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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Apr 01. 2020

저 사주 보러 왔는데요

고민을 말하고 싶지만 말하기 싫다


얼마 전에서야 유명한 한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읽었다. 담담하게 자신의 정신과 상담기록을 풀어낸 그녀의 이야기에 많은 공감이 되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 그것을 감내할  있는 믿을  있는 사람에게 털어놓는  또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특히 정신과에 찾는 것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리고 불현듯 사주카페에 갔던 일이 떠올랐다.


때는 수년 전, 나는 짧게 만난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길게 만난 남자 친구가 없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건대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애틋함이 부족하고, 늘 반복되는 일상이 무료하고 외로워서 사귀었으나 그의 이별 통보는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나쁜 일은 겹쳐서 온달까. 가까운 누군가가 실연당한 내게 하필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일이 있었고, 그 일로 나는 크게 마음의 상처를 얻었다. 결국 이별은 했고, 돈은 빌려주지 않는 선에서 끝났으나 나의 착잡한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반복되는 이별과 누군가에게 털어놓기엔 찜찜한 개인사를 얻고 끙끙 속앓이를 했다. 


어느 금요일, 밤새 무수한 잡생각들로 잠이 오지 않아 인터넷 검색으로 시간을 보냈다. 한 블로거의 일상 이야기를 읽고 있었는데, 영등포의 사주카페에 들른 신변잡기를 재미있게 푼 것이 인상적이었다. 할 일 없는 토요일, 나는 급히 예약을 하고 영등포로 향했다.


사주 카페는 구도시의 오래된 번화가 1층에 있었다. 성인 세 명이 들어가면 꽉 찰 만큼 아주 좁은 카페였다. 이미 나보다 먼저 상담을 받는 사람들로 가게는 가득 차 있었고, 나는 조금 있다 다시 오겠다며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생년월일을 말하고, 그녀는 내 사주를 풀어주었다. 그런데 나는 애초에 그곳에 간 목적이 있었다. 하소연 다 하고 오기. 나는 그녀에게 최근에 내가 무슨 일이 있었고, 내 기분이 어떤지 소상히 말했다. 너무 감정이입을 하는 바람에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묵묵히 얘기를 열심히 들어준 그녀가 자기도 그런 일이 있었다며, 힘들면 나중에 밥 한 끼 먹자고 했다.


집으로 오는 길, 이게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지만 마음이 후련했다. 그녀는 나의 일일 정신과 상담사였던 셈이다. (사주는 사실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미래의 내가 더 잘될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나고, 맞춘 것도 아마 하나도 없는 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좀 바보 같은 일화지만 그 날 나는 오랜만에 푹 잠들었다.

인생 뭐 별거 있나. 성실히 사는 데 좋은 일 있겠지요.


그리고 이후 사주카페를 두 번 더 갔다. 더 이상 나는 생면부지의 남에게 위로받거나 해묵은 감정을 쏟아낼 필요가 없을 만큼 담담한 사람이 되었다. 이후에 사주카페는 지인의 권유로 재미 삼아 갔다.  그리고 역술인이 하는 이야기 중 좋은 이야기들만 취사선택해서 마음에 담았다. 사고수가 있다, 이런 이야기는 흘려듣는다.(응, 사고 그까짓 거.) 사고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 될 거란 이야기는 또 기가 막히게 기억 속에 담아둔다.(오, 42세 이후에 잘 된다고. 이건 밑줄 긋고 저장한다.)


가끔 길을 지나다 아주 허름한 천막에서 사주를 보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한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겠구나. 그리고 뭐 재미로 볼 수도 있지. 그런데 이제 나는 가지 사주카페에 가지 않을 것 같다. 뭐든 삼 세 번 경험해보면 충분하단 생각이 든다. 그리고 메마른 감정의 골짜기를 혼자 채워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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