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뇌과학 이야기 #1] 거짓말 탐지 속의 과학
포커 붐
2004년, 월드 시리즈 오브 포커(World Series of Poker)의 메인이벤트에는 2,576명의 포커 플레이어가 참가했다. [1] 이는 그 전 해인 2003년의 참가 인원수에 비해 세 배나 늘어난 숫자였다. 2003년 대회를 기점으로 포커 대회에 참가하는 플레이어의 수는 2006년까지 지수적으로 증가하게 되는데, 이 시기를 '포커 붐 (Poker Boom)'이 일었던 시기라 일컫는다. [2] 이 포커 붐의 중심에는 음식점에서 일을 하던 한 종업원이 있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크리스 머니메이커(Chris Moneymaker), 음식점에서 회계 일을 하며 온라인 포커로 부수입을 올리던 아마추어 포커 플레이어어였다. [3] 그런데 2003년 월드 시리즈 오브 포커의 메인이벤트에서, 이 아마추어 플레이어가 수많은 프로 플레이어들을 제치고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1]
머니메이커 효과
이 사건 이후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컴퓨터로 연습하는 것 만으로 프로를 이길 수도 있다." 혹은 "밖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것보다 포커로 돈을 더 벌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4], 자연스레 포커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후 이 현상은 '머니메이커 효과(Moneymaker effect)'라 불리게 된다.
머니메이커의 교훈
오직 상대의 베팅만 확인할 수 있는 온라인 상황에서 포커를 연습한 크리스 머니메이커의 우승은, 상대의 베팅을 읽어내는 것이 바디랭귀지나 표정을 읽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글에서는 포커 게임 속 거짓말 탐지 단서의 마지막 후보, 베팅에 대해 알아보겠다.
훌륭한 플레이어는 얼굴 표정이 아닌 실제 베팅으로부터 상대를 읽는다
2018년 현재 세계에서 누적 게임 상금이 가장 높은 포커 플레이어인 다니엘 니그라노우(Daniel Negreanu)가 한 말이다. 포커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포커 게임에서 상대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생각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미묘한 상대의 모습에서 무엇인가를 읽어내는 데에 집중을 하다가 오히려 게임 플레이를 망칠 수 있다. 실제 플레이를 할 때에는 상대의 모습보다 베팅 패턴을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5]
세븐 카드 스터드 (Seven-card stud)
포커 게임 중 세븐 카드 스터드(Seven-card stud)라는 게임 종류가 있다. 이 게임에서는, 각 플레이어가 총 7장을 나누어 가진 뒤, 그중에서 5개를 이용해서 만들 수 있는 가장 높은 패를 가진 사람이 승리한다. (나눠 받은 7장 중에서 처음 받은 세 장 중 두 장과, 마지막 한 장은 상대에게 공개하지 않는다<히든 카드>. 따라서 상대가 볼 수 있는 내 카드는 네 장뿐이다<오픈 카드>. 처음 포커를 접하는 사람이라면, 공개되는 카드가 네 장이라는 것만 기억을 하면 된다.)
그럼 문제를 내겠다. 다음과 같은 경우에 상대는 블러핑을 하는 것일까?
상대가 만약 히든 카드 중에 4나 9 카드를 가지고 있으면 상대의 패는 스트레이트(Straight: 무늬에 상관없이 연속된 숫자 5장으로 이루어진 패)로 내가 가진 원 페어(One pair: 같은 숫자 카드 두 장이 있는 패)보다 높아, 이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나 또한 이미 많은 돈을 걸었기에 쉽게 게임을 그만둘 수는 없다. 이 경우에 나는 게임을 계속하는 것이 좋을까?
(이 게임 상황은 포커 전문가 이윤희 씨의 저서 '포커 이기는 기술'이란 책에 나온 내용을 통해 재구성한 것이다. [6])
도박 실험
먼저 과학자들의 도박 상황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자. 도박 상황은,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다른 선택 상황들과 비교해 독특한 특징이 있다. 바로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도박 게임 중에서는 내가 동일한 선택을 내리더라도 돈을 딸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으며, 그 확률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이 특이한 상황에 주목해 과학자들 또한 도박이란 상황에서 사람들이 내리는 선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도박사들의 리스크 관리
도박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에서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들이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것이다. [7] 그동안 수학적으로 사람의 선택을 연구하는 분야에서는,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선택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합리적인 선택은 즉, 사람들이 가장 기댓값이 높은 선택을 한다는 뜻이다.
한번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자. 여러분의 눈 앞에 두 개의 버튼이 있다. 빨간 버튼과 초록 버튼이다. 빨간 버튼을 누르면 당신은 45만 원을 받을 수 있다. 반면에 초록 버튼을 누르면 50% 확률로 100만 원을 나머지 50% 확률로 돈을 주지 않는다. 이 경우에 당신은 어느 버튼을 누르겠는가?
초록 버튼을 누르는 경우의 기댓값은 50만 원으로 빨간 버튼의 기댓값보다 높다. 따라서 고전적인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초록 버튼을 선택해야만 한다. (0원×0.5 + 100만원×0.5 = 50만원) 사람들은 초록 버튼을 선택할까? 하지만, 수학적 믿음과는 달리 사람들은 대부분 빨간 버튼을 누른다고 한다. [8]
사람들은 리스크를 회피하려 한다.
많은 실험을 통해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선택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따로 계산해서 생각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선택에서 어느 정도의 이익이 기대된다고 해도, 리스크가 크면 그 선택을 하려 하지 않는다. 방금 전 버튼 실험에서 초록버튼에서 기대되는 이득은 50만 원이지만, 기댓값에 미치지 못하는 이득을 얻을 가능성 또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선택을 회피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예상되는 리스크로 인해 그 선택을 회피하는 현상을 리스크 회피(risk aversion)라 한다.
리스크 러버 (risk lover)
최근에 SNS에서 고층건물 꼭대기에 안전장비 없이 오르는 루프타핑(rooftopping)이란 행위를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유행했었다. 하지만 작년 12월에 있었던 루프타핑을 하기 위해 높은 건물에서 추락사한 SNS 스타의 뉴스로 인해 자중의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이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멋있는 사진을 얻기 위해, 혹은 다른 사람들은 느껴보지 못했을 스릴을 느끼기 위해 크나큰 리스크를 감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버튼 실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빨간 버튼을 누르는 대부분의 사람에 비해, 초록 버튼을 누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리스크를 감당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부류의 사람들을 리스크 러버라고 부른다. [9] (Risk-seeker라는 표현이 더 자주 쓰이기도 한다.)
자주 레이즈 하는 사람을 경계해라.
이런 리스크 러버의 사례는 포커 게임에서도 좋은 통찰을 제시한다. 내 패가 약한 데에도 불구하고 큰돈을 거는 행위인 블러핑은 큰 리스크가 따르는 행위이다. 그런데 앞서 설명했듯이 사람들 중에는 리스크를 감당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존재하며, 이 사실은 포커 게임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흥미롭게도 포커 전문가의 의견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게임을 하다 보면 유독 레이즈를 잘 외치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런데 분명 모든 사람에 좋은 패가 나올 확률은 수학적으로 동일하다. 그럼 그 사람은 왜 레이즈를 자주 외치는 것일까? 계속해서 블러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6] (물론 그 사람이 손기술을 사용하는 타짜가 아니라는 선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블러핑이 의심스러울 경우, 안전하게 플레이하는 사람들보다 자주 블러핑을 하는 이 사람의 블러핑을 잡아내는 것이 더 확실할 것이다. 따라서 이전 게임에서의 베팅 패턴을 통해 상대의 플레이 성향을 잘 파악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 [6]
여기서 콜을 해야 할까?
이어서 블러핑 문제를 다시 살펴보자. 여기서 상대는 그 이전 패에서 크게 레이즈를 했고, 다음 라운드에 7 카드를 받아 양방 스트레이트 상황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크게 레이즈를 했다. 이제 포커 전문가 이윤희 씨의 논리적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 보겠다. [6]
상대는 오픈 카드로 5, 6, 8 카드와 히든카드 두 장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레이즈를 한 뒤, 오픈 카드로 7을 한 장 더 받고 나서 다시 레이즈를 했다. 겉으로 보기에 이 상황은 7 한 장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상대가 원하던 7이 나와 패를 완성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생각해보면 5, 6, 8, 9 카드를 가지고 7 카드를 한 장 기다리는 것보다, 5, 6, 7, 8을 가지고 4나 9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스트레이트를 완성시킬 확률이 높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고, 더 확실한 경우에 승부를 걸려고 한다. 그렇다면 5, 6, 8을 오픈 카드로 둔 상태로 레이즈를 하는 경우에는, 7을 기다리는 경우보다는 4나 9를 기다리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럼 상대는 히든카드 두 장 중 한 장에 7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상대는 여섯 번째 카드로 7 카드를 받게 되었다. 이 경우 상대는 스트레이트를 완성시켰을 경우보다는 오히려 7 페어가 만들어졌을 확률이 높다.
만약 스트레이트가 완성되지 않은 경우에, 상대가 레이즈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오픈카드가 5, 6, 7, 8이어서 마치 스트레이트가 완성되었을 것 같은 인상을 상대에게 주어 상대가 겁을 먹고 경기를 포기하길 원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 경우 상대가 블러핑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상대에 입장에서 차근차근 정리해보기는 했으나 상대가 레이즈를 하게 만들었을 다른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 이 경우를 만들게 될 다른 경우는 무엇이 있을까?
A. 히든카드가 모두 다이아몬드여서, 총 다이아몬드 4장을 가지고 있어 다이아몬드 한 장이 더 나오길 원했을 경우
B. 처음부터 이미 스트레이트를 완성해놓고, 어떤 카드가 들어오던지 신경 쓰지 않는 경우
C. 히든카드에 3 카드와 4 카드를 가지고 있어, 3, 4, 5, 6에서 2와 7을 받아 스트레이트를 만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경우
A의 경우에는 상대가 다음 턴에 다이아몬드가 아닌 카드를 받았기 때문에 원하는 패가 완성되지 않게 된다. 따라서 A의 경우라면 플러시일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B와 C의 경우는 두 카드가 특정 숫자 카드여야만 한다. 그렇다면 상대의 히든카드 둘 중 단 한 장만이 7 카드인 경우보다 발생할 확률이 낮다. 따라서 여기서 확률적이 가장 높은 경우는 상대가 블러핑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만약 상대가 자주 레이즈를 하는 타입이었다면, 상대가 블러핑이라는 것에 걸어보는 것도 괜찮은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깊은 사고와 다양한 생각
아마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플레이 상황 하나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것을 느꼈을 것 같다. 하나의 상황을 생각하는 것만도 깊은 사고와 다양한 생각을 필요로 한다. 포커 게임에 이기기 위해서는 본인이 경험하게 될 다양한 플레이 상황에서 상대가 어떤 생각으로 그 베팅을 했을지를 고민하고, 더 다양한 상황에 준비를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남들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수용하고 그 가능성을 끊임없는 논리적 고민과 수많은 시도를 통해 제거하고 확인하는 것, 이것이 좋은 포커 플레이어의 자질이다.
과학적 사고를 해라
과학에서 논리는 필수적이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일들에는 언제나 원인이 있다. 그러나 그 펼쳐지는 일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는 않다.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그 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보고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논리적으로 원인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과학적 사고이다.
포커 플레이를 파악하는 과정을 따라오면서 느끼게 된 것은, 포커 플레이어들의 사고가 과학적 사고와 너무나도 유사하다는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든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은 서로를 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불가능한 것을 제외하고 남는 것, 그것이 아무리 있을법하지 않아 보여도 그것이 진실이다.
- 셜록 홈즈
포커의 매력
이 글을 통해 마인드 게임으로서의 포커의 매력을 한껏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포커의 매력은 게임장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포커는 인간의 심리의 많은 부분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글에서 얻은 내용들을 포커 게임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은 어떨까?
우리 주변을 살펴보자. 어머니가 화를 낼 때 팔짱을 푼 것, 나와 이야기하는 상대의 한쪽 입술이 올라가는 것, 친구가 어제 갔던 식당에 다시 가는 것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포커 속 블러핑 탐지를 위해 사용했던 사고 과정을 실생활에 적용해본다면 어떨까? 이를 통해 우리가 평소에 미쳐 살피지 못했던 주변 사람들의 숨겨진 생각을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1] 월드 시리즈 오브 포커 (Word Series of Poker) 웹사이트 (http://www.wsop.com/m/results/)\
[2] 뉴욕 타임즈 블로그 (https://fivethirtyeight.blogs.nytimes.com/2011/04/20/after-black-friday-american-poker-faces-cloudy-future/)
[3] Raskin, E. (2014). The Moneymaker Effect: The Inside Story of the Tournament That Forever Changed Poker. Huntington Press Inc.
[4] Mudrík, P. M. (2016). Moneymaker effect and his marketing impact to poker boom.
[5] Burgess, R., & Baldassarre, C. (2006). Ultimate guide to poker tells: devastate opponents by reading body language, table talk, chip moves, and much more. Triumph Books
[6] 이윤희. (2008). 포커 이기는 기술 I-III. 북마크
[7] Epstein, R. A. (2012). The theory of gambling and statistical logic. Academic Press.
[8] Tobler, P. N., & Weber, E. U. (2014). Valuation for risky and uncertain choices. In Neuroeconomics (Second Edition) (pp. 149-172).
[9] Guo, X., Wong, W. K., & Zhu, L. (2016). Almost stochastic dominance for risk averters and risk seeker. Finance Research Letters, 19, 15-21.
[P1] 저작권: CC BY 2.0, 출처 링크: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hris_Moneymaker_EPT4.jpg, Author: Equipo Unibet
[P2] 저작권: CC BY 2.0, 출처 링크: https://www.flickr.com/photos/chingster23/11945696993, Attributor: Lee Davy (flickr User)
[P3] (J 클럽, J 하트, 카드 뒷면 디자인을 제외한 카드 이미지) 저작권: CC BY-SA 3.0,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 Author: en:User:Cburnett, (J 클럽, J 하트, 카드 뒷면 디자인) 저작권: CC0
[P4] (J 클럽, J 하트, 카드 뒷면 디자인을 제외한 카드 이미지) 저작권: CC BY-SA 3.0,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 Author: en:User:Cburnett, (J 클럽, J 하트, 카드 뒷면 디자인) 저작권: CC0
[P5] 저작권: CC BY-SA 2.0, 출처 링크: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lot_machine.jpg, Author: Jeff Kubina
[P6] 저작권: CC BY 3.0, 출처 링크: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erspective-Button-Go-icon.png, Modification was made, Author: MazeNL77
[P7] 저작권: CC BY-SA 4.0, 출처 링크: https://en.wikipedia.org/wiki/Urban_exploration#/media/File:Spidermanhk.jpg, Author: Mathieu Nonnenmac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