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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lli Jan 18. 2022

내향형 E의 속마음

열흘 간 제주에서 삽니다2

이번 제주 여행의 주요 숙소는 게스트하우스다. 왜냐고 물어보면 굳이 이유는 없지만 그냥 별 생각없이 당연하게 선택했다. 호텔을 잡으려면 비용이 많이 드니 경제적 이유로 게하를 택할 수도 있지만 숙소가 5천 개가 넘는 제주에서 너무 좋은 시설만 포기하면 괜찮은 호텔은 많다. 어제는 공항 바로 근처 호텔에서 잤는데 1층을 묵는다는 조건으로 28000원짜리였다. (심지어 5층으로 업그레이드해줬다.) 조금 오래된 호텔이었지만 방도 넓고 잘 관리된 곳이었다. 그에 비해 제주도 게하도 35000에서 40000원 사이가 많다. 내가 어제 묵은 만큼은 아니지만 괜찮은 호텔 5-6만원이 사이인 걸 생각하면, 호텔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왜 호텔을 예약 안 했냐고 묻는 경우가 더 많았다.


글쎄, 왜 그랬을까. 게하는 다른 사람과 같이 한 방에서 자야 한다. 오늘 온 숙소도 3명이 한 방에 잔다. 혹시 비는 침대가 있을까 싶었지만, 나 포함 세 명 모두 입실했다. 예전에도 종종 게하에서 잘 때가 있었지만 주로 친구와 함께였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있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오늘도 일찍 숙소에 있었고 다른 사람이 들어왔는데 그냥 모르는 사이처럼(아니 모르는 사이 맞는데) 조용히 모른 체했고, 다음에 들어온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인사를 해서 같이 인사를 했다. 아, 게하에서 알은체는 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늘 고민된다.


뭐 이렇게 모르는 사람하고 자는 건 다른 사람들이 코만 골지 않으면 큰 상관은 없다. 불편한 건 화장실을 공용으로 써야 하는 점이다. 그것도 씻는 건 괜찮다. 오늘 나는 밀릴 시간을 피해서 7시부터 샤워를 했다. 집에서는 자기 직전 12시에 씻는데 여행의 좋은 영향인가, 내일 아침에도 조금 일찍 씻으면 괜찮다. 화장실 문제는 볼 일을 편하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늘은 5시에 들어오자마자 체크인 ddong을 해결했다. 이걸로 내일까지는 일단 괜찮을 텐데, 내일부터 3일간 묵는 곳도 게하라서 약간 걱정이긴 하다. 낮에 서귀포 어디에 공공화장실 괜찮은 곳을 알아놔야 하나.


이렇게 불편하고 어색한데 왜 게하를 잡았을까. 처음 해외를 갔을 때도 게하를 갔다. 외국에서는 도미토리라고 주로 부르는, 이스탄불의 첫 숙소는 한국 아주머니가 터키 남자와 결혼한 후 연 곳이었다. 그때는 숙소 묵는 사람이 다 같이 모여서 아침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호스트 아주머니와도 친했고, 옥상에 마르마라해가 보이는 해먹에서 누워있기도 했고, 현지인이 많이 사는 건물이라 동네 아이들과도 친해졌다. 나는 모든 숙소의 아침은 그렇게 다 같이 모여서 푸짐하게 먹는 게 기본인 줄 알았는데 다른 숙소를 가보니 그곳이 특별했단 걸 알았다. 그 첫 숙소의 기억 때문일까, 그냥 어딜 가든 게하를 갔다. 호텔을 가기 시작한 건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난 외향형이라 숙소에서 만나는 사람들하고 막 말 걸고 친해지는 스타일도 아니다. MBTI 검사를 하면 entj이긴 하지만 e 중에서는 가장 내향적인 e라고 하던가, 사실 처음 e가 나왔을 때 점수도 낮았고, 나 스스로도 내가 e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내 친구들은 동의 안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어떤 일을 추진할 때는 적극적이긴 한데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막 다가가고 나대고(?) 무대체질이라거나 관심받는 거 좋아하고 그런 건 전혀 없다. 아, 그냥 내 주장이 관철되기를 바라니까 의견을 많이 말할 뿐, 나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실 블로그 후기처럼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친해지고 같이 놀고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친구랑 둘이 있으면 모를까, 혼자 다닐 때는 엄청나게 내향적으로 조용히 말없이 있다가 떠난다. 어릴 때 집에 손님이 오면 방구석으로 도망가서 숨어버리는 스타일이 나였다.


그런데 사실 말 걸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당신에게 관심을 받고 싶기보다 당신이 궁금하고 당신하고 대화를 하고 싶고 당신에게 관심을 주고 싶다. 후기에 호스트님이 너무 친절했어요, 재밌었어요, 이런 내용을 보고 가면 나도 호스트와 대화를 하고 싶다. 그런데 부끄러워서 말을 못 걸겠다. (나도 조용히 가만히 있으니 그분도 못 걸겠지... 또르르...) 지금도 공용공간에서 몇 분이 모여서 대화 중인데 초등교사인지 1학년 담임할 때 6학년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려서 당장 뛰어가서 알은체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있다. 괜히 계단 밑에 만들어둔 공간에 앉아서 혼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안녕하세요~"하면서 들어가면, 막상 얘기가 시작되면, 잘할 수 있는데 그 인사가 어렵다. 그냥 부끄럽다.


누군가와 만나서 소소한 이야기를 가볍게 나누는 거, 그게 하고 싶어서 게하를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설사 나랑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다정하게 나누는 말들이 스미는 공간, 누군가와 어색하고 낯설게 같은 공간에서 자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온기가 느껴지는 공간, 그걸 보려고 자꾸 게하를 찾나 보다. 내일 가는 숙소는 호스트분이 엄청 유쾌하다고 했는데, 거기에서는 3일이나 묵는데, 내향형 E인 나에게 먼저 다가와주기를 기대해봐야지.


안 그래 보이지만 마음은 활짝 열려있어요-!

말걸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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