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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드레 Aug 22. 2022

로스트비프 -금요일 밤에 열리는 가정 미식회(1)

랜던 푸드 제너레이션 


나는 어렸을 때 다른 집에 가서 밥을 못 먹었어, 왜냐면 낯설었거든. 우리 엄마는 항상 모든 재료를 넣고 끓여주는데, 친구네는 구워 주고 튀겨주고 하니까 적응이 안 된 거야.

-조나단 파킨슨, 영국 요리에게 유년시절을 빼앗긴 남자-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면 마리아가 넓은 초원을 달리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들판만 보면 무조건 뛰고 빙글빙글 돌아야 직성이 풀렸던 걸 보면 어릴 때 꽤나 이 장면이 인상 깊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들판을 뛰어놀기에는 막히는 것도 많고 무엇보다 영화에서 보던 지평선이 보이지 않아 머릿속 상상으로 명량함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존! 차! 차!!! 세워줘요!’


한적한 외각을 달리던 오래된 하얀색 볼보는 뜬금없이 길 한가운데에 멈추게 된다.


‘왜 왜 무슨 일야? 또 응가 마려워서 그러는 거야?’


하얗게 질린 존의 얼굴에서는 몇 달 전에 있었던 ‘새인트 킬다 해변도로 참극’ 이 재생되는 듯 공포에 질린 얼굴로 핸들을 꽈악 잡았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잘 들어봐요 존, 내가 어렸을 때….’


‘또 사운드 오브 뮤직 이야기 라면 네가 이미 열 번도 넘게 말했던 거 알고 있어.’


그리고는 설마… 하는 얼굴로 주위를 살펴본 그는 나를 쳐다보면서 이야기하였다


‘아냐.. 아냐 저거 들판 아니야… 아니 맞는데 파란 잔디밭이 아니야 그리고 저기 뛰어갔다가 온 몸에 붙은 모래먼지랑 건초를 몸에 주렁주렁 달고 차에 타겠다고? 집까지 걸어올 거야?”


우리가 서 있는 2차선 도로 옆으로는 도로가 아님을 나타내는 표지판과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갈색 대 평원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보이는 색은 단 2가지였다, 갈색 그리고 파란색. 지평선이 진하게 경계를 나누는 평원은 나무 한그루 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저기 저 멀리 보이는 구름만이 거리감을 보여줄 뿐이었다.


‘존.. 존은 정말 멋진 어른이라고 생각해. 진심이야, 존이 나에게 했던 말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했던 말이 기억이나 네가 원하는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한 번의 시도가, 한 번의 기회가 온다면 그걸 잡겠어? 아님… 그냥 놓쳐버릴래?, 봐요 존 나는 그 기회를 마주하고 있어. 남자는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는 거잖아

그렇지?’


‘사기 치지 마 이 소똥 같은 녀석아 그거 에미넴 가사잖아.’


그는 연신 블러디 노라를 외쳐대며 차를 바로 출발시켰다. 아마 시간을 지체하면 “록 뱅크 타깃 쇼핑몰 탈주 사건”처럼 문을 열고 사방팔방으로 뛰쳐나갈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아쉬운 마음을 담아둔 채 나는 풀었던 안전벨트를 다시 동여 매였고 시끄럽게 울려대던 안전벨트 알람도 잠잠해졌다.


‘만에 하나 주말에 하던가 아니면 다른 날에 함부로 저 들판을 뛸 생각은 안 하는 것이 좋을 거야’


그는 내 마음을 꿔 뚫듯 운전을 하면서 곁눈질로 말하였다.


‘호주 들판에는 단 한방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거미가 우글거려. 그리고 지친 너를 덮칠 준비가 되어있는 딩고 무리도 말이야. 홈스테이 학생의 시체를 치우는 건 한 번이면 족해.”


‘………응? 한 번이라고? 무슨 말이야?’


그는 눈이 부신 듯 리젝 샵에서 5달러에 산 장난감스러운  빨간 선글라스를 끼며 말했다.


‘그래 한 번 만이면 됐어.’


괜스레 아련하게 말하며 엑셀을 가속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고 속이 좋은 나는  오늘 저녁이 무엇인지 갑자기 궁금해 하면서 햇살에 달궈진 창문에 내 팔을 가져다 대면서 온기를 즐겼다.

내가 다니는 어학원은 시티에서 한 시간 반이나 떨어져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존과 함께 5시에 일어나 열차역까지 그의 차를 타고 가고,  시간대가 맞으면 같이 차를 타고 집까지 돌아왔다. 


존은 친근한 아빠이자 영국 남자였다.


그는 나의 영어공부를  열차 안에서 항상 도와주었다. 돌아오는 길에서도 기꺼이 오늘 어학원에서 배운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물론 어법과 발음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단언컨대 그가 없었다면 나는 우울증과 향수병으로 유학 초반에 이미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그릉그릉 거리는 낡은 볼보는 어느새 우리를 집으로 인도하였다.


‘나 왔어 허니~!’라는 말과 함께 보더콜리 해리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해리는 인근 농장에서 데려온 아이인데 머리가 좋아서 그러지 오직 존 에게만 친근한 녀석이다.

연신 굿보이를 외쳐대며 해리의 머리를 쓰다듬는 존의 머리 위로 연기가 보였다.

 현관 바로 앞에 위치한 주방에서는 진한 고기 냄새와 부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금요일이었다. 다음날은 늘어지게 잘 수 있거나 홈스테이 가족들과 

가까운 해변에 놀러 갈 수 있는 날이다.


그러나 금요일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는 로스트비프를 먹는 날이기도 하였다. 

전날 존이 빅토리아 마켓에서 사 온 커다란 소고기 부위를 스테인리스 트레이에 올려두고 명주실로 꽁꽁 쌓매 두었다. 작업하는 것을 보면 저 두터운 손으로 섬세하게 고기를 동여매는 솜씨는 감탄이 나왔다.

동여맨 고기 위에 소금, 후추를 뿌리고 올리브 오일을 바른 다음 쿠킹 포일을 덮어 둔다.  그다음 냉장고 넣어두면 그의 아내인 캐서린이 오후 3시 즈음에 오븐에 소고기 덩어리를 넣고는 우리가 도착하는 6시까지 진득하게 오븐에서 구워 낸다.


오븐에서 저온으로 오랫동안 구워진 소고기 덩어리는 핑크빛 속살을 자랑하며 큰 포크가 꽂힌 채로 식탁 위에 뜨거운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나도 서둘러 내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손을 씻은 다음 음식이 준비된 식탁에 자리를 잡는다.

식탁 위에는 스팀으로 쪄낸 당근, 콩대, 옥수수와 완두 통이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예쁘게 담겨 있었다.

다른 한편에는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그레이비소스가 진한 색을 자랑하며 진득한 모양새로 야채들과 함께 뜨거운 김을 뿜고 있다.


주방 한편 아일랜드 식탁에서는 오늘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파킨스가의 장남인 루크가 플라스틱 그릇에 감자를 으깨고 있었고 막내딸 헤더는 그 옆에서 버터와 우유 크림을 넣을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둘째 아들 조슈아는 자기 방에서 스매시브라더스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루크가 만드는 매쉬 포테이토가 완성되어갈 때 즈음 나는 식탁 위에 인원수에 맞게끔 그릇을 정갈하게 준비했고 캐서린이 오븐에서 요크셔푸딩을 꺼내기만을 기다렸다.



‘디너 레디~!’



강 같은 평화의 목소리! 


풍미가 진한 버터의 눅진한 냄새가 주방에 퍼지면서 분명히 바삭하고 짭조롬할 요크셔 푸딩이 

황금빛 자채를 내뿜으며 고소하게 구워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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