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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림 Feb 15. 2019

눈이 내립니다.

선생님에 올리는 편지, 열

선생님, 오늘 아침에는 참으로 간만에 눈이 내립니다. 소복소복 쌓이는 눈에 마음까지 맑아지는 기분입니다.


겨울이라 그런지 수조에 물이 금방 마릅니다. 물고기들은 물의 면적에 따라 세상의 크기가 결정되는지라 주기적으로 물을 채워 넣어주고 있습니다. 미지근한 물이 들어가자 물고기들이 반기는 것을 보니 배가 고픈 모양입니다. 물고기 밥을 주기로 했습니다. 물고기 밥은 색색가지로 되어있어 물에 흐트러뜨리면 마치 벚꽃처럼 보입니다. 이런 모양으로 만든 것을 보니 사람은 자연을 언제나 그리워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물고기는 어떤 생각일까요? 정말로 제가 생각처럼 '물이 부족해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비좁아'. '배가 고프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그저 교만한 인간의 생각으로 물을 채워 넣고 밥을 줘 놓고 '역시 좋아하는구나~ 난 이들을 걱정해주고 챙겨주고 있어. 뿌듯하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듭니다.


물고기와 사람은 이해가 쉽지만 사람과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지레짐작으로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내가 마음을 써서 이렇게 해줘야겠다'고 움직이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와는 완전히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내 감각에 도취해버리면 안 되겠습니다. 도취해버린 삶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겠지요. 항시 겸손한 마음으로 순간순간을 새롭게 살겠습니다.
 

눈이 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비가 올 때 하늘을 보는 것은 물이 들어가서 눈을 뜨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낭만적이지 않을 것 같은 상상입니다. '눈은 낭만적이고 비는 그렇지 않다'와 같은 생각 역시 인간의 경험과 감각만으로 올라온 허황된 것이겠습니다.





눈이 오는 하늘을 바라보니 허연 하늘 저 어딘가에서부터 눈이 결정체가 되어 내려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떠다니다가 무언가와 만나면 어떠한 저항 없이 그곳에 정착합니다. 그곳에서 다시 물이 되어 생을 마감합니다.
 
'생을 마감한다'라고 했지만 그것 또한 인간의 생각이겠습니다. 눈의 입장에서 보자면 증발하여 다시 공기 중으로 가거나 녹아내려 더 큰 물로도 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얼마든지 식물에게 뿌려져 제 입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 그야말로 '자유'입니다. 눈이 녹아 물이 되고 물이 다시 눈이 되는 것이 인간의 머리로는 신비해 보일지 모르겠으나 자연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일 테지요.




단적으로 물고기와 눈 이야기를 했지만 이 세상을 오로지 자신의 감각과 생각에 의존하여 맘껏 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항시 겸손하여야겠습니다.


눈이 오니 길을 가는 차도 속도를 줄이고 사람들도 느려졌습니다. 느려진 만큼 깨어, 순간을 만끽하는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글 /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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