행 후발대_01

  마리가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장소는 틀림이 없다. 몇 번이나 GPS를 켜고 확인해 봤지만 칼이 메시지로 알려준 좌표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원래 마리는 이곳에서 자신을 항성 간 왕복선이 정차해 있는 우주정거장까지 데려다 줄 비행정을 만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해진 시간을 제법 많이 넘겼는데도 비행정의 그림자는커녕 엔진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된 거야, 칼. 이 빌어먹을 자식아.

  몇 주 전, 아직까지 남아 있는 정식 직원과 그들의 가족은 모두 19차 이주 그룹에 배정받았다는 사실을 발표한 뒤, 칼은 따로 마리를 불러서 덤덤한 얼굴로 그녀는 배정에서 제외되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럼 저는 20차 그룹인가요? 아니요, 마리 씨는 20차에서도 제외입니다. 하지만 20차가 마지막이잖아요? 이주 프로젝트가 모두 다 마무리된 건 아니에요, 마지막 잔업을 처리하기 위해 좀 더 남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 사람들은 20차 이후의 후발대로 올 거예요, 앞선 그룹들보다 규모는 매우 작지만 이주 수행 설계는 동일하니 걱정할 것 없어요. 그럼 저는 그 후발대라는 소리인가요? 그렇습니다. 어째서요? 마리 씨가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죠. 그게 뭔데요? 혹등고래요.

  뭐라고요?




  그것은 아크Ark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였다. 행성 세이건으로의 지구인 이주 프로그램이 무사히 궤도에 오르자 일부 학자들은 지구상의 주요 동식물에 대한 대대적인 유전자 아카이빙을 이주 프로그램에 포함시킬 것을 강력히 주장했고, 짧지 않은 논쟁 끝에 세계연합은 이들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살아남은 생물종 가운데 주요 대상으로 분류된 127만 종에 대한 유전자 표본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세계연합은 물론 각국의 공공기관과 민간 기업의 리소스까지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 마리 또한 세계연합 환경부 소속의 6급 실무자로서 몇 년간 이 프로젝트에 매여 어마어마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인간을 이주시키려면 목록을 작성하고 공문을 보내고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픽업만 제대로 하면 되는데, 이 이주민들은 우리가 일일이 현관문 앞까지 찾아가서 유전자를 뽑아 와야 하잖아, 대부분은 비행도로도 안 뚫린 지역에 살고 말이야. 한때 마리의 동료였던 누군가는 이렇게 투덜거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인력난이 심각하던 아프리카 쪽 지부로 파견을 나갔다가 세렝게티 인근에서 야생동물의 습격을 받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잠시 떠돌았지만, 모두가 저마다 담당한 구역을 -밀림이며, 고원이며, 해저를- 밤낮없이 뒤지며 돌아다녀야만 했던 와중에 그냥 잊히고 말았다.

  그렇게 전 지구에 수많은 사람들의 한탄을 뿌리며 채집한 유전자 표본은 다시 세심하게 분류하고 안정화 처리를 한 뒤, 9차 이주부터 왕복선의 표본 전용 화물칸에 차곡차곡 실어 세이건으로 보내졌다. 도착지에서는 유전자 보존 연구소가 이를 넘겨받아 우주여행 도중 파손되거나 분실된 표본이 없는지 조사한 후에 확인을 마친 목록을 다시 지구로 전송했다. 지구 표준시 기준으로 왕복선 도착일이 임박하면 담당자들은 부정맥을 일으킬 만큼 긴장했다. 운 나쁘게도 자신이 담당했던 종種의 유전자를 다시 채집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은 어떤 담당자가 실성한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통신 디바이스를 깨부수고 그만두겠다고 통곡을 하는 영상이 한 다국적 중계방송의 유머 프로그램에 등장한 이후에는 더더욱 그랬다.

  마지막 표본 컨테이너를 싣고 떠난 16차 이주 왕복선이 무사히 세이건에 도착하면서 그 무시무시한 프로젝트는 드디어 막을 내렸다. 아크 프로젝트라는 이름은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대부분 욕설을 차용한 다른 이름으로 불렸지만- 모두가 지우고 싶어 하는 악몽처럼 빠르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마리 역시 지난 몇 년 동안 그것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프로젝트 초기에 자신의 담당 목록에 혹등고래가 있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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