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칼럼 #1]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딜레마
2010년대 중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소통'이 아닐까 한다. SNS의 발전으로 인터넷 유저 간의 소통은 더욱 활발해졌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으로 인해 부각되었던 정치인의 소통 중요성, 그리고 소통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성공한 방탄소년단의 사례까지,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소통의 움직임이 일었다.
그리고 소통의 움직임은, 그동안 소수 전문가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단 학문 분야에도 영향을 끼쳤다. 스타 강사 설민석의 등장과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을 재미있게 엮은 채사장 작가의 '지대넓얕'의 성공, 유시민을 필두로 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만들어진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을 통해서, 그 이전에 비해 지식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음을 실감하게 되기도 한다.
지식을 얻기 위해 전문가들이 쌓아놓고 정리해놓은 자료를 찾아보는 것은 대중의 몫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전문가들 혹은 지식 커뮤니케이터들이 직접 정보를 정리하고 가공해 대중이 섭취하기 편한 형태로 전달하는 형식에 대중이 반응하기 시작했으며, 대중이 지식을 흡수하지 못하는 것은 자료를 쉽게 가공하지 못한 전문가들의 잘못이 되었다.
이어서 소통의 중요성은 과학자들에게도 부각되기 시작했다. 많은 과학 유튜버들이나 다수 과학자의 방송 출연 등은 과학 분야에서도 대두되는 소통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나 또한 그 움직임에 주목해 많은 동료들과 같이 과학 커뮤니케이터란 직함을 달고 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과학과 대중을 이어주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을 하면서 과학 지식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오류 없는 전달'과 '쉬운 전달'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과학은 진리에 접근하기 위한 가장 성공적인 생각 방법이라는 인식이 있기에, 내가 혹시라도 쉬운 전달에 집착하다 큰 오류에 빠져 비난을 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던 시기가 많았고 지금도 그것은 나의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이다.
과학자로서 어떤 것에 대한 설명을 할 때 나는, '통찰을 제시해주는 사례'와 '실험 데이터', '전문가의 해석 및 의견', '개인적인 해석 및 전망', '실험 상황 및 과학 지식에 대한 비유', 이 다섯 가지를 모두 확실하게 구분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다섯 가지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같이 제시해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 다섯 가지가 내가 전달하려는 과학적 명제를 지지하는 신뢰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각각의 자료의 신뢰도가 다르다는 것은, 설명 중에 각 자료의 제시에 혼동이 올 경우 큰 비판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 실험 데이터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을 그 분야의 전문가의 의견처럼 제시를 해보았다고 해보자. 그 해석에 오류가 없을 경우는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지만, 아닐 경우 본인 설명 전체의 신뢰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각각의 자료는 어떤 성격을 띠는가?
'통찰을 제시해주는 사례'는 대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하지만 그저 사례일 뿐이다. 한 가지 사례만을 통해 어떤 과학적 사실로 일반화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우리가 보지 못한 다양한 사례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확한 '실험 데이터'가 제시되기 전까지, 그 사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을 우리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 사례를 통해 어떤 사실을 일반화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그날따라 많은 업무로 인해 피곤한 친구가 짜증 내는 것을 보고 그 친구가 예민한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 이런 류의 일반화를 우리는 자주 저지른다. 지식을 전달하는 과학자로서 이런 오류를 피할 수 있게, 사례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정확한 전달을 필요로 한다.
'실험 데이터'는 어찌 보면 가장 신뢰도가 높은 자료라 할 수도 있다. 실험자가 분석자가 거짓을 포함시키거나, 오류를 범하지 않은 이상 있는 그대로의 실험 결과를 수학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험 데이터' 자체는 설명하는 사람으로서 확신하게 제시할 수 있는 자료이다. 그런데 '실험 데이터'의 문제는 청자가"그래서, 이게 어쨌다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실험 데이터'로 인해 청자들이 완전히 집중을 놓쳐버리는 곳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실험 데이터'는 최소한으로 왜곡이 되지 않는 선상에서 청자들에게 제공되어야 하며, 바로 이어서 이 데이터가 무엇을 뜻하는 지를 바로 제시해주거나 미리 암시해주어야 한다.
'전문가의 해석 및 의견'은 어찌 보면 단점이 가장 적은 자료이다. 한번 데이터가 해석된 것이기에 청자들에게 그 의미가 직접적으로 전달이 되며, 데이터를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오랫동안 생각한 사람의 의견이기에 오류가 발생할 염려가 적고 그 의미가 깊다. 그리고 설명자 입장에서 보기에, 신뢰도에 대한 책임을 그 전문가에게 전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해석을 그대로 사용하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책임을 지게 된다. 그 해석과 설명 방식이 누구의 것인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전문가의 의견을 출처 없이, 마치 청자들이 설명자가 생각해낸 것처럼 설명이 된다면, 되돌릴 수 없는 큰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모든 설명이 전문가의 의견과 그 출처로 이루어진다면, 그 설명은 그저 누군가의 말을 빌려하는 것뿐이 된다. 따라서 다르게 보면, 가장 주의해서 사용해야 할 자료이다.
'개인적인 해석 및 전망' 은 개인적인 의견이다. 한 사람의 의견인 만큼 심하게 편향되어 있을 수도 있고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개인적인 의견에 비판을 받는 게 어떠한가? 다른 의견일 경우 수용하면 되고, 많은 비난을 받을 경우 반성하면 된다. 따라서 정말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라면 자신 있게 표현하고 당당하게 비난을 수용하면 되지 않을까 한다. 다만 개인적인 의견을 제시할 때는, 일반적인 의견처럼 들리지 않는 위험을 조심해야 한다.
비유는 정말 강력한 무기이다. 좋은 비유만큼 사람들의 감정을 강하게 흔들어 놓는 것이 없다. 하지만 정말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주는 비유가 아니라면, 그만큼 어설프게 들리며 모든 설명 자체를 어설프게 만들 위험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마지막 자료 형태인 '실험 상황과 과학 지식에 대한 비유'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생각과 고민이 필요하다. 또한, 그 비유법으로 인해 실험 상황이나 과학 지식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게 될 위험이 존재한다. 따라서, 비유법이 가지고 있는 전달의 한계를 청자들이 인지하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런 모든 것들을 고려한다면, 과학자로서 받게 될 비판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고민들로 인해 오히려 커지는 문제가 있다. 커뮤니케이터로서 설명을 할 때 너무 두루뭉술하게 느껴지거나, 내용의 요지가 확실하게 느껴지지 않거나, 해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은 피해야만 한다.
정확한 전달에 집착한 나머지 사족이 너무 길어져, 설명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거나, 너무 일반적인 내용을 전달하게 되거나, 전달하는 내용이 모호해지는 상황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만약 어떤 설명을 하면서 위에 제시한 모든 주의점을 모두 지킨 글을 읽는다 생각해보자. 단 한 줄로 요약 할 수 있는 내용이 열 줄이 되는 마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런 설명을 참고 들어줄 청자가 몇 이나 될까? 나에게 이런 경우가 왔을 때, 가끔은 비판이 두려워 굳이 사족을 길게 하며 오류를 최대한 피하려 노력해보기도 했고, 가끔은 단순하게 전달하는 데 집중해서 '100% 전달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이라는 찝찝함을 남긴 채로 있기도 하였다.
이 상황에 해답은 결국 과학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내가 사용하는 설명 방식이 청자들의 사고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예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문맥에 의해 전달되는 내용을 최대한 사용해 사족을 줄여 명료함을 높이고(예를 들어 장난스러운 억양을 이용해 지금 말하는 것이 개인적인 해석임을 전달하는 것), 내가 하는 이런 설명 방식의 목적(예를 들어 대중이 과학 자료에 익숙해지게 하는 목적, 과학의 시작이 어려운 것이 아님을 전달하는 목적)을 확실히 제시한다면 나 자신이 더 내 설명에 떳떳해지지 않을까 한다.
물로 그 이해와 예상이 정확할지는 모른다. 이를 알아내는 방법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내 설명을 들려주고 보여주며 비판과 비난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내 설명과 내 이야기를 들려주며 다듬고 수정해나간다면, 언젠간 과학자로서의 이상과 커뮤니케이터의 이상에 다가가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과학 분야의 전문가여야 하는가? 아니면 소통 분야의 전문가여야 하는가? 오류 있는 지식 전달에 대한 비난을 더 두려워해야 하는가, 대중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하는가? 둘 다 중요하다면, 둘 모두를 훌륭하게 잘하는 방법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물론 이것에 대한 답은 모른다. 어쩌면 답이 없을 수도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이 나를 내가 바라는 이상향에 가까워지게 만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뿐이다.
커뮤니케이션 칼럼은 과학 소통을 하면서 고민하게 되는 여러 가지 매우 개인적인 생각들을 정리해보고 공유하고자 하는 공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