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모단 Mar 28. 2021

우리가 찾는 해답의 대부분은 자연 속에 있지요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2017


“잘 들어보세요. 이게 사시나무 소리입니다.”

청아한 가을바람이 울창한 나무 사이를 넘나들자 잎사귀와 가지들이 서로 부딪히며 흔들리는 소리가 산 중턱 가득 울려 퍼졌다. 보통 나무에 비해 잎자루가 얄팍하고 길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파도가 치듯 쏴아-하는 소리와 함께 나풀거리는 잎새가 퍽 운치 있었다. 강원도 홍천의 깊은 산속. 녹색연합에서 나온 선생님 두 분과 취재진 세 명은 산자락 깊숙한 곳까지 힘겹게 올랐다. 숨이 꽤 찼지만 멈출 순 없었다.


서울의 한 개발업체가 수천억의 돈을 들여 이 일대를 싹 갈아엎고 골프장을 만들 계획을 발표했다.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선 ‘사전 환경성 검토서’ 라는 걸 나라에 제출해 승인받아야 한다. ‘야생 동식물 보호법’에 의해 건설하려는 골프장 부지 내에 멸종위기의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면 허가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엄격한 조사와 높은 신뢰도가 요구되는 보고서인데도 개발업체가 입맛대로 선정해 돈을 지불한 조사업체가 작성한다. 여기서부터 온갖 비리가 발생한다.


업체가 제출한 서류는 깔끔했다. ‘천연기념물이나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그런 거 없음. 녹지자연도 등급도 안 높다. 골프장 건설해도 무방한 땅이 확실함!’ 개발업체는 이렇게 작성된 서류를 들이밀어 허가를 받아냈고 이내 불도저와 포클레인을 동원해 산을 무너뜨리고 나무를 꺾었다. 산에 살던 동물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채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거나 죽어갔다.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들은 건설회사에 항의했다. 너희의 보고서는 틀렸다. 이곳엔 삵, 까막딱따구리, 담비, 하늘다람쥐 같은 법정보호종은 물론 쥐방울덩굴, 구상난풀, 삼지구엽초 같은 멸종위기 희귀 식물도 가득하다. 우리가 곧 증거다. 산에 살고 있는 우리의 눈으로 똑똑히 봤다. 대대손손 물려줘야 할 이런 자연의 보고를 파헤치는 건 말도 안 된다. 집회도 해보고 민원도 넣었지만 자본가의 힘은 강대했다. 개발업체가 사실은 새누리당 모 의원이 실소유주라는 소문마저 파다했다.


그러한 이유로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었다. 마을 사람이 산길을 걷다 보면 한두 번씩은 마주치게 된다는 귀염둥이. 천연기념물 제328호에 빛나는 ‘하늘다람쥐’를 방송국 카메라에 담기 위해 우리 다섯 명은 이 나무 저 나무 사이를 목이 꺾일세라 올려다보며 걸었다. 하늘다람쥐야 한 번만 나타나 주렴. 하지만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미 옆 산자락에서 터파기 발파공사가 시작된 터라 하루 종일 우르릉 쿵쾅거리는 통에 놀란 동물들이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녹색연합 선생님은 안타까워했다.


어느 정도 올랐을까.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자 선생님이 말했다. ‘촬영장비가 많은 데다 산타는  익숙하지 않은 서울 사람들이니   차에서 셔라. 하늘다람쥐를 발견하면 바로 부르겠다새벽부터 시작된 일정에 파김치가  우리는 거절하지 않고 승합차에 돌아와 그대로 널브러졌다. 바깥을 보니 녹색연합  선생님은 소나기에도 아랑곳없이  이곳저곳을 뽈뽈거리며 돌아다녔다.


60에 가까운 중년의 사무국장님과 20대 후반인 여성 활동가님의 체력이라고 해봐야 우리보다 그렇게 대단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저렇게 뛰어다닐 수 있을까.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출세길이 보장된 것도 아니다. 하늘다람쥐 몇 마리가 이 세상에 있든 없든 자기 삶에 무슨 차이가 있다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대비에 온 몸이 젖어가며 저리도 애타게 산자락을 헤매는 거지? 잘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어떤 존경심과 경외감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어느덧 비는 멈췄고 우리는 다시 등산로도 아닌 미끄러운 산길을 기어올랐다. 그때였다. 부스럭하는 소리가 저편에서 들려왔다. 선생님들이 흠칫 긴장하는  느껴졌다. 서로 시선을 맞추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에 하늘다람쥐가 있는  같다. 녀석의 소리가 들린다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숨조차 조용히 쉬었다. 옷자락 소리마저 조심하며 주변을 살폈다. 많은 소리가 들려왔다. 풀벌레 소리, 고라니 소리, 새소리, 나뭇잎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들이 두 귀에 스며들었다.


그때였다. 사무국장님이 가만히  어깨에 손을 얹더니 손가락으로 자기의 눈과 3 방향의 나무를 번갈아 가리켰다. 지하실에 숨은 연쇄살인범을 체포하기 직전의 FBI 수사관만큼이나 위엄 있는 손동작이었다. 카메라 전원을 켰다. 빗물을 흠뻑 머금은 커다란 고목나무 한가운데 둥지처럼 생긴 구멍이 나있는  보였다. 천천히 줌을 들어갔다. 구멍이 화면 가득 기는 순간 안에서 꼬물꼬물 움직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이내 머리를  내미는 조그만 동물. ‘뾰롱하는 효과음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다람쥐와 거의 흡사하게 기긴 했는데 아주 약간 다르다. 머리는 작은데 새까만 눈은 훨씬  크고 땡그랗다. ‘맞는  같아요!’ 망원경을  사무국장님이 흥분을 억누르며 말했다.


(c) 연합뉴스


이리저리 부산하게 움직이는 쪼그만 녀석을  없이 화면에 담았다.  우리 모두가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꼬맹이 주제에  팔을 활짝 펼치더니  나무를 향해 힘차게 뛰어올랐다.  팔과  다리 사이로 이어진 오동통한 날개막으 능숙하게 바람을 타며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녀석이 내는 울음소리도 들렸다. 츠츠츠-하는 귀여운 목소리. 우리에게는 이렇게 분명하게 들리는 소리가 수억 원의 컨설턴트 비용을 받은 전문가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나 보다. 이리도 건강하고 씩씩한 소리인데 말이.


우린 한참 동안 하늘다람쥐가  나무  나무를 쏘다니며 솔방울과 나무 열매 갉아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뽀그작 아드득. 꼬맹이가 아주 야물딱지게 솔방울 어 먹 소리는 맑고 청아하게 산기슭 사이로 퍼져 나갔다.






신디사이저를 휘두르는 아방가르드의 음악전사. 미래에서 시대를 잘못 찾아온 듯한 사이키델릭 전자음악의 향연. 1970년대 테크노와 신스팝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일본밴드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의 멤버였다가 어느 순간 배우이자 영화음악가로 변신해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를 휩쓸며 세계적인 음악가의 반열에 오른 남자 류이치 사카모토. 암 선고를 받고 난 후 음악과 인생이란 무엇인지 성찰해가는 구도자와도 같은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관조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2012년. 음악인이면서 반핵 환경운동가의 길을 걷는 그의 ‘멋진 모습’을 담기 위해 시작된 다큐멘터리 촬영. 그러나 청천벽력과도 같은 암 선고로 영화의 노선은 약간 달라진다. 생과 사의 기로에 선 예술가. 그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앞으로 할 수 있는 것. 꺼져 가는 삶 속에서 어떤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지 복잡한 상념에 휩싸인 하루하루를 카메라는 5년 동안 끈기 있게 따라붙는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영화는 동일본대지진으로 초토화된 마을에 1년 만에 찾아 간 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미야기현 농업고등학교 강당에 놓인 야마하 피아노 한 대. 지진을 직격으로 맞고 쓰나미에 휩쓸려 바닷물에 잠겼던 터라 성한 곳이 하나도 없다. 건반 여기저기를 눌러본다. 익사한 피아노의 시신으로 연주하는 느낌이라는 그의 말처럼 망가지긴 했어도 뭔가 소리가 나긴 난다. 한 번 누를 때마다 건반이 쑥 들어간 채 올라오지 않아 손가락으로 잡아 뽑아야 한다.



“산업혁명 덕분에 이런 악기의 생산이 가능해졌어요. 목판 6개를 겹친 뒤 반년 간 엄청난 압력을 줘서 틀을 잡고 형태를 갖추는 거지요. 다 합치면 몇 톤의 힘이 이 현들에 가해지고 있는 겁니다. 자연에 있던 물질을 가져와 인간의 공업력과 문명의 힘을 써서 만들어낸 거죠. 그렇게 소리까지도 조율하려고 애를 써요. 사람들은 가끔 ‘소리가 미쳤다’ 라는 표현을 쓰는데 미쳐서 소리가 달라지는 게 아닙니다. 자연 상태로 되돌아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거죠. 이 경우에도 쓰나미가 밀려와서 소리를 자연 상태로 되돌려 놓은 겁니다. 그래서 나는 자연이 조율해 준 그 쓰나미 피아노의 소리가 굉장히 좋게 들렸어요. 일반적인 피아노 소리는 인간이 억지로 조율한 부자연스러운 상태인 거예요. 인간에겐 그게 자연스러운 피아노 소리겠지만 자연의 관점에서는 아주 부자연스러운 거죠.”


둔탁하면서도 뭐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묘한 물먹은 피아노 소리. 밝은 듯 슬픈 듯 모순적인 쓰나미 피아노의 음색이 그의 마음을 잡아끈다. 결국 이 소리는 암 투병 후 복귀하며 작업한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2015)>에 쓰인다. 아들이 살해당한 슬픔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복수하기 위해 혹한의 대자연과 사투를 벌이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가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순간마다 흘러나오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장엄한 음악은 영화를 보는 이들마저 눈폭풍이 휘몰아치는 설산 한복판으로 내몬다. ‘죽음에서 돌아온 자’ 라는 영화 제목대로 류이치 사카모토 또한 이렇게 죽음에서 돌아온다. 쓰나미라는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피아노로 연주한 음악과 함께.



화려함과 테크놀로지의 극을 달리는 전위음악의 대표 주자였던 그가 1990년대에 들어 차츰 자연과 환경문제에 대해 귀를 기울이게 된 과정도 차분하게 설명해준다. 환경과 인간에 대한 끝없는 탐구. 인간의 근원은 어디인지, 그 근원의 소리는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가장 오래된 현생 인류 화석이 발굴된 케냐의 호수를 찾기도 하고 빙하가 녹는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북극으로 향하기도 한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얼핏 수돗물 소리와 별 차이 없어 보이는데도 류이치 사카모토는 원하던 장난감을 선물 받은 크리스마스날 아침의 소년처럼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산업혁명 이전 지구가 건강했을 때 쌓인 눈이 녹으면서 생기는 얼음 물소리예요. 제가 들어본 것 중 가장 순수한 소리라고요!”


소리의 본질을 향한 노음악인의 탐구는 계속된다. 수풀 속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소리. 곤충 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 소리. 버려진 쓰레기들마저 이리저리 두드려보며 어떤 소리가 나는지 살핀다. 비가 오는 날 창가를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를 듣다가 플라스틱 바구니를 뒤집어쓰고 뒷마당으로 나가 가만히 비를 맞는다. 그의 머리를 향해 노크하듯 떨어지는 빗방울의 선율. “우리는 날마다 수많은 소리에 둘러싸여 살지만 보통은 그런 소리들을 음악으로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귀 기울여 들어보면 재밌어요. 음악적으로도 흥미롭고.”



음악가의 다큐멘터리인 만큼 귀가 황홀할 정도로 매혹적인 연주 장면들도 들어있긴 하지만 그의 작곡 솜씨를 뽐내려는 영화는 아니다. 채도를 잔뜩 낮춘 차분한 톤의 화면만 두 시간 동안 이어지고 인터뷰를 보고 있으면 이건 어쩌면 영상으로 남기는 유언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담담하고 진중하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살지 잘 모르겠어요. 20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혹은 암이 재발해서 1년뿐일지도 모르고. 전혀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그래서 언제 죽더라도 후회 없도록 부끄럽지 않은 것들을 좀 더 남기고 싶어요. 일도 음악도.”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이 조금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생명력을 갉아내면서까지 ‘완성하고 싶은 음악’과 ‘찾아내고 싶은 소리’에 천착하는 두 시간의 기록. 소중하고 간절한 ‘어떤 것’에 대해 사람이 어디까지 파고들 수 있는지에 대해 감독은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음악가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덤덤하게 보여준다. 내일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도 오늘 우리는 산에 올라 하늘다람쥐를 찾아 헤매고, 보다 좋은 소리를 찾기 위해 온 세상을 방랑한다. 그런 그들의 뒷모습은 하나같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을 뒤흔드는 단 한 컷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