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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엘북스 Apr 09. 2020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이지 않게"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언젠가 읽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영화가 나오고 나서야 읽게 되었다.

이제 책으로 다 읽었으니 영화차례다 :)

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의 말로는 영화가 더 좋았다고 하는데 기대된다.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많이 생각이 난 사람은 아내였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내 자신도.

자라고 있는 라엘이는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인지도 궁금했다.


책에는 소설 내용이 나오고 뒤 편에 김고연주(여성학자)의 작품해설이 간략하게 함께 실려있다. 해설을 시작하기를 일반적인 소설의 특징은 특수성을 나타내는 것에 있는데 <82년생 김지영>은 오히려 우리 주위에 어디에나 있을 법한, 아니 대부분 존재하고 있는 보편성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평범함이 곧 소설의 특수성이라고 평가한다.


82년생 김지영씨는 위로 언니 1명과 남동생이 있었다. 남동생은 모든 물건을 하나씩 따로 받고 김지영 씨는 언니와 함께 사용했다. 이에 대해서 주인공 김지영씨는 "원래 그랬으니까. 가끔 뭔가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자신이 누나니까 양보하는 거고, 성별이 같은 언니와 물건을 공유하는 거라고 자발적으로 상황을 합리화하는 데에 익숙했다. 어머니는 터울이 져서 그런지 누나들이 샘도 없고, 동생을 잘 돌봐 준다고 항상 칭찬했는데, 자꾸 칭찬을 받으니까 정말 샘을 낼 수도 없었다(p.28)."라고 생각한다.

시대의 언어가 온 몸을 휘감고 있는 것이다. 원래 그렇다는 것에 대하여 "아니야, 그렇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것이 참 힘들다. 누구나 그렇게 사는 것 같고, 나만 유별나보인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살잖아" 라고 말하는 순간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세상이 펼쳐진다'고 했던가.


게다가 나는 기득권을 누리는 남동생의 위치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굳이 알아차리지 않아도 됐고, 알아 차리더라도 지금까지 누려온 권력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모르는 척 넘어가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아내의 육아와 집안일에 대해서 책의 내용과 비슷하게 대한 것 같다. 남자인 내가 집안일을 돕는 사람이 아니고 주체라는 이야기를 아내가 해줘서 표현은 안했지만, 적당히 돕는 사람으로 남아있기를 원했다. 그리고 노동의 가치를 후려쳤다. 내가 하는 일은 돈을 벌어오고 있고, 당신이 하는 집안 일은 돈이 안 생긴다며.


김지영 씨가 겪는 수많은 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은 이러한 것이었다.

하지만 자기 생각을 말해 버릇하지 않아서인지 푸념도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p.57)


이 모습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오히려 함구해야 하는 세상과 닮아있고, 그 뿌리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만든 사회의 결과물이다. 불합리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자연스럽게 내가 조심하지 않아서라고 여기고, 푸념 하는 것을 불평 불만이 많은 사람으로 인식해버린다.


어느 공동체나 공동체를 지키려는 인식이 작용하고, 확장하려는 메커니즘이 작용한다고 하는데, 이는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조리에 대해서 말을 내뱉으면, 마치 공동체를 해하는 것으로 쉽게 찍어누른다. 교회도 잘못된 상식에 기초하고 있는 부분들을 확실히 짚고 재인식하며, 새롭게 틀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정유정 작가는 바쁠수록 소설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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