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안에서 나만의 공간 구축하기
연극이나 영화가 관객의 극장 경험으로 완성되듯 미술 작품도 결국엔 관람객의 전시 경험으로 완성된다. 관람객의 직접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작품도 있지만, 수동적인 관람의 과정 속에서도 관람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새로운 맥락과 의미를 구성하는 작업에 참여한다. 작가가 아무리 정교하게 시선의 이동을 예상하더라도, 또 큐레이터가 관람객의 동선을 완벽하게 통제하더라도 관람객의 수만큼 다양한 시선과 동선이 존재한다. 내가 만들어내는 시선과 동선, 그리고 이를 통해 발생하는 의미를 공유하기 위해 앞으로 나의 전시 경험을 공유하는 글을 쓰고자 한다. 나는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세상에 아는 작가보다 모르는 작가가 많지만, 나의 전시 경험이 누군가가 자신만의 전시를 구성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우디)
슬슬 본격적으로 날카로워진 바람을 헤치고 갤러리 길에 접어들자 저 멀리 갤러리현대의 외벽 홍보물이 보인다. “유근택: Reflection” 전시의 표제작 <반영 Reflection>(2023)이 담긴 건물 외벽은 찬바람이 무색하게 따뜻한 노란색으로 빛나고 있다. 그렇게 건물 밖으로 확장되어 있는 전시 공간 덕분에 나는 본격적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관람객으로 호명되는 기분 좋은 경험을 한다.
갤러리 1층 공간에는 총 일곱 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오픈된 공간 안에서 무엇을 먼저 볼지는 관람객에게 달려 있지만 나는 착실하게 넘버링된 순서대로 관람하는 쪽을 택한다. 첫 번째 작품 <거울 Mirror>(2022)은 제목을 먼저 본 탓인지 작품의 중앙에 있는 커다란 전신 거울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살짝 기울어진 거울은 창밖의 풍경을 반사하고 있었는데, 그 덕에 시선은 오른쪽에 위치한 창밖의 풍경으로 이어진다.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도시의 풍경은 숨막힌다기보다는 정감있게 느껴진다. 일단 1차적으로 의도된 듯한 시선의 이동이 끝나고 난 후에는 난잡하게 늘어진 와중에도 질서가 느껴지는 서랍장 위 물품들로 눈이 간다. 각종 화장품, 집게핀, 브러쉬, 캐릭터 부채 등이 차례로 눈에 들어오고, 부부의 사진을 담은 듯한 액자와 한쪽 구석에 무표정한 얼굴이 반사된 탁상거울로 시선이 연결된다. 액자 속 인물들의 얼굴은 비워져 있고 거울에 담긴 얼굴 또한 그늘 속에 숨어있다. 반사된 반대편에 있어야 할 원본은 보이지 않는다. 서랍장에 비해 어쩐지 작고 낮아보이는 스툴은 사용자 없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자연스럽게 거울에 비치는 인물은 관람객과 캔버스 사이에 위치하게 되고 평면의 작품은 그 사이만큼 확장된 공간을 갖게 된다. 이른 아침의 선선함은 완전히 사라지고 따스한 해가 밀려드는 오전 열한 시, 내밀한 누군가의 방과 그 공간에 딸린 창밖 풍경 속에 선 나는 건물 밖 찬 바람을 까맣게 잊고 전시 속에 완전히 편입된다.
옆으로 이어지는 창문 연작(<창문 - 아침 Window - Morning>(2023), <창문 - 새벽 Window - Dawn>(2022), <창문 - 새벽 Window - Dawn>(2020))은 창밖의 풍경에 조금 더 주목한다. 방안의 공간은 이제 창밖으로 뻗어나간다. 아침과 새벽의 조금씩 다른 창밖 풍경은 모두 방의 일부가 된다. 푸른 하늘 위 점점이 피어오른 별의 빛무리나 밤바람에 잎을 곤두세우는 나무의 실루엣이 모두 확장된 방 안으로 들어선다. 아침이 되어 형태를 되찾은 건물과 세상을 금빛으로 물들이는 해의 기운 역시 그러하다. 이제 ‘창문’이라는 이름의 세 작품이 나란히 늘어선 전시장의 흰 벽은 세 개의 창을 가진 ‘방’의 벽이 되고, 내가 선 네모난 관람 공간은 이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또 다른 ‘방’이 된다.
[”유근택: 반영” 리뷰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