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은 없지만 긴밀하진 않은 엄마와의 관계
언제부터 엄마와 이렇게 달라졌을까?
엄마에게 ‘우린 참 안 맞아’라는 말을 자주 한다. 어릴 땐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따라먹고, 엄마가 가는 곳을 함께 가고, 엄마가 하는 일을 옆에서 따라 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달라졌을까? 공부하기 싫다는 나를 닦달하기 시작하면서? 먼 대학을 가서 기숙사에 살기 시작하면서? 취업을 하고 자취를 시작하면서?
언젠가 친구가 부모 자식 사이의 mbti 성격 유형 분석에 대해 알려 준 적이 있다. 엄마와 아이의 mbti가 다르면 양육에 있어 부모와 자식, 서로가 모두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엄마와 나는 태어날 때부터 완전히 달랐던 건 아니었을까? 이렇게 다른 사람이 혈연이라는 관계로 묶인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조금은 힘들다. 선택할 수 있는 인간관계가 아닌지라 서로의 틈새를 억지로 맞춰가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냥 침묵하기로 했다. 틈새가 아예 없는 것처럼, 맞춰나가야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나는 순대를 살 때 주는 내장의 종류는 간 밖에 없는 줄 알았다. 그렇게 엄마와 목욕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 온 순대 틈에 섞인 간, 그 특유의 퍽퍽함과 알갱이 질감이 참 별로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순간, 순대 내장의 종류가 하나라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부위도 생겼다.
어린 시절, 순대 내장 종류를 간 밖에 몰랐던 건 단지 엄마가 간을 좋아해서였다. 엄마는 아이의 인생에 울타리를 쳐 주는 존재이지만 그도 결국 선호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엄마가 되었고 나라는 사람의 세계관을 만들어 주는 존재가 되었다. 엄마는 엄마라는 존재가 나에게 이렇게 크게 와 닿고 있다는 걸 알기나 했을까? 알았다면 엄마가 되었을까?
얼마 전 엄마 앞에서 펑펑 울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 공부를 하겠다는 말에 응원을 해주겠다는 엄마가 다음날 갑자기 가족회의에서 내 계획을 설명하라는 말에 짜증이 났다. 내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걸 준비하겠다는데 허락을 맡으라는 말에 더 이상 어떤 이야기도 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다. 이렇게 갈등만 겪다간 사이가 틀어지겠다 싶어 다시 집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출가인지 가출인지)에 이력서를 몇 군데 넣었다. 이력서를 넣었다고 말하는 나를 엄마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였는데 왜 엄마 앞에선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나는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그리고 마지막 엄마 말에 마음을 닫았다.
‘가족회의하자는 게 그렇게 짜증 나더나! 그게 뭐라고!’ 엄마의 그 말이 나에게는 자신을 설득시키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여졌다. 나와 엄마는 결국 서로를 영영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엄마와 딸이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들 떠올리는 이미지가 나는 불편했다. 나는 절대 살갑지도, 애교스럽지도, 자상하지도 않은 사람이다. 나가 있는 동안 엄마에게 먼저 전화하는 법이 없었고 엄마의 생일도 잊어버리기 일수이었으며 선물이라면 그저 돈이 최고라는 생각에 용돈으로 때웠었다. 나는 차라리 아들이었으면 좋았을 모진 딸이다. 안다고 해서 내가 살가운 딸이 될 순 없을 것이다. 그저 서로의 간극이 없는 척하며 살아갈 가려고 한다. 가장 오랜 시간 붙어 있으면서도 나를 제일 모르는 사람, 딱히 갈등이 있는 건 아니지만 또 긴밀하게 이어지진 못할 엄마와 나의 관계. 그저 이어만 져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