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김과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 과장 Jan 20. 2024

김 과장의 소소한 기쁨

L 사무관의 보도자료 초안이 건네준 그 무언가

요즘 소소하게 기쁜 일들이 좀 있다.

3월에 학교에 들어가는 아이가 세 자릿수 더하기 빼기를 해내는 모습이 그랬고, 가구 디자인을 하는 조카가 만든 멋들어진 작품을 본 것이 그랬다. 그리고, 다음 주에 언론에 나가게 될 보도자료 초안을 가져온 우리 과 L사무관을 봤던 것도 그렇다.


지금 일하고 있는 부서에 과장으로 온 지 1년 반이 조금 넘었다. 부서가 새로 만들어진 지 6개월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고, 장관비서실 근무를 마치고 처음 발령받은 부서였다.


부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일은 과장으로서는 큰 사명이다. 비단 밖에서 뿐만 아니라 부서 구성원들에게도 '믿고 따를만한 사람'이라는 신뢰를 얻는 일도 중요하다. 안에서 신뢰를 얻어야 그를 동력으로 과장이 의도한 방향대로 일이 원활하게 진행된다. 때로 조직 내 다른 부서, 다른 부처나 기관과 협의를 진행해야 할 때도 과장에 대한 신뢰가 큰 무기가 된다.


지난 한 해 동안 40건 가까운 보도자료가 우리 부서에서 나갔다. 일을 많이 하고 잘하는 것의 기준이 다를 수 있지만, 보도자료의 양은 부서별 노력의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이다. 보도자료의 양도 그렇지만, 실제 언론에 보도된 건수를 들다보면  1,200건 이상이다.


 외신에서도 적지 않게 다뤘다. 언론에서 주목받을 만한 일을 많이 했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운도 좋았다. 그 덕에 연말에 공개된 부서 평가에서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 부서는 S등급을 받았다. 과장으로 일한 첫해부터 2년 연속 우수부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회사 안에서 13명을 선발한 우수직원에 우리 직원이 무려 2명이나 포함다.


며칠 전 L사무관의 보도자료 초안을 받아보고 기쁨을 느낀 건, 다름 아닌 그의 발전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보도자료가 거의 손볼 것 없이 완벽했다. 놀라웠다. 우리 부서에는 민간분야 경력들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이 많다. 업무에 있어서만큼은  분명 전문가들이지만, 본인의 일을 다른 사람이나 외부에 전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경험이 적고 그만큼 아쉬움도 있었다. 일 년 반 전에 그를 마주했을 때도 그랬다.


그들이 하는 일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발견하려 노력했고, 그것을 보고나 보도자료를 통해 잘 포장하려 애썼다. 1년 반 동안 나와 호흡을 맞춰 일해온 동료들은 잠자코 있지 않는  과장덕에 새로운 일을 만들고, 그것을 보고하고 홍보하는 과정에서 많은 경험을 했다. 피곤했을 법도 하다. 두려움도 있었겠지만,  가라앉아 있던 본인들의 일이 조직 안팎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기쁨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과장님, 너무 신기해요."라고 말하는 직원도 있었다.


과장으로서 제 몫을 다하고 있는지, 구성원들의 발전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나 스스로에게 자주 질문을 던진다. L 사무관이 작성한 보도자료에서 처럼 직원들의 성장과 자신감을 목격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 묻는 질문들에 대한 아주 작은 대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과장님이 쓰신 보도자료 100번은 본 것 같습니다."

L 사무관에 대한 격려에 내게 돌아온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고서 작성 시 조금 신경쓰면 좋을 것들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