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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드레 Aug 01. 2022

오 짐, 지미 아주아주 지독한 지미(1).

랜덤 푸드 제너레이션1#

돈이 무서울 때가 언제인 줄 알아? 바로 없을 때야. 

-짐, 당시 40대, 대머리- 





호주에 도착한 지 1년 후 어학원을 갓 졸업하고 요리대학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열아홉의 나는 백지에 가까운 이력서를 들고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많이 모인 라이곤 스트릿을 누볐다. 요리를 배울 수 있는 일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침 7시에 길을 나서 큰 길가의 식당부터 길 끝 구석의 작은 식당들까지 식당처럼 생긴 곳은 모두 들어가 이력서를 내밀었다. 



식당에 들어가 맥주 쩐내 나는 바를 지나 올리브와 마늘 향이 눅진하게 깔린 키친을 스칠 때면 나 스스로도 이렇게 켜켜이 쌓여있는 시간에 녹아들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무뚝뚝한 카운터 직원에게 이제는 떨리지도 않는 손으로 이력서를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주방 보조 필요하지 않으세요?’



결과는? 전부 차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말을 떼기 시작해 보이는 외국인을 선뜻 받아줄 인심 좋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을까? 호주 인건비는 비쌌다. 영어가 서툰 동양인 외국인을 비싼 인건비를 줘가며 주방에서 일을 시키는 것은 손해라고 생각했다. 주방에서 일하는 것은 팀워크가 중요하다, 그런데 의사소통이 서툴다? 그런데 아이에 경력도 없다? 냉정히 말하면 나를 이용해야 할 메리트가 전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2시까지 라이곤 스트릿의 메인 도로의 모든 가게에 이력서를 돌렸지만 긍정적인 대답은 없었다. 

나도 저기 켜켜이 쌓여있는 서류상자에 한 장을 더 할 뿐이었다. 자신감이 많이 사라진 나는 트램을 타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하여 시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길을 걸어가면서 시티 쪽 말고 외부 쪽으로 이력서를 들고 찾아가 봐야 하나 생각을 하였다 그러다가 눈에 하얀색 회벽에 파란색 천막이 인상적인 3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고급져 보이는 외관과 아래에서 여유롭게 식사를 하는 사람들과 서빙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곳에서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어린 마음에 저기서 일하게 되면 저기 있는 사람들과 같은 급이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력서를 꼬깃 잡은 팔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호주의 낮 열기를 온몸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부러운 마음 접고 나는 가던 길을 재촉하였다. 


호주에 도착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시티 구경은 언제나 재미있는 볼거리였다. 물론 내가 1년 동안 홈스테이를 시티 기준 외각으로 하여(5시면 기차가 끊긴다.) 사람들이 나를 신데렐라라고 부르던 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막 시작한 시티 생활은 구석구석 속속들이 알고 싶고 궁금한 것이 너무나도 많아 늘 새롭고 신기하고 즐거운 곳이었다. 


한국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신 시가지와 구시가지의 멋들어진 조화와 길거리 예술가들, 이 풍경을 1년이 넘게 보고 있는데도 늘 새롭고 신기한 느낌을 주었다.  

라트로브 대학 맞은편 헝그리 잭에서 길을 건너 여러 인종들과 뒤섞여 센트럴로 향하는 횡단보도에 멈춰 섰다.

시간을 보니 아직 집에 들어가긴 이른 시간이었고 집에 들어가도 밖보다 더 더운 찜통 하우스가 나를 반겨줄 생각에 온몸이 소스라쳤다. 

정말 미친 더위였다, 그 집에서 밤에 자가다 이대로 있으면 기독교 신자도 사바세계로의 초대를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찜통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우뚝 솟은 센트럴의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녹초가 되고 자신감도 사라진 상태였지만 그래도 한번 넣어볼까?라는 생각으로 센트럴의 카페 구역으로 발길을 향하였다. ㄷ 자로 생긴 카페 구역을 돌아보다가 음식까지 하는 레스토랑을 찾게 되었다. 이름은 ‘미투’였고 커피머신과 칵테일 그리고 와인이 배치되어있는 웅장한 벽을 뒤로 머리가 휑한 덩치가 큰 백인 아저씨가 돈 계산을 하던 중이었다.


그의 덩치와 뒤에 보이는 분위기에 살짝 겁을 먹었지만 용기를 내어 그의 앞에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혹시 일자리 하나 있을까요?’ 


내 목소리를 듣고는 나를 안경 사이로 치켜 보더니 위아래로 흩어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자기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이라면 남아있는 머리카락들을 손가락 사이사이로 꼬아 잡고. 어이 아저씨 목뼈 필요 없어요?라고 할 순 있겠지만, 그 당시 나는 20살 뽀송이 아무것도 모르는 애새끼였을 뿐이었다. 

다시 한번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고개 숙인 그를 향해 다시 물어보았다.  


“여기 제 이력서예요 여기 보시면 아시다시피 내년에는 요리대학에도…” 


“썩 꺼져!! 사람 안 뽑아 이 노란 애새끼야!” 


급작스러운 샤우팅에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과 갑작스러운 샤우팅에 당황한 나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미스트 뿌리듯 말하며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빠르게 카페 통로를 뛰쳐나왔다.

그날 밤 나는 분한 마음과 진정되지 않는 무기력감에 휩싸여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20살. 



 매우 당혹스럽게도 사회와의 첫 대면은 인종차별주의적 발언과 함께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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