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노동 개념의 변화는 단순한 기술 도구의 발전에 따른 현상이 아니라, 사회를 조직하는 핵심 원리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 주는 역사적 흐름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산업사회에서 노동은 주로 물질적 생산을 중심으로 이해되었다. 공장, 기계, 대량생산 체제는 인간 노동을 생산 공정의 핵심 요소로 위치시켰고, 노동의 가치는 생산량, 효율성, 규율, 반복 가능성에 의해 평가되었다. 이 시기 노동자는 육체적 힘과 시간을 제공하는 존재로 이해되었으며, 노동은 생존의 수단인 동시에 사회적 계층과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심 질서로 작동하였다. 따라서 산업사회에서 “일한다”는 것은 단지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기본 조건에 가까운 의미를 지녔다.
그러나 후기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노동의 중심축은 점차 물질 생산에서 정보 처리와 지식 활용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정보사회에서 핵심 자원은 더 이상 토지나 기계만이 아니라 정보, 데이터, 네트워크, 지식이 되었다. 노동 역시 반복적 육체노동 중심의 구조에서 기획, 분석, 소통, 관리, 서비스와 같은 인지적·비물질적 노동의 비중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이 변화는 노동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산업사회에서 노동이 주로 “정해진 공정을 수행하는 능력”에 의해 평가되었다면, 정보사회에서 노동은 “지식을 다루고 문제를 해결하며 의사소통하는 능력”에 의해 더 크게 평가받게 되었다. 그 결과 노동자는 단순한 생산 요소가 아니라 정보와 지식을 처리하는 주체로 이해되기 시작하였고, 노동의 성과 역시 물리적 산출물뿐 아니라 아이디어, 콘텐츠, 서비스 경험, 상징 자본과 같은 비물질적 형태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변화는 정보사회로의 전환을 넘어서는 새로운 단계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것이 바로 AI 사회이다. AI 사회에서는 인간이 정보를 처리하는 주체라는 정보사회적 전제가 다시 수정된다. 정보사회가 인간의 인지 능력과 네트워크 활용 능력을 중심으로 노동을 재편하였다면, AI 사회는 그 인지 과정의 일부를 기계가 대체하거나 증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 단계와 구별된다. 특히 생성형 AI의 등장은 글쓰기, 요약, 번역, 분석, 이미지 생성, 코드 작성과 같은 영역까지 자동화 혹은 반자동화의 가능성을 넓히면서, 과거에는 인간 고유의 고차원적 노동으로 이해되던 영역에까지 기술적 개입을 본격화하였다. OECD는 최근 보고서에서 AI가 자동화를 통해 기업의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노동자의 업무 수행 방식과 기술 수요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한다. 다만 현재까지 OECD 국가 전반에서는 AI가 전체 일자리 수를 급격히 감소시켰다는 강한 증거는 제한적이며, 오히려 직무의 내용과 보상 구조가 불균등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 더 분명하게 관찰된다고 분석한다. 특히 고숙련·고소득 노동자일수록 AI로 인한 생산성과 임금의 혜택을 더 크게 누리는 경향이 나타난다.¹
(OECD, 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Labour Market in Korea (Paris: OECD Publishing, 2025), chap. 2, “The impact of AI on the labour market.”)
이러한 점에서 AI 사회는 정보사회와 연속성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질적으로 다른 전환을 보여 준다. 정보사회가 인간을 “지식을 처리하는 노동자”로 재규정하였다면, AI 사회는 인간을 “기계와 협력하면서 자신의 고유 역할을 새롭게 규정해야 하는 존재”로 밀어 넣는다. 이제 노동의 핵심은 단순한 정보 보유나 처리 능력 자체가 아니라, AI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무엇을 판단하고, 무엇을 책임지며, 무엇을 인간 고유의 가치로 남겨 둘 것인가를 식별하는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처럼 노동은 더 이상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는 배타적 영역으로 이해되기 어렵게 되었고, 인간 노동의 의미는 생산 기능보다 해석, 관계, 윤리적 판단, 창의적 통합 능력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 역시 이러한 흐름을 노동의 대규모 소멸이라기보다 구조적 재편으로 이해한다. 『Future of Jobs Report 2025』는 2025년부터 2030년 사이 전 세계적으로 약 1억 7천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는 반면 약 9천 2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보며, 결과적으로 기술 변화가 순감소보다는 대규모 전환을 낳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한 기업들은 AI와 정보 처리 기술의 확산에 대응하여 조직 구조와 인력 운용 방식을 재조정하고 있으며, 기술 이해력, 분석 능력, 창의성, 회복탄력성, 평생학습 역량과 같은 요소를 미래 노동의 핵심 역량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노동이 더 이상 일정한 직무의 반복 수행으로 안정적으로 규정되지 않고, 지속적인 재학습과 적응을 요구하는 유동적 형태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²
(World Economic Forum, The Future of Jobs Report 2025 (Geneva: World Economic Forum, 2025), 3–5.)
한편 국제노동기구는 생성형 AI의 영향에 대하여 보다 신중한 평가를 제시한다. ILO는 다수의 직업이 완전한 대체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직무 내부의 특정 과업들이 자동화되거나 재조정되는 방식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특히 생성형 AI는 직업 전체를 제거하기보다 직업 내부의 과업 구성을 바꾸며, 그 결과 노동의 양뿐 아니라 노동의 질, 자율성, 통제, 감시, 불안정성 문제를 새롭게 제기한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성별과 국가별 산업구조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나는데, 사무직 비중이 높은 국가나 직군, 그리고 여성 고용 비중이 높은 일부 행정·사무 영역에서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곧 AI 사회는 노동을 단순히 줄이는 사회가 아니라, 노동의 경계와 위계를 다시 배열하는 사회라고 보아야 한다.³
(Pawel Gmyrek, Janine Berg, and David Bescond, Generative AI and Jobs: A Global Analysis of Potential Effects on Job Quantity and Quality, ILO Working Paper 96 (Geneva: International Labour Office, 2023), 1–4.)
이와 같이 산업사회, 정보사회, AI 사회의 흐름을 따라가면 노동 개념은 점차 세 가지 방향으로 변모해 왔다고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노동의 중심이 육체적 생산에서 정보 처리와 인지적 수행으로 이동하였다.
둘째, 노동의 가치는 단순한 생산량보다 문제 해결 능력, 창의성, 관계 형성, 복합적 판단 능력에 의해 평가되는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셋째, AI 사회에 이르러서는 인간이 노동의 유일한 수행 주체라는 전제가 흔들리면서, 노동은 “무엇을 얼마나 생산하는가”의 문제를 넘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가”를 묻는 개념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노동은 경제학적 범주를 넘어 인간학적·윤리적·신학적 범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결국 산업사회에서 노동은 생산의 중심축이었고, 정보사회에서 노동은 지식 처리의 중심축이었으며, AI 사회에서 노동은 인간 고유성의 경계를 시험하는 영역이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노동 개념의 전환은 단순한 직업 구조 변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가치와 정체성을 무엇에 두어야 하는가를 다시 묻게 만드는 전환이다. 이전 시대에는 노동이 인간의 유용성을 증명하는 주된 장치였다면, AI 사회는 노동의 유용성 자체보다 인간 존재의 근거를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에서 노동 개념의 전환을 논의한다는 것은 단지 산업 구조의 변화를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됨의 의미를 새롭게 묻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