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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Feb 13. 2020

그 계절, 내가 배운 것들

할아버지의 산소에는 매화나무가 있었다

할아버지의 무덤 옆에는 몇 그루의 매화나무가 있었다. 누가 심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꾸준히 그 매화나무를 들여다보는 건 우리 가족이었다. 정확히는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철마다 수확을 하러 갔었다. 


겨울의 냉기가 채 가시지 않은 계절에 매화나무는 가장 먼저 꽃을 피웠다. 매화를 본 사람만이 그 청초한 아름다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홍매보다 청매를 사랑했다. 갓 싹을 틔운 것 같은 엷은 초록색 꽃받침이 흰 꽃잎들을 감싸고 있었다. 홍매가 예쁘장하고 귀여운 아이 같다면 청매는 한 겨울 목욕탕에서 머리를 말리지 못하고 급히 나온 뽀얗고 청초한 어른 여성 같았다.


우리는 대게 할머니 집에서 잠을 자고 이른 아침에 매화나무를 둘러보러 나갔다. 아침잠이 없는 아빠가 가장 먼저 일어나 나머지 가족들을 깨웠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소쿠리 같은 것을 챙기기도 했고, 어느 날은 외투만 걸친 채 시골길을 걸어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는 할아버지의 산소로 갔다.


올해 1월에 UN공원에서 만난 아름다운 매화나무


시골의 겨울 공기는 도시보다 차갑게 느껴졌지만 새벽이 막 지난 아침의 고요함이 좋았다. 예쁘고 탐스러운 꽃 몇 개 그리고 아직 채 피지 않은 꽃 약간을 따서 주머니에 조심스레 넣어 집으로 돌아갔다.


매화는 엄마의 손에서 좋은 차(茶)로 탈바꿈했다. 티포트에 뜨거운 물을 붓고 매화꽃을 떨어뜨리면 향기로운 꿀내음이 우러났다. 미처 꽃을 피우지 못한 매화는 잔 위에서 만개했다. 따뜻한 차 한 모금을 마실 때, 입 안 가득 밀려들어오는 은은한 향기는 그 계절에만 만날 수 있는 별미였다. 


매화나무는 여름이면 매실을 영글었다. 몇 그루 되지 않는 나무들이 어찌나 탐스러운 매실을 키워내는지 지금 생각하면 놀랍다. 해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어느 해에는 나뭇가지 빼곡히 초록 구슬 같은 매실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우리는 여름의 아침을 가르며 포대자루를 들고 산소로 향했다. 포대자루 한 가득 매실을 담았다. 집으로 돌아와 빨간 대야에 넣고 뽀득뽀득 씻어낸 뒤, 엄마는 바지런히 커다란 용기들을 소독했다. 매실이 잘 우러나오기를 바라며 나와 동생은 삼지창 같은 포크로 구멍을 뽁뽁 내고 투명한 용기에 담았다. 온 집안에 매실 풋내가 번졌다. 켜켜이 담은 매실 위로 설탕이 소복이 쌓이면 그 해 여름 준비가 끝났다. 


여름이 지나가기 전이었던가. 엄마는 다시 매실을 건져 올렸다. 반으로 갈라 씨를 빼는 수고스러움을 거치면 매실은 다시 아삭아삭한 장아찌로 변했다. 더불어 매실청은 여름에는 차갑게, 겨울에는 따뜻하게도 마실 수 있었으니 적은 수고에 비하면 사계절 내내 매실을 즐길 수 있었다.




내게 어린 시절의 기억은 단편적으로만 남아있다. 하지만 지나간 계절로부터 나는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다. 봄이 오기 전 매화를 바라보는 감상, 청매와 홍매를 구분하는 법, 매실청을 담는 법 등. 


언젠가 지인이 이른 계절 핀 매화를 보고 벚꽃이 벌써 피었다며 메신저를 보냈다. 나는 그에게 그건 매화야,라고 말해주었다. 또 다른 지인에게는 이 계절 피어나는 매화와 매화차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말했다. 잔 위에서 피어나는 꽃이라니 로맨틱하다. 글쎄 로맨틱한가? 그 시절의 내게 있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대부분 없다. 이미 지나갔고, 다시 경험할 수 없기에 어쩌면 로맨틱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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