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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Mar 14. 2021

엄마 닮아서 그래

유별난 엄마와 그 딸

 영남아파트 101호에 살던 우리 엄마는 조금 유별난 사람이었다. 그녀가 영남아파트에 자리 잡은 건 결혼과 동시에 고향을 떠났고, 연거푸 원하던 아파트 청약에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막 발전하는 도시의 중심부에는 대단지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었지만, 영남아파트는 그에 비하면 작은 아파트였다.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큰 딸을 키우기 위해 그만두었다. 그녀는 서비스직 특유의 살가운 성미나 사교성을 갖추진 못했다. 그래도 90년대의 이웃들은 허물없었고, 아파트에 산다 한들 이웃집 초인종을 누르는데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웃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사랑한 건 청소, 화초 가꾸기, 요리였다. 그 덕에 101호의 마룻바닥은 미색 장판이었지만 두 아이를 키워내면서도 늘 반짝였다. 이따금 날을 잡고 퐁퐁을 풀어 수세미로 장판을 닦았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면 집 안 가득 옅은 세제 냄새가 풍겼다. 엄마의 깔끔한 성미를 아는 탓에 이웃들은 우리 집에서 반상회를 할 때면 과자 부스러기를 흘리진 않을까 눈치를 살피곤 했다.     


 101호의 베란다도 온전히 엄마의 전시장이었다. 계절마다 화분들이 앞 다투어 꽃을 피워냈다. 신기하게도 그녀의 손을 거쳐 간 화분들은 새로운 잎사귀를 만드는데 도를 튼 것 같았다. 특히 통통하고 동그란 잎에 둘러싸인 앙증맞은 색색의 꽃들을 피우는 바이올렛 기르기가 주특기였다. 일렬종대로 늘어선 바이올렛은 금세 화분을 뚫을 기세로 커갔다. 엄마는 부지런히 웃자라는 줄기를 잘라 꼬모(요플레) 통에 넣고 수경 재배를 시작했다. 통통한 서너 개의 잎들이 제법 화초의 모양을 갖추면 꼬모 통은 종종 이웃집으로 이사를 했다. 거기서 새 주인을 만나 둥지를 텄다. 하지만 진짜 베란다의 백미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즈음이다. 할머니 집에서 얻어온 감 껍질을 곱게 깎아 베란다에 매달면 주황빛 곶감에 달달한 흰 분이 번져갔다. 엄마의 노동력과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맛있는 곶감을 베어 물 수 있었다.      


 꽃향기가 나는 집에선 끼니마다 맛있는 음식 냄새도 풍겼다. 어린 시절 유독 입이 짧던 큰 딸을 둔 탓에 엄마는 요리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까다로운 나를 키워내기 위해 그녀는 좋은 식재료만 골라 이유식을 만들었노라 지난 시절을 감상하며 하소연하곤 했다. 다행히 먹성 좋은 동생이 생기면서 나의 까다로움도 무뎌져 갔다. 그래도 그녀는 요리를 사랑했다. 뭐든 배우길 좋아하던 그녀는 요리 학원에 등록해 한식 조리사, 양식 조리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자매는 엄마의 시험 합격을 기원하며 시험 과제들을 열심히 먹어 치웠다. 

 두 끼를 급식으로 먹던 고등학생 때는 한 끼는 집 밥을 먹으라며 도시락을 싸주곤 했다. 오징어볶음 하나도 그냥 만들지 않던 엄마는 켜켜이 칼집을 내어 양념이 잘 베이게 했고, 친구들과 먹으라며 넉넉하게 수육을 싸주기도 했다. 그래서 몇몇 내 친구들은 나를 도시락 잘 싸오는 아이로 기억하기도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와 동생은 엄마가 사랑한 것들을 천천히 알아간다. 나의 자취 경력은 이제 10년을 훌쩍 넘었다. 얼마 전 새 집으로 이사 온 후, 자매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장판을 닦아냈다. 힘들 때면 이전 세입자의 지저분함을 흉보면서 장판 닦기에 몰두했다. 또 때로는 엄마를 닮은 정리정돈법을 이야기하며 오래된 아파트의 케케묵은 때를 벗겼다. 곰팡이를 벗은 뽀얀 베란다 창 너머로 부서지는 햇살이 거실 바닥에 드리우면 땀을 식히며 뿌듯함을 느낀다.


꽃 트럭에서 사온 아이비, 오래도록 함께 하기를


 우리는 집 근처에서 꽃을 파는 트럭을 만나도 쉬이 지나치기 어렵다. 싱그러운 어린 생명에 감탄사를 연발하는 어르신들 사이에서 오종종한 화분과 꽃들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결국은 그  푸르름에 이기지 못해 종종 작은 화분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아직까지 엄마만큼 예쁜 꽃을 피워내진 못했다.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아주 가끔 여유 있는 주말이면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본다. 엄마는 늘 신선한 재료로 풍성한 밥상을 뚝딱 만들어냈다. 나는 부족한 솜씨로 밀키트로 음식을 만들거나 고기를 굽는다. 이 식사의 백미는 엄마의 장아찌야, 나는 늘 얘기한다. 간단히 집에서 먹는 상차림이지만 정갈한 그릇에 담고, 이왕이면 예쁘게 담아본다. 설거짓거리는는 늘어나지만 어쩐지 행복하다.     

 

 유별난 살림꾼이었던 엄마를 조금씩 닮아간다. 나는 나를 위해서만 청소하고, 요리하고, 화초를 가꾸며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엄마에게 늘 대접받고 살았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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