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리뷰
사이렌이 잠을 깨운다. 포격의 기운이 세상에 가득하고 맹렬한 불꽃은 마을을 다 집어삼킬 듯 거세다. 버거울 정도로 높아 보이는 계단을 한달음에 오르고 수많은 인파를 헤치며 달려보지만 가장 안전해야 할 어머니의 병원은 완전히 불길에 휩싸인다. 마히토는 끝내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 어머니는 흔적도 없이 흩어지고 만다. 아버지와 함께 지옥도 같은 도쿄의 풍경을 뒤로 하고 평화로운 시골로 몸을 피하지만, 전쟁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그곳에서도 마히토는 도움을 요청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다. 여전히 타오르는 불 한가운데에서 고통받는 어머니의 환영을 본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죽음의 불길은 여전히 마히토의 눈앞을 어른거린다. 그러나 마히토는 어머니를 고통스럽게 만든 세상에 분노하거나 어머니를 구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마히토는 현실의 틈에 위치한 이야기의 세계를 발견하고 주저 없이 그 안으로 모험을 떠난다.
침대맡을 맴도는 공상과 책으로의 몰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이들이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 치르는 첫 번째 관문이다. 마히토 역시 방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왜가리와 점점 가까워진다. 거짓만을 말하는 왜가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시계토끼처럼 마히토를 이야기의 세계로 이끈다. 그곳에서 요통으로 고생하던 키리코 할머니는 늪의 대장을 제압하는 전사가 되고, 화재로 목숨을 잃은 어머니는 자유자재로 불을 다루는 불의 소녀 히미가 된다. 말을 하는 펠리컨과 거대한 사랑앵무가 인간을 잡아먹는 세상은 분명 픽션에 가깝다. 그렇지만, “모든 왜가리는 거짓말쟁이이다.”라는 왜가리의 모순된 말이 의외의 진실을 만들어 내듯 허구의 이야기 세계에는 놀라운 진실이 숨어 있다.
진실한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마히토는 그야말로 진실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미지의 세계를 탐구해 나간다. 세계에 대한 앎이 넓어진다는 것은 곧 조금씩 죽음의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철문의 현판이 경고하듯 세상을 배운 자는 결국 죽는다. 그러나 마히토는 고대의 무덤 속 죽음과도 같은 존재가 내뿜는 공포에 섣불리 잠식되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태어남을 향해 날아가는 와라와라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외롭게 죽은 펠리컨을 땅속에 묻어 추모한다. 또, 거짓과 배신을 일삼는 왜가리라도 쉽게 내치지 않고 끝까지 동행한다. 이처럼 이야기의 세계 안에서 마히토는 생명을 경외하고 죽음을 기억하며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마침내 어머니의 어린 시절인 불의 소녀 히미를 만난 마히토는 나츠코를 찾는 모험을 함께하며 시간이 선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깨닫는다. 펠리컨의 공격에서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키리코 할머니의 젊은 모습이라는 것도, 히미가 어머니의 어린 시절이라는 것도 마히토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서로 다른 시간으로 나가는 문들 역시 탑의 벽을 따라 둥글게 늘어서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소피가 어린 시절의 하울을 이미 만났던 것처럼 회전목마 같은 인생의 시간은 서로 둥글게 맞닿아 있다. 이는 이야기 세계에서만 가능한 허구의 시간관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큰할아버지의 탑에서 겪은 마히토의 체험은 중요한 진실을 내포한다. 비록 직접 경험하지 못한 다른 시간대의 사건이라도 어떠한 방식으로든 현재의 ‘나’의 시간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 마히토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도 이미 책을 사랑하고 불의에 당차게 맞서는 히미의 시간에 함께 하고 있었다. 히미가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을 읽으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때 마히토는 이미 가능성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우주의 신비를 발견한 큰할아버지의 계획 속에도 마히토는 자리하고 있었다. 큰할아버지와 히미가 그들의 삶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렸든 이는 현재의 마히토와 무관하지 않다. 큰할아버지와 히미는 자신뿐 아니라 미래의 마히토를 위해 살았으며, 이후 마히토가 걷게 될 삶의 여정들 역시 큰할아버지나 히미의 삶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게 될 것이다.
이야기는 고립된 우연적 사건의 점들을 연결하고 불가해한 세상에 맥락을 만들어 낸다. 열병을 앓는 마히토의 곁을 지키고, 큰할아버지의 탑에 대한 전설을 이야기해 주는 존재가 할머니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할머니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는 탑을 이루는 돌과 같은 힘이 있다. 그러나 몇 대를 거쳐 이어온 이야기라는 탑은 이제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시간을 넘나들 수 있는 문은 닫혀가고 현실의 논리에 저항하는 마법도 약해져 간다. 우주의 힘을 간직하고 있지만 흩어지면 그저 세상에 던져진 하나의 조각일 뿐인 돌들을 쌓아 올리며 이야기의 탑을 구축하는 것은 마히토와 ‘그대들’로 호명되는 관객의 몫이다. 하루만 지나면 휘발되어 버리는 스토리가 잠식한 세상 속에서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산다는 것이 곧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영화의 제목이 던지고 있는 질문은 어쩌면 “이야기하라”라는 절박한 요청인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