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리와 함께하는 화요일
우리 아버지 생일은 1월 14일이다.
나의 생일 또한 1월 14일이다.
그리고 우리 뽀리의 출산 예정일은 1월 14일이었다.
위에 사실을 병원에서 알았을 때 나는 너무나도 신기해서 진료를 마치자마자 아버지께 전화를 하였다.
‘아버지? 신기하지 않아요? 출산예정일이 1월 14일이에요! 삼대가 모두 똑같은 날에 태어나요!’
‘그러냐? 알았다.’
나의 불꽃놀이 같은 흥분감에 아버지는 불티같은 반응으로 말하셨다.
속으로 나만 신기한 일인가? 하고 생각하고 심심한 아버지의 반응에 살짝 서운함을 느꼈지만
덤덤한 아버지의 반응과 달리 나는 그날 온 우리 친가 식구들로부터
14일에 애기 태어나는 소식 축하한다는 톡과 전화를 받았다.
(고모는 아빠가 흥분 상태여서 처음에 뭔 말 하는지 몰랐다고 하셨다.)
그렇게 1월 둘째 주까지 몸조리 잘하면서 딩가딩가 기다리면 되는 줄 알았지만.
12월 15일 밤 10시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우리 와이프의 손을 잡고 있었다.
몃번의 검진과 확인을 거치고 난 후 아이의 상태는 지금 괜찮은 상태인 것을 확인하였다.
아직 남아있는 양수를 보호하고자 와이프는 조치를 받은 후 침대에 누워있었고
겁먹은 표정과 함께 죄책감이 들어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일을 해서 우리 아이한테 큰일이 난 게 아닐까?’
두터운 미안함이 보자기처럼 쌓인 걱정스러운 마음을 힘겹게 말하였다.
‘아니야, 우리 뽀리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일찍 나오고 싶어 하는 걸 거야!’
하지만 안다, 우리 와이프는 출산을 하고 나면 일을 하지 못하는 그 미 안 함 때문에 전보다 더 열심히 자신이 맡은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였을 것을. 그러다 보니 자기 몸을 잘 돌보지 못했던 것임을 알고 있다.
미세하게 떨리는 와이프의 손을 잡고 나는 되지도 않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누그러 뜨리려고 하였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지금은 안정적인 상태이지만
내일은 아마 출산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 안정적이라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는 출산예정일보다
한 달이나 일찍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께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하였고 지나가는 간호사님들에게 얼마나 귀찮게 하였는지 모를 정도로 아이의 상태를 거의 10분마다 확인하였다.
원체 남한테 피해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여 음식점에서도 잘못된 음식이 나와도 곧 잘 먹는 나였지만.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만큼 초조한 마음을 가지면서 의료진들을 분단위로 괴롭히고 있었다.
마지막 바이탈 사인을 체크 후 쉴 수 있는 입원실로 옮길 수 있었다. 우리는 오늘 하룻 동안 있던 일로 정신이 지쳐 거의 졸다시피 하며 준비된 입원실로 이동하였고
초조한 마음과 걱정스러운 마음을 애써 누르며 잠시 쉴 수 있었다.
이튿날, 우리는 병원장님의 진찰을 받기 위하여 아침 일찍부터 움직였다.
어젯밤 설렘과 두려움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한 나와 역시나 같아 보이는 와이프는
다시 병실로 이동하여 진찰을 받았다.
진찰을 마치신 병원장님은 아직 아이의 박동이 안정적이니 오후에 출산을 준비하자고 하셨고 그래도 갑작스러웠지만 오후까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였다.
‘물 한잔 마실래?’
입이 바짝 마른 와이프에게 나는 조금이라도 안심을 주고 싶어 물어봤다.
와이프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물을 뜨기 위해 병실을 나갔다.
정수기에 병을 대고 물을 따르면서 마침 어제 일이 궁금하셨을 장모님과 어머니에게 연락을 드렸다. 두 분 다 밤새 걱정이 많으셨던 목소리로 상황에 대해 물어보셨고 오후쯤 출산을 예정에 있다고 말씀드렸다.
전화를 마치고 물이 가득 담긴 물통을 들고 입원실에 들어서는데 병원장님께서 다급하게 간호사 님들과 들어오시더니 바이탈 사인을 보시고는 침대에 누워 있는 와이프에게 말하였다.
아이의 심장박동이 불안합니다! 이대로는 위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