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근육이 생기나요?
이 이야기는 팩션입니다. 팩션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한국식 영어 단어로, 사실을 바탕으로 한 실화나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 픽션을 섞어 재창조하거나 더 나아가 가상의 사건·인물을 덧붙이는 행위 또는 그렇게 탄생한 작품을 의미합니다. 소개팅 당사자는 여러 사람이 모인 인격들로, 허구의 인물임을 알려드립니다.
'부부교사하면 뭐가 좋아요?'
'방학에 같이 쉬는 거. 같이 육아도 하고 놀 수도 있고 그리고 서로의 일을 잘 알아서 고충을 공감하며 들어주지.'
'단점은요?'
'방학에 같이 쉬는 거. 맨날 얼굴 보고 있어야 하잖아. 그리고 서로를 잘 아는 거. 잘 아니까 신비감도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서로 모르는 것도 있어야 더 알고 싶고 그러니까?'
'아 뭐여 장점이 단점이네.'
'내일 교사랑 소개팅하나?'
'네 작년 신규래요. 아는 선배 남편 친구'
'선배 남편 친구면 나이가 꽤 될 텐데 자기랑 경력은 10년 넘게 차이 나네'
'그러게요 학교 생활 제일 힘들 때일 듯'
'뭐 드실래요?'
'닭가슴살 샐러드요.'
식단을 하고 있어서 샐러드만 시켰다. 풀떼기만 먹고사는 여자인 줄 알까 봐 말을 덧붙였다.
'요즘 운동하면서 식단하고 있어서요. 제발 고기 시켜서 드셔주세요. 제가 쳐다보면서 배부를게요.'
'신종 자린고비네요. 죄송하지만 샐러드 먹을게요. 저도 사실 식단하거든요. 아침에 하체하고 왔어요'
'오 정말요? 하체는 뭐 뭐 했어요?'
'스쿼트랑 레그프레스요'
'몇 킬로그램까지 하시는 건가요?'
'무게는 별로 안쳐요. 저중량 고반복입니다. 무리하는 거 싫어해요. 다치면 안 되니까요'
첫 대화부터 유쾌했다. PT를 주제로 대화를 한 시간이나 했다. 그는 이렇게 열심히 운동하는 여자는 처음 본다며 눈을 반짝였다. 나도 그가 반가웠다. 식단을 할 때는 사람 만날 때가 제일 고역이다. 음식 가지고 까다롭게 굴 수도 없고 같이 먹다 보면 많이 먹게 돼서 칼로리 조절이 힘들기 때문이다. 운동하는 사람을 만나면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고 마음껏 닭가슴살과 계란을 먹을 수 있다.
'다음에는 샐러드 전문점에서 만나요'
'와 좋아요. 맛있는 곳으로 가요.'
오호~ 그가 식사를 끝내면서 에프터를 했다. 보통 에프터는 집에 가서 카톡으로 인사하며 간 보다가 하는데, 이 분은 바로 '헤어지며 약속 잡기'를 한다. 이는 두 가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눈치와 용기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눈치가 있어야 하고 면전에서 바로 까일 수 있기 때문에 용기도 있어야 한다. 뭐 아님 강철얼굴이거나.
벌써 많은 장점이 보인다. 비슷한 취미생활을 즐기는 자이고, 센스와 호연지기가 있다.
'거의 초근하시던데 일이 많은가 봐요'
그가 걱정하는 말투로 물었다.
'네 올해 세 과목을 가르쳐서 내내 수업준비만 해요. 업무도 해야 하고.. 어쩔 수 없죠 뭐. 학교 일은 좀 어떠세요?'
'할만해요. 월급 받은 만큼만 일해요. 억울하잖아요.'
'하하하 우리 월급이 쥐꼬리니 일도 쥐꼬리만큼 하시나요'
'네'
음? 무슨 소리지? 농담으로 한 말인데 진지하게 받아친다. 학교에서 어떻게 일을 쥐꼬리만큼 할 수 있지?
작년 신규면 수업준비도 업무도 한창 치일 때인데 할만하다니?
내가 나이 어린 선배교사라 허세 부리는 건가?
그가 말했다.
'호봉제인데 일을 왜 열심히 해요? 누가 알아준다고.
최저시급 비슷하게 돈 받는데 업무 많이 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이 어딨어요. 저는 학교에서는 일을 최소한만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담임도 가급적이면 안한다고 쳐내야 하구요. 가인씨도 그렇게 살면 안 돼요. 칼퇴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우와 완전 귀인을 만났다!!
이제 겨우 일년 몇 개월 다녀놓고 학교 생활을 어떻게 잘해야 하는지 이렇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시다니.
교사 중에서 학교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친구들에게 듣기만 하던 고문관이 바로 여기 있었다.
이것이 바로 요즘 신입들의 MZ마인드 인가?
MZ에서 입밴할 만한 나이인데?
당황한 기색을 숨기고 이야기를 진행해 본다.
'아 네.. 독서교육하려면 수업준비가 많이 필요해서요.'
'독서교육이요? 저는 공부는 딱 질색입니다. 책 읽기는 정말 싫어요.'
오 마이갓
제발 ‘거꾸로 말해요’ 시간이었다고 해주라.
'가인 씨 프사보니 고양이 키우시던데 오래되셨나요?'
'네 5년 넘었어요'
'고양이 키우면 털 많이 날리던데 아이는 어떻게 키우려고 그러세요?'
갑자기 아이 얘기는 왜 하는 것인가?
우리 아직 두 번째 만남인데요?
'털 많이 빠지죠. 육아할 때는 청소를 많이 해야겠죠?'
'더럽게 그런 곳에서 아기를 같이 키우나요? 고양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정말 비위생적이네요. 그런 건 정말 상상할 수가 없어요'
네?
MZ끝물선생이 갑자기 급발진한다.
MZ선생은 벌써 머릿속에서 예식장을 예약하고 혼인신고서를 작성하고 신혼여행도 다녀오고 아이도 낳았다. 그는 나를 더러운 고양이를 다른 데 보내지 않아 아이를 학대하는 나쁜 엄마로 만들어 힐난하고 있다.
'아 상상 안 하시면 되죠..'
뭐라 잔소리를 더 한다. 아까부터 학교일, 고양이, 운동에 대해서 자꾸만 훈계조로 말한다. 왜 이러는 걸까?
너무나 피곤해졌다. 어서 집에 가서 털이 복슬복슬한 고양이나 만지고 싶다.
집에 도착하니 카톡이 와 있다.
'잘 들어가셨나요?'
답을 하고 싶지가 않아서 한 시간, 두 시간 늦게 보냈다. 종료 멘트를 보내면 또 엄청 발끈하며 아까처럼 혼낼 것 같다. 페이드아웃으로 만남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눈치 빠른 그가 용기 있게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정말 잘 안 맞네요~ 좋은 분 만나세요~'
앗. 까였다.
고양이를 만지며 저중량 고반복으로 운동하는 그를 생각했다.
그렇게 설렁설렁 운동하면 근육이 팍팍 늘지 않을 텐데.
수업도 일도 그렇게 하다 보면 성장이 하나도 없을 텐데.
나는 꼰대교사여서 결혼을 못하는 건가
더러운 고양이 집사여서 못하는 건가
꼰대 고양이 집사로 혼자 늙어가야 하나 보다
무게나 치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