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수년 전, 나는 짧게 만난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길게 만난 남자 친구가 없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건대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애틋함이 부족하고, 늘 반복되는 일상이 무료하고 외로워서 사귀었으나 그의 이별 통보는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나쁜 일은 겹쳐서 온달까. 가까운 누군가가 실연당한 내게 하필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일이 있었고, 그 일로 나는 크게 마음의 상처를 얻었다. 결국 이별은 했고, 돈은 빌려주지 않는 선에서 끝났으나 나의 착잡한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반복되는 이별과 누군가에게 털어놓기엔 찜찜한 개인사를 얻고 끙끙 속앓이를 했다.
어느 금요일, 밤새 무수한 잡생각들로 잠이 오지 않아 인터넷 검색으로 시간을 보냈다. 한 블로거의 일상 이야기를 읽고 있었는데, 영등포의 사주카페에 들른 신변잡기를 재미있게 푼 것이 인상적이었다. 할 일 없는 토요일, 나는 급히 예약을 하고 영등포로 향했다.
사주 카페는 구도시의 오래된 번화가 1층에 있었다. 성인 세 명이 들어가면 꽉 찰 만큼 아주 좁은 카페였다. 이미 나보다 먼저 상담을 받는 사람들로 가게는 가득 차 있었고, 나는 조금 있다 다시 오겠다며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생년월일을 말하고, 그녀는 내 사주를 풀어주었다. 그런데 나는 애초에 그곳에 간 목적이 있었다. 하소연 다 하고 오기. 나는 그녀에게 최근에 내가 무슨 일이 있었고, 내 기분이 어떤지 소상히 말했다. 너무 감정이입을 하는 바람에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묵묵히 얘기를 열심히 들어준 그녀가 자기도 그런 일이 있었다며, 힘들면 나중에 밥 한 끼 먹자고 했다.
집으로 오는 길, 이게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지만 마음이 후련했다. 그녀는 나의 일일 정신과 상담사였던 셈이다. (사주는 사실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미래의 내가 더 잘될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나고, 맞춘 것도 아마 하나도 없는 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좀 바보 같은 일화지만 그 날 나는 오랜만에 푹 잠들었다.
인생 뭐 별거 있나. 성실히 사는 데 좋은 일 있겠지요.
그리고 이후 사주카페를 두 번 더 갔다. 더 이상 나는 생면부지의 남에게 위로받거나 해묵은 감정을 쏟아낼 필요가 없을 만큼 담담한 사람이 되었다. 이후에 사주카페는지인의 권유로 재미 삼아 갔다. 그리고 역술인이 하는 이야기 중 좋은 이야기들만 취사선택해서 마음에 담았다. 사고수가 있다, 이런 이야기는 흘려듣는다.(응, 사고 그까짓 거.) 사고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 될 거란 이야기는 또 기가 막히게 기억 속에 담아둔다.(오, 42세 이후에 잘 된다고. 이건 밑줄 긋고 저장한다.)
가끔 길을 지나다 아주 허름한 천막에서 사주를 보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한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겠구나. 그리고 뭐 재미로 볼 수도 있지. 그런데 이제 나는 가지 사주카페에 가지 않을 것 같다. 뭐든 삼 세 번 경험해보면충분하단 생각이 든다. 그리고 메마른 감정의 골짜기를 혼자 채워 나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