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입니다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가성비를 따지다 보니, 더 나아가 최근에는 가심비를 넘어서 시간을 따지는 말인 ‘가시비’까지 나오는 말이니 일정 가격을 지불하고 얻는 대가에 대해서 기회비용을 최소화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이는 반드시 필요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태도이며 나 역시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최대한 돈을 적절하게 쓰도록 사전에 미리 알아보는 편이다. 기왕이면 적은 돈으로 마음에 드는 걸 하면 좋으니까.
그래서인지 여행에 대해서도 많은 자료가 차고 넘친다. 거의 15년 전에 처음으로 터키를 갔을 때는 지금처럼 자료가 차고 넘치지 않았다. 그 유명한 론니플래닛 아니면 여행작가들이 쓴 국내 책을 참고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그때는 책이랑 지도를 들고 다니면서 여행을 했다. 특히 스마트폰이 없었던 때라 구글지도도 없고, 위피(Wifi)가 뭔지도 몰랐다. 현지에서는 공중전화를 이용해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전체 2주 정도 갔던 거 같은데 1-2번 생존신고를 하는 정도? 그래서인지 내가 간 데가 괜찮은 곳인지 아닌지 판단할 기준조차 없었다. 이스탄불에서 첫 숙소는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곳을 다음 카페에 가입해서 예약했다. 그다음부터는 현지 조달이었다. 책에서 알아보고 그 동네에 도착해서 캐리어 끌고 일단 가보는 거다. 그래도 유명한 숙소는 나름 홈페이지나 카페가 있어서 미리 예약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기억이 가물가물)
어느 순간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급격하게 보급되면서 블로그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때부터인가 더 이상 해외여행을 갈 때 책을 사진 않았다. 점점 사전에 공부도 하지 않게 되었다. 책을 살 때는 여행 정보가 나오기 전에 그 나라의 역사, 정치, 경제, 문화 등에 대한 배경이 설명되어 있어서 그런 부분을 꼼꼼하게 읽었는데 블로그에서 필요한 정보만 쏙쏙 찾다 보니 그저 공항에 도착했을 때 택시 타고 숙소 가는 방법, 어디 도시에서 다음 도시로 이동하는 방법처럼 오로지 실용적인 부분만 찾아 읽었다. 바쁘면 그 나라에 가는 비행기에서 읽었고, 여행 계획도 비행기에서 세웠다. 다음 날 갈 곳은 그 전날밤 찾아보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나름 J라서 계획이 있어야 움직인다.)
최근에는 블로그보다 유튜브나 틱톡, 릴스, 쇼츠 같은 영상으로 여행 정보를 얻는다. 물론 자세한 정보는 여전히 블로그를 찾아본다. 그전에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예를 들자면 치앙마이에서 꼭 해야 하는 리스트, 꼭 가봐야 하는 카페, 꼭 먹어야 하는 음식 이런 류의 자료들이 많아졌다. 그전에는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면, 이제는 점점 SNS가 여행 경로까지 짜주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없는 현대인이 돈 써가면서 해외 왔으니 짧은 시간 동안 많이 누리고 가야 하니까, 그러기 위해서 최대한 효율적인 동선으로 움직여야 하니까 이런 자료가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다. 나처럼 여유롭게 길게 와 있는 인간이나 있으면서 천천히 알아보는 거지.
그런데 저렇게 꼭 해야 하는 것이 ‘일’처럼 느껴졌다. 아니 일할 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아니라 꼭 해야 하는 일을 하잖아. 근데 여행지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꼭 해야 하는 것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래야 돈이 안 아까우니까. 그런 내용의 인스타나 영상을 보다 보면 그걸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특히 치앙마이에서 내가 하기 싫은데 자꾸 하라고 하는 것 2가지는 코끼리 하고 쿠킹 스쿨이다. 스리랑카 갔을 때 코끼리는 신나게 많이 봤다. 심지어 어디 가두어 놓은 게 아니라 그냥 자연에 살고 있는 코끼리를! 그래서 별로 또 보고 싶지 않은데 여긴 뭐 코끼리 보호소 같은 데가 있어서 거기서 코끼리랑 같이 목욕하고 샤워하고 온다는데, 굳이 코끼리 보러 가고 싶지도 않고 심지어 옷을 싸가서 샤워까지 하고 와야 하다니 생각만 해도 번거롭다(아 그런 의미로 자꾸 온천도 가라고 하던데, 굳이 샤워용품을 싸가서 굳이 더운 나라에서 굳이 온천을 혼자 해야 하나? 등도 못 미는데?). 쿠킹스쿨은 TV에서 연예인들이 동남아 가면 많이 하던데 나는 원래 요리도 싫어하고, 하루종일 영어로 떠드는 걸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사 먹은 팟타이의 10배나 되는 돈을 주면서까지 가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함’의 홍수 속에서 ’ 난 하기 싫은데.‘라고 말하면 뭔가 잘못하는 것 같다. 그 돈과 시간을 써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것도 안 하고 가는 너는 바보 멍청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물론, 평소의 내 모습을 깨기 위해 안 하던 걸 도전하는 건 좋은 태도지만, 굳이 남들이 다 하니까 하라는 건 도전인지 강요인지 애매하다. 그렇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아... 해야 되나? 안 하고 가서 후회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마사지도 싸니까 1일 1마사지 받으라는데 나는 누가 내 몸 건드리는 것도 싫고, 그렇게 과도한 친절을 받는 것도 부담스럽다. 한두 번 정도는 갈 생각이 있지만 뭘 그렇게까지 자주.
치앙마이에서 재즈 펍 중에 노스게이트라는 공간이 유명하다 그래서 지난 일요일에 갔다. 7시 30분 세션은 다락방 같은 공간에서 공연하는데 차분하니 좋았지만 그날 8시 30분 세션이 별로였다. 그래서 30분 정도 서 있다가 그냥 집에 와버렸다. 당연히 구글 리뷰에는 극찬 밖에 없다. 물론 음악이 엄청 좋은 날이 훨씬 더 많겠지, 엄청 좋으니까 리뷰 썼겠지? 덜 좋은 날은 안 썼겠지. 구글 리뷰는 되게 좋거나 혹은 생각보다 별로일 때 사람들이 굳이 굳이 쓰는 거니까. 그래도 한 번 더 가볼 생각은 있다. 그날 별로였지만 다른 날은 좀 더 좋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으로. 배틀트립에 나온 이후 한국사람이 70%나 되기는 하지만.
그 와중에 맛집과 카페에 대한 추천 또한 엄청나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음식에 진심은 아니라 뭘 그렇게까지 줄 서서 맛집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새로운 데를 계속 가는 것보다 그냥 적당한데 찾아서 직접 먹었는데 맛있었던 집에 또 가는 편이다. 다만 직접 다녀간 친구들이 알려준 곳은 꼭 가려고 한다. 맛집을 알려주는 그 마음은, 이 사람에게도 내가 먹었던 그 맛있는 걸 먹게 하고 싶은 ‘다정한’ 마음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아는 동생이 님만 해민 쪽에서 꼭 가라고 한 어묵국숫집이랑 로스트 치킨 파는 집은 가야 한다. 그리고 내가 갔던 식당 중에서 맛있었던 집은 나중에 올 내 친구에게도 알려줄 거다. 벌써 2군데나 알고 있다. 심지어 태어나서 먹어본 가장 맛있는 디저트 가게도 있는데 거기도 알려줘야지. 아, 아직 5시 10분 밖에 안 됐는데 벌써 배고프네. 그 유명한 블루누들 가서 갈비국수 먹을까, 아니면 근처에 평점 높은 다른 갈비국수 집을 갈까 고민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