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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드레 Aug 01. 2022

오 짐, 지미 아주아주 지독한 지미(2)

랜덤 푸드 제너레이션 2#

'싸면서 좋은 거! 왜 싸면서 좋은 것을 못 가져오냔 말이야!' 

-짐, 당시 40대, 대머리- 





20살짜리의 아직 생것 가득한 자존심의 스크래치는 쉽게 아물기 힘들었다. 

아니 오히려 그 상처 사이로 울컥울컥 나오는 피가 내 마음을 더욱더 뜨겁게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무도 없는 쉐어 하우스에서 나는 또 분을 식히고 있었다. 


‘또라이 같은 새끼 아니야?’


‘내가 철면피 깔고 오늘 다시 너네 가게 간다’ 


‘한 번 더 소리 지르면 그때에는 경찰에 신고해버릴 거야!’ 


지금도 생각해보면 참 순진한 생각이었고 자기 팔자 자기가 꼬는 데에는 충분한 재능의 소유 자였었다는 것 빨리 알았어야 했다. 그때는 그랬다 밖으로 나가면 한국말 하나 없는 외국이었고, 어느 누구도 내 하소연을 한국어로 깊이 있게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나는 나 대로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일자리를 잡아 학비에 보탬이 되고 싶었고,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최소한 칼질은 익히고 들어가고 싶었다. 이래저래 절박한 것은 나였다.


어제까지 돌린 이력서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돌아다니면서 이력서를 돌려야 하는데 단지 센트럴이 가는 길목에 있을 뿐이고 뜨거운 햇살을 계속 맞으면서 걷는 것보단 그늘을 찾아가야 하니 카페거리를 지나가는 것이 합리적이며 그냥 다시 가보는 김에 다시 한번 이력서를 넣는다, 그뿐이다.


설마 어제 스치듯 본 동양인 얼굴을 기억이라도 하겠나? 이력서도 보지 않았는데. 

(이러한 생각에 의문이 품는다면 외국영화를 볼 때 조연들의 얼굴을 세세하게 분간하는지 생각해보면 쉽다, 아니라고? 반박 시 당신 말이 맞다.) 

나는 정신승리를 계속해가면서 다시 한 손에는 이력서를 꼬깃 쥐고 다시 한번 센트럴의 미투로 발걸음을 향하였다. 


센트럴로 길을 건너기 전 AnZ 은행 앞에서 신호를 대기하고 있었다. 사실 정신승리로 무장하면서 길을 나오긴 했지만 몇 블록 걸어가기 시작하면서 마음 에는 어제의 쪽팔림과 당혹스러움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괜히 헛수고하는 거 아닐까?’


‘와 씨… 어차피 안될 거 같은데 또 그 상황을 마주하면 어쩌지?’


산호가 파란불이 되었다 라는 알림이 울리는 것을 듣고 나는 나름 비장한 얼굴로 횡단보도를 걸어 나갔다.



다시 카페거리에 도착하였고 나는 다시 어제 그 장소 앞에 서게 되었다. 어제처럼 그 대머리에 덩치 큰 백인 아저씨는 카운터에 있었다. 무언가를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고 그냥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뚜벅뚜벅 그쪽을 향해 걸음을 올렸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한발 


두발


세발 


네발. 


걸음이 미투에 가까워질수록 더 더욱더 긴장감이 크게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밖을 보고 있던 그 백인 아저씨는 이쪽으로 걸어오는 나를 보고는 별안간 팔짱을 껴버렸다.


‘와 새됐네.’


날 알아보는 듯한 그의 제스처와 뚫어져라 내쪽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느껴질수록 옴 몸에서는 

‘진짜 갈 거임? 저기 저 사람 널 찢어 버릴 거 같은데?’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러한 순간순간의 생각이 온몸을 휘감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발을 돌려 지나갈까 생각하던 차에, 어느새 나는 그의 앞에 있었다. 나는 최대한 비굴하게(혹은 산뜻하게) 웃으면서 말하였다. 


‘안녕하세요 여기 일자리 있을까요? 여기 제 이력서….” 


“11시부터 3시까지, 샐러드 랑 밑 작업, 주급은 한 달 동안 없어, 봐서 쫓아내던지 시간을 늘릴 거야.” 


이미 그는 내 이력서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한 달 동안 돈 없이 일해야 하는 것이 왜 그래야 하는지, 이후에는 더 시간이 늘어나는데 그때 계약서를 작성하는지, 아니 그리고 최소한 내 이름 정도는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럼 어제 소리는 왜 지른 건데 이러한 불합리한 처사에 내가 뭣 하러 이런 데에서 일해 빨리 원래 가려던 다른 곳 가서 이력서를 돌리자! 



라고 생각을 했어야 했었다. 




“네! 감사합니다” 


내일부터 출근하기로 ‘구두’로 이야기하고는 그는 소 손을 휘휘 저으며 볼일 끝났다는 듯이 나를 내몰았다. 


또다시 비굴하고 밝은 웃음을 보이며 ‘바이~’라고 말하고는 나는 내 이력서도 주지 않고 총총총 가벼운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무서운 선생님한테 엄청 깨지고 난 후 다시 빠꾸 먹은 숙제를 통과받은 기분이었다. 부당하고 이상한 순간이었지만 뼛속까지 노예근성이 새겨진 나에게는 내일 출근하기로 했다는 것만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이게 짐 과의 첫 만남이 이였다. 

그리스 이민자 출신, 호주 칵테일 챔피언 출신이자 돈 많은 10살 연상 사모님을 꼬셔 결혼하였고

두 딸이 있는 한가정의 아버지였다. 친해지고 나니 지미라고 부르라고 하던 짐…. 

주방 식구들은 그를 지미라고 부르기도 하면서 다른 이름으로 그를 부르기도 했다. 


“지독한 지미라고” 



그래 이 빌어먹을 지미와 그의 가게는 내 인생 첫 커리어에 첫 스타트를 끊어 주었다. 





악마나 물어 가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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