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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Aug 15. 2021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눈물의 여왕

아이는 눈물을 쏟으며 어른이 되었다

눈물의 여왕


첫 번째 이야기, 여왕이 놓친 것 


 당신은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누구나 일생의 한 번은 요정들을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높은 상공에서 살고 있었다. 외모도, 성격도 각각 다른 요정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귀여운 참견쟁이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몰래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연인들의 사랑을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했고, 길을 잃은 어린아이를 만나면 경찰관을 만날 수 있도록 운동화에 달라붙어 발걸음을 옮기게 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요정은 자신이 몰래 지켜보던 소녀가 외로움과 슬픔에 잠긴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소녀는 매일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슬픔에 빠진 소녀를 달래주고 싶었던 요정은 다른 요정들을 불러 모았다. 긴 회의 끝에 그들은 슬픔을 잊게 해주는 묘약을 만들기로 하였다. 대지와 우주 사이를 넘나들면서 온갖 진기한 것들을 한데 모아 큰 솥에 넣어 끓이기 시작했다. 


“주걱으로 휘젓지 않으면 타고 말 거야!”


 요정들은 일주일 동안 힘을 모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펄펄 끓는 솥 안에 담긴 주걱을 휘휘 저었다. 어찌나 힘들었는지 요정들의 어깨와 팔은 저녁이면 가늘게 떨리기도 했다. 솥에 담긴 액체는 끓일수록 단단하고 반투명해졌다. 마치 인간들이 좋아하는 사탕을 녹인 것과 같았다. 


“이 뜨거운 액체로는 인간에게 몰래 전해줄 수 없겠어.”


 요정들은 액체를 차갑게 얼리기로 했다. 마침내 찐득거리던 액체는 커다란 구슬로 완성되었다. 그것의 표면은 울퉁불퉁해서 엉성해 보였지만 각도에 따라 여러 색으로 반짝였다. 모든 요정이 구슬을 보기 위해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그것이 슬픔을 잊게 해주는 묘약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날개를 다친 요정을 불러 시험해보기로 했다. 날개를 다친 요정은 당분간 인간 세상으로 내려갈 수 없어 요 며칠 시무룩한 얼굴로 누워서 지내기만 했었다. 다른 요정들의 부름에 상처 입은 요정은 내키지는 않는 표정으로 구슬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두 팔을 벌려 구슬을 감싸 안았다.


“어때?”


 모두 기대에 찬 눈으로 상처 입은 요정을 바라보았다.


“음, 잘 모르겠어. 슬프지 않아. 하지만 행복하지도 않아.”


 구슬을 껴안은 요정의 시무룩한 입꼬리가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생기가 없었다. 슬픔을 없애려던 구슬이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


 요정들은 일주일간의 노력이 허사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이번에는 늘 웃음이 많은 꼬마 요정에게 구슬에 손을 갖다 대라고 시켰다. 헤실거리며 잰 발걸음으로 달려온 꼬마 요정은 구슬에 양 볼을 비비고 두 손을 갖다 댔다. 


“꼬마야 어때?”

“이상해요, 전혀 즐겁지가 않아요!”


 꼬마 요정의 축 처진 어깨를 보며 모든 요정이 실망할 무렵 여왕도 신묘한 구슬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우아한 푸른색 드레스 차림으로 나타났다. 모든 이들이 그녀에게 길을 터주었다. 여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고민한 뒤 말했다.


“아무도 슬픔을 못 느껴선 안 돼. 그리고 아무도 감정을 못 느껴서도 안 돼!”


 자신의 허락 없이 인간의 삶에 깊이 있게 관여하려는 요정들에게 여왕은 화가 났다. 여왕은 요정들의 귀여운 장난과 선행은 눈감아 주었지만, 인간들의 감정을 마음대로 조절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요정들은 격양된 여왕의 목소리를 듣고 겁이 나 벌벌 떨었다. 이윽고 여왕은 길고 큰 봉으로 구슬을 힘껏 내리쳤다. 구슬은 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고, 부서진 잔해들은 인간 세상까지 흩날렸다. 여왕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 잔해들이 사람들의 심장과 눈, 그리고 마당에 박혀 무표정한 인간들을 만들리라고는.


 그 파편이 박힌 인간들은 슬픔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행복감도 느낄 수 없었다. 작은 조각을 갖고 놀던 아이들도 재잘거리는 대신 의젓한 아이가 되어 말수가 줄었다. 어른들은 부쩍 말수가 준 아이들의 의젓해졌다며 좋아했다. 하지만 그들은 입을 꾹 담은 채 어른들의 말만 귀담아듣기 시작했다. 몇몇 집에서는 아이들은 어른처럼, 어른들은 아이처럼 변해버렸다.





두 번째 이야기, 반짝이는 조각


 살갗이 쓰라릴 만큼 뜨거웠던 8월의 어느 날, 반투명의 미확인 결정(結晶)이 온 세상에 흩날렸다. 한여름에 눈이 내릴 일은 만무했고, 그것은 우박이나 먼지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작고 둥근 원형의 모양 때문에 흡사 별사탕처럼 보였다. 느닷없는 이상 기후의 이유를 알지 못한 사람들은 급히 우산을 꺼내 들기도 하고, 신기한 듯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였다. 마침 나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걸음이 느린 탓에 친구들은 아마도 집에 다들 도착했을 시간이었다. 우산 없이 그것을 맞은 나는 작고 도돌도돌한 그 결정을 바지 주머니에 가득 넣어 집으로 돌아갔다.


 이상한 일은 그다음 날부터 일어났다. 아침 일찍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귀여운 노란색 볼에 시리얼과 우유를 가득 담아 수저로 우걱우걱 퍼먹고 있었다. 마침 엄마가 켜 둔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어제 오후의 기상 이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직 그것의 정체는 모르며, 그것을 맞은 사람들 중 통증이나 건강 이상 반응이 있다면 긴급 콜센터에 전화하고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어제 그것을 맞고도 아무렇지 않았으므로 입 안 넣은 고소하고 달달한 시리얼의 맛을 느끼는 것에만 집중했다.


“엄마 오늘 늦을 거야. 열시 넘어서 올 수도 있으니까 냉장고에 밥 차려 먹고, 텔레비전 늦게까지 보지 말고, 숙제는 미리 하고, 일찍 자야 해. 중간에 전화해서 확인할 거야.”

“응.”


 그 날 아침에는 마음 한구석이 답답한 느낌이 없었다. 아침마다 늦을 거라고 얘기하는 엄마의 말에도 전혀 슬프지 않았다. 나는 조금 이상했지만 덤덤한 발걸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친구들은 아침부터 어제 본 이상한 광경에 대해 모두 떠들었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그걸 맞은 사람들은 죽을지도 모른대!”

“아마 그건 지구가 멸망한 거란 암시래!”


 나는 친구들의 말을 모두 믿을 수 없었다. 내 주머니에는 아직도 어제 주운 그것이 있었고, 나는 곧 죽을 것처럼 아프지도 않았다. 하지만 학교를 돌아와서도, 친구들과 놀면서도, 학원에서 제일 좋아하는 선생님이 나를 칭찬했을 때도 어색하게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내 몸에서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반짝이는 조각을 주운 지 꽤 시간이 흘렀을 때 엄마는 내가 요즘 이상하다고 했다. 어젯밤 먼 타국에서 일하는 아빠와 영상 통화를 할 때 맥없는 표정으로 안부를 듣기만 하는 것이 평소의 나답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더 어렸을 때는 아빠와 영상통화를 할 때마다 늘 엄마보다 한 마디 더 얘기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코끝이 빨개져서 얼른 돌아오라며 보채기도 하였다. 내가 보채고 울었던 건 꽤 오래전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그때 일을 마치 어제 일을 말하듯이 얘기했다. 


 어느날 엄마는 내 이마를 짚어보고 체온을 재어보기도 했다. 잠결에 거실에서 오래도록 서성이는 엄마의 발소리를 들렸다. 이윽고 내 방으로 들어온 엄마는 수다쟁이처럼 회사 일, 아빠와의 일을 모두 털어놓으며 재잘거렸다.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나였고, 내가 먼저 묻지 않아도 나는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정작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무언가 입에서 나오려고 할 때면 이렇게 말하면 엄마가 슬퍼하겠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었다. 늘 지친 표정의 엄마에게 친구와 싸운 일이라거나 준비물을 챙겨가지 않아 난감했던 일을 말하는 것은 나쁜 아이가 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도 선생님 역시 수업이 끝난 후 나를 따로 불러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요즘 혹시 친구들과 무슨 일이 있니?”

“아니요, 없어요.”


 아무 일도 없다고 말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친구들과의 수다와 게임에 흥미를 잃었고, 예전처럼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친구가 슬퍼해도, 화를 내어도 곰 인형처럼 옆에 있기만 할 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결국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친구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했다. 


“야! 너 요새 왜 게임 하러도 안 오고, 학원에서도 조용하냐?”

“나 사실은 그 이상한 날씨가 있던 날, 그 가루를 맞고야 말았어.”


 친구는 나의 비밀을 자기 엄마에게 말했다. 그리고 친구 엄마는 우리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내 이야기를 했다. 그날 밤, 엄마는 나를 세게 끌어안고 밤새 내 옆에서 잠들었다. 그러나 별다른 말이 없었다. 다만 집에서 내내 뉴스 채널을 틀어놓은 걸 보아 그날의 반짝이던 하늘에 대해 신경 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날 외출했던 사람들이 무표정한 표정으로 지하철 안에서, 회사에서, 그리고 집에서 나사가 빠진 것처럼 감정 표현에 서툴러졌다고 엄숙한 얼굴의 아나운서가 말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증상을 앓고 있었다. 집단적 우울증인지 또는 또 다른 신체적 증상을 동반하는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음 날 나는 모든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학교를 가는 것도, 친구를 만나는 것도 재미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 추적추적 비가 내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 대신 집 근처 해수욕장으로 갔다. 오랜만에 맨발로 모래사장을 걸었다. 부드럽고도 까끌거리는 젖은 모래를 밟으니 몇 년 전 부모님과 바닷가에 온 기억이 났다. 다행히도 모래사장에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평일 오전에 나 같은 꼬마가 동네를 서성인다면 학교에 왜 안 가는지 묻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꼬마야, 너 학교 안 가고 여기서 뭐 하니?”

“오늘 엄마가 학교 안 가도 된다고 했어요.”


 긴 머리칼을 가진 아저씨가 내게 물었고, 나는 거짓말을 했다. 금방까지 비를 맞으며 파도 위에서 패들보드를 탄 탓인지 아저씨는 조금 지쳐 보였다. 빗속에서 혼자 노는 내가 이상해보였는지 의아한 눈길을 건넸지만, 비 맞으며 노를 젓는 아저씨도 이상해보이긴 매한가지였다. 평소라면 절대 모르는 어른의 말을 듣지 않았을 텐데. 나는 아저씨가 선뜻 보드를 빌려주겠다고 하는 바람에 난생 처음 노를 저으며 바다로 나아갔다. 그리고 파도가 나를 집어삼켰다.


 파도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몸에 힘이 나지 않았다. 수심이 내 키를 훌쩍 넘었기 때문에 바닥에 발을 디딜 수도 없었다. 점점 더 먼 바닷가로 밀려난다는 생각이 들 때쯤 온몸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벌떼처럼 작은 무언가의 한 무리가 놀랍게도 나를 수면 위로 번쩍 끌어올렸다. 나는 해수면을 벗어나 난생 처음 상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잠시 정신을 잃은 후 도착한 곳은 구름 위의 세상이었고,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었다. 나를 끌어올린 작은 정체들은 유리 온실 속의 화원을 보듯 투명한 바닥을 통해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푸른 드레스를 입은 긴 머리칼의 여자가 나타났다. 모두 그녀를 여왕님이라 부르며 머리를 조아렸다. 


“네가 온 이유는 우리가 너에게서 슬픔을 빼앗아갔기 때문이야. 이대로 넌 어른이 될 수 없어.”


 나는 여왕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왕은 젖은 생쥐 꼴을 하고 있는 내게 몸을 충분히 덮을 만큼 두툼하고 큰 목욕가운을 건넸다. 그새 요정들은 재빨리 모닥불을 지폈다.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건네받고 여왕의 소파에 비스듬히 누웠다.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졸음이 쏟아졌지만 여왕은 쉴 새 없이 말을 건넸다. 밤새도록 그녀는 내게 요즘은 학교생활은 어떤지, 친구들과는 잘 지내는지 등을 물었다. 처음에는 시큰둥했지만 말할수록 신났다. 그녀는 오래전 내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을 때처럼 두 눈을 반짝이며 내 이야기에 집중했다. 마음속의 무언가가 간질거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오래도록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세 번째 이야기, 뒷 이야기


 오전 회의를 끝내고 부리나케 회의록을 작성하던 중 아이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이가 등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너무 놀란 바람에 “네?”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주변 동료들이 흘깃 시선을 돌렸다. 손이 벌벌 떨리고 심장에서 뜨거운 감정의 덩어리가 왈칵 쏟아지는 것 같았다. 재빨리 폰 부스로 들어가 아이의 친구 집, 만화방, PC방에 급히 전화를 걸었다. 모두 아이를 보지 못했다는 말뿐이었다.


 최근 들어 아이는 이상했다. 예전처럼 잘 웃지도 않고, 잘 보채지도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의 기분을 풀어주려 수다쟁이가 되었다. 아니, 원래 수다쟁이였던 건지도 모른다. 다 큰 녀석이라 생각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매일 쏟아냈는데 어쩐지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빠와 멀리 떨어져 산 탓에 아이가 일찍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옆집 애 엄마는 요즘 아이가 도통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집에 갈 때도 혼자 가고 싶다고 말한다고 이야기 했다.


 아이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엄마가 직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상사에게 아이가 아파서 조퇴하겠노라고 말했다. 따가운 눈총을 피해 급히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이가 혼자 바다에 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미친 사람처럼 해수욕장 앞에 택시를 세우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마치 누군가가 저 멀리에 손짓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잊은 채 바다에 몸을 맡겼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낯선 여자 앞에서 재잘대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나와 그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나는 주먹으로 세차게 벽을 두드리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낯선 이의 품에 안긴 아이의 표정은 열 살배기의 천진함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모두 엿들었다.


 아이는 내가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친구와 싸웠던 일, 사소한 취향, 요즘의 관심사들을 쏟아냈다. 내가 모르는 내 자식의 모습을 나는 처음으로 접했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를 삼킨 파도보다 더 큰 죄책감과 슬픔의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엄마는 늘 힘들어 보여서, 늘 자기 얘기만 해서, 늘 하소연만 해서 자기 이야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아이의 말에 무너져내렸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주먹이 빨개지도록 유리 벽을 쳐봐도, 큰 소리가 나도록 발길질을 해봐도 유리 벽은 좀처럼 깨지지 않던 유리 벽에 작은 실금 하나가 생겼다. 그리고 내가 쏟아내는 눈물들이 바닥을 흥건히 적시기 시작했다.


 실금은 이내 벽 전체로 번져나갔고 찬찬히 부서졌다. 그렇게 꿈에서 깨어났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다. 내 아이는 나를 위로하지 않았다. 왜냐면 작고 여린 것 앞에서 어른의 삶의 고단함을 쏟아낼 수 없었다. 나는 가끔 내게 묻고는 했다. 너는 언제부터 어른이 되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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