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산문집 '여행의 이유' 리뷰
자주 여행을 떠난다. 일 년에도 여러 번 비행기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닌다.
그런데 뭘 얻어왔는지도 잘 모르겠고, 왜 나는 또 떠나고 싶어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그걸 알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과거 떠났던 여행지에서 보고 느끼고 얻어온 것 들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은 지에 대해서.
그래서 요즈음 나의 모든 시선은 '여행'과 '여행 기록물'에 쏠려있다. 책방에 가도 제일 먼저, 제일 많이 보는 책이 여행 에세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여행을 바라보는지, 내가 쓰고자 하는 기록물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소설책을 잘 읽지 않는 나도 아는 베스트셀러 작가 김영하가 여행 에세이를 냈다.
마침 제목도 내가 그토록 찾고 싶은, 그래서 책까지 써보겠다 결심하게 만든 '여행의 이유'.
‘여행의 이유’를 한달음에 다 읽었다.
읽는 중에는 괜히 읽기 시작했나 싶기도 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쓴 책 속에는 너무 깊은 삶의 성찰들이 담겨있는 것 같아서, 그에 비해 아직 얼마 살지도 않은 20대 조무래기인 내가 쓸 이야기들은 너무 초라할 것 같아서.
또 깊은 공감을 일으키는 문장이 많았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내 이야기에 반영해서 써버리지는 않을까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좋게 말해 반영이고, 나쁘게 보자면 표절)
책 속 문장들에는 작가로서의 김영하의 아이덴티티가 아주 명확하게 담겨있었다.
'작가인 김영하'라서 느낄 수 있었던 여행의 감상을 '작가인 김영하' 로서 써 내려갔다.
이를테면 이런 부분들.
작가는 소설을 집필하며 뉴욕에 머물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소풍 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월가를 점령하라’를 외치고 있는 시위대의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 그들이 모여있는 주코티 공원을 찾는다.
작가는 시위대의 모습과 그것을 관찰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폰 샤미소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인용하여 설명한다.
아래는 그 내용의 인용이다.
”그 가을 주코티 공원에서 삼시세끼 피자를 먹으며 노숙하는 이들은 잠시 ‘사람’이었다. 주코티 공원의 시위 참여자들은 서로를 환대했고, 1퍼센트의 탐욕에 분노하던 사회의 말 없는 99퍼센트들도 피자를 보내 자신들의 환대를 표현했다. 일시적이나마 그들은 월가의 일부를, 주코티 공원이라는 장소를 차지할 수 있었다. (…) 그러나 거기에 나의 그림자는 없었다. 이년을 넘게 살았지만 곧 자리를 털고 떠날 구경꾼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는 그 사회에 아무 책임도, 의무도 없었다.”
겪은 일을 상세히 적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그렇지만 작가로서의 김영하의 글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여행지에서의 일과, 자신이 읽은 문학작품을 결합해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보다 뚜렷하고 견고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나는 이 책에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 어떻게 하면 '나' 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 보게 되었다는 점에서. 애초에 나는 누구이며, 내 글은 어떤 특징을 담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 여행의 이유도 잘 모르겠고, 여행의 이유를 나 혼자 보는 일기장이 아닌 독자가 있는 책의 형태로 쓰기 시작한 이유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런 거창한 이유나 메시지를 굳이 '지어내야'하는가 싶기도 하다.
베스트셀러 작가 김영하의 에세이도 결국 스스로의 여행의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에 불과했다.
그는 문장을 써 내려가며 여행에서 느낀 것 들을 '그제서야' 깨달았을 것이다. 문장이라는 그릇을 만들어 기억을 그 그릇 안에 담지 않았다면 아마도 쭉 깨닫지 못했을 감상들.
마지막 작가의 말 까지 다 읽어 내리고 나서는 역시 읽기 잘 했다고 생각했다.
거창한 이유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그냥 문장을 만들기 시작하라고 말 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