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림 Mar 17. 2019

정의내리는 습관

선생님께 올리는 편지, 열넷

전사자세3을 할 때 시선이 제 발등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발등을 보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여러가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무릎이 좋지 않아서, 어차피 좀 있으면 뒤로 물러날 거니까, 그동안 전사3을 해보니 이 정도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등등의 이유들이 제 시선을 발등에 떨어뜨리게 했습니다. 얼마 뒤의 상황에 이미 정신을 뺏겨버렸으니 현재가 고요할리 없습니다. 버티듯이 하다가 누가 뒤로 잡아당기듯이 돌아와버립니다.


요가를 하면서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점차 달라짐을 느낍니다.

삶의 과제를 무시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는 자세를 배웁니다.

피할 수 없다면 온몸을 던져 즐기는 방법도 배웁니다. 


'그래 한번 해 보지뭐.'

가벼운 마음과 마주하는 마음을 더하니 시선이 발등에 떨어지지 않고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갑니다. 뒤로 물러날 생각은 접어두고, 지금 이 순간, 하늘을 날듯 움직입니다. 손과 발은 기체처럼 형체가 없고 목과 어깨도 긴장없이 넓게 펼쳐나갑니다. 마음결 하나를 펴냈을 뿐인데 시선이 달라지다니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이게 될까?

이번달 얼마나 아껴야 카드값을 낼 수 있지?

윤대리, 이거 할 수 있겠어?

오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저 사람 키가 얼마일까?

주량은 어느정도 되세요?

저 연예인은 말투를 보니까 어릴 때 좀 놀았네.


판단하고, 정의하고, 가능성을 재보는 습관을 내려놓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평생, 몸에 베일만큼, 내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해왔기 때문입니다. 한계를 내 스스로 만드는 것은, 날개를 펼쳐보지도 못하고 바닥만 걸어다니려는 새처럼 안타깝기 그지 없을 것 입니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고 내 날개를 맘껏 펴 내고 싶습니다. 






내가 너로 살아봤냐? 아니잖아.

네가 나로 살아봤냐? 아니잖아.

걔네가 너로 살아봤냐? 아니잖아.


장기하와 얼굴들의 '그건 니 생각이고'라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나의 날개가 판단되어지는 것이 쾌하지 않듯이, 다른 사람의 날개 또한 판단하고 정의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환기하고 있습니다. 하루 24시간을 뜯어보면 남을 판단하는 말도 꽤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 사람으로 살아본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판단하고 싶은걸까요. 


혹시 '저 사람이 틀렸다'를 통해서 '나는 옳은 사람이다'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타인을 낮춤으로써 나를 입증하는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스스로를 굳게 믿는다면 타인이 높든 낮든 영향을 주지 않을텐데 말입니다. 또 옳고 그름은 어디에 있을까요? 무엇에 불안해하고 있는지를,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들여다볼 때입니다.


저 사람은 저 사람대로, 나는 나대로 그저 주어진 길을 한발한발 걸어갈 뿐입니다. 허상에 인생을 빼앗기지 않고 지금 믿는 제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그 길은 양쪽이 막힌 고속도로가 아니라 길 가다 강아지도 만나고 개미도 만나고 구름도 보고 바람도 느끼는 시골 흙길 같은 길이면 좋겠습니다.





글 / 올림




작가의 이전글 지금, 너로 살고 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