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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Nov 20. 2024

Don't tell Mama.

언젠가는 밝혀질 텐데요.

따르릉. 

고모 전화다.


'아는 집사님의 아는 사람이 선생님 며느리 보고 싶어 하더라 한 번 만나봐'


'고모의 아는 집사님의 아는 사람?'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소개팅하러 나가면 온 세상 남자들을 다 만나고 올 것 같다. 소개팅을 받고 또 받다 보니 근처의 사람들은 이제 동이 나서 족보가 꽤 멀어진다. 그런데 선생님 며느리를 보고 싶다니. 그건 또 어떤 욕망일까? 아들을 가르치길 원하는 여자를 원하는 건가? 연금이 나오는 며느리를 맞이하고 싶은 건가?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크고 외국에 유학 갔다 오고 외국계 회사 다니고 있고 부모님 노후준비도 다 되어있대.'

'에에~ 고모 그런 사람이 미혼으로 남아 있어요? 어디 갔다 온 거 아녀? 스펙만 봐도 줄을 서겠구먼 엄마가 왜 짝을 찾으러 다닌댜'

'몰라 어쨌든 전화번호 줄 테니까 만나고 와.'


그래. 뭐 하나 빠지지 않는 남자를 보러 가보자.






'제가 처음 본 사람하고 밥 먹으면 소화가 안 돼서 커피 마시자고 했습니다.'

'차 마시는 거 좋지요. 퇴근하고 바로 오셨나 봐요?'


단정한 슈트 차림이 작업복을 입고 온 것처럼 보였다. 넥타이까지 완벽하다. 어떤 회사이길래 저렇게까지 정장을 차려입는 걸까.


'네. 일하고 바로 왔어요. 혹시 어머니께서 저를 뭐라고 소개하셨나요?'

'나이는 저랑 한 살 차이 나고 외국계 회사 다니시고 유학 다녀오셨다고'

'외국계 회사는 아니에요. 사실 거기는 나온 지 오래됐어요. 외제차 딜러입니다. 실망하셨죠?'


실망보단 당황스러운 감정이 먼저 올라온다. 허나 초반부터 솔직한 게 매력이다. 무슨 사정이 있나 보다.


'아 정말요? 외제차 딜러도 결국엔 외국계 회사에서 돈 주는 거 아닌가요? 직업 때문에 실망할 일이 뭐 있나요? 월급 나오잖아요.'


굳었던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유학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나라 언어 정말 잘하시겠어요'

'아니에요. 그냥 정말 인사정도만 합니다. 거의 안 썼어요.'


겸손하다. 유학을 했는데 일상 언어만 한다고 말하다니.


'전공은 뭘로 하셨어요?'

'한국 문화요'


여기서도 잘 안 하는 한국 문화전공이라. 타국에서 우리나라를 새롭게 바라보기 위해서 이 땅의 사명을 짊어지고 한국 문화를 전공한 건가? 


'그 과는 유일하게 한국어를 쓸 수 있어서요. 그래도 외국에서 유학하면서 좋았던 건 사람들을 많이 사귄 거예요. 지난주에도 거기에서 만난 친구랑 그 친구 집으로 여행 다녀왔어요'


'어느 나라에서 온 친구인데요?'


'전라도요. 전라도는 처음 가봤답니다.'


대답을 할 때마다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나와서 2초 정도의 버퍼링이 생겼다. 한국 친구를 주로 사귀었구나. 


'회사는 무슨 이유로 나오신 거예요?'

'회사 차가 좋은 차였거든요. 그래서 부장이랑 외근 나가다가 몇 킬로까지 나가나 하고 좀 세게 밟았다가 사고가 나서 반파됐어요.'

'네? 얼마나 빨리 달리셨길래.. 반파요? 많이 다치신 거 아니에요?'

'다행히 다치진 않았어요. 차는 폐차했구요. 근데 억울한 건 출장 가다 사고 난 건데 저한테 차값을 다 물어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돈 물어내고 회사 나왔어요. 사실 잘린 거예요'


이 분의 어머니는 정말 현명한 분이셨다. 들어올 며느리는 아들을 더 가르쳐야만 한다고 생각하신 거다. 아드님은 규범의 준수와 책임의 의미, 과속의 위험성을 더 배워야 한다. 


'그래서 집에는 말씀 못하신 거네요. 어머니께서 주선하는 소개팅자리인데 싫다고 하진 않으셨어요?'

'제대로 된 사람 만나라고 하시더라고요.'

'아 어머니께서 전에는 제대로 된 사람을 안 만났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네 나이트에서 만난 친구랑 1년 사귀다 말고 그래서'

'그래서 맘에 안 들어하셨군요'

'네 그 여자애가 바람나서 헤어졌어요.'


정말 솔직한 사람이다. 전 여친이 바람을 펴서 헤어지다니. 속이 꽤나 상했겠다. 이걸 어머니가 아시는 것도 신기하다. 

커피가 아직 따뜻하다. 

토크박스를 하나만 더 돌리고 일어나자.


'주말에는 뭐 하세요? 취미 생활은 있으세요?'

'딱히 없고 주말에 친구들 불러서 술 마셔요. 저희 집이 좀 넓어서 일박 이일 놀다가 가요. 그 낙으로 살아요.'






두 살이 많다고 하는데 열두 살 어린 친구랑 소개팅을 하고 온 기분이었다. 나도 옛날엔 꽤나 술 먹고 놀았지만 지금은 체력이 딸려서 못한다. 그분은 체력도 생각도 청춘이다. 


생을 만끽하며 사는 청년이 에프터 문자를 보낸다.


'잘 들어가셨나요? 또 만나고 싶어요.'

'네 잘 들어왔어요. 좋으신 분인 것 같은데 저랑 코드가 안 맞으셔서요. 죄송합니다.'



다시 메시지가 온다.


'제가 딜러라서 그런 걸까요?'

'아닙니다. 일 열심히 하시고 재밌어하시잖아요. 그런 것 때문은 아니에요. 자긍심을 가지세요.'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말 다시 뵙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그리고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어머니께 직장 옮긴 거 말하지 말아 주세요.'



.

.

.

'앗 당신은 솔직한게 매력인걸요. 떽 그럼 못써요. 엄마한테 어서 말씀하셔야죠.' 라고 말하려다 '네 절대 안할게요' 라고 답을 한다. 피식 웃음이난다. 정말 일관성 있는 캐릭터다. 




후우. 성인의 대화를 즐겁게 할 만한 사람은 없을까. 



사람 만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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