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은 사당, 사당입니다.”
내내 자리에서 졸다가 귓가에 나지막이 들리는 안내 음성에 정신이 들었다. 목적지가 맞는지 전광판 안내 메시지를 한번 더 확인하고 나서 부리나케 베낭을 챙겨 멘 뒤 닫히려는 자동문 사이를 간신히 비집고 내렸다.
"4번 출구였었나."
잠에서 덜 깬 채로 출구를 향해 가던 도중 화장실에 들렀다. 대충 볼일을 보고 잠도 깰 겸 찬물로 고양이 세수를 했다. 거울로 몰골을 확인하니 눈 밑에는 한 주간의 피로가 시커멓게 새겨져 있었다.
출구로 나와 편의점에 들렀다. 대체 감미료 가득한 제로 음료를 만지작대다 결국 1+1 생수를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POS기 옆에 비치된 주전부리들이 추파를 던졌지만 애써 외면했다. 주식이건 뭐건 자그마한 달콤한 유혹이 나중에 크게 일을 그르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삑- 삑- 1+1 행사 상품입니다.”
“주식도 1+1이면 좋겠구만.”
속으로만 생각한다는 게 무심결에 밖으로 새어 나왔다. 점원 아저씨가 피식- 웃더니 주식하시나 봐요, 라고 말을 걸어왔다. 요즘엔 식당이건 카페건 어딜 가도 다들 주식 얘기가 들렸다. 그래도 괜시리 민망해 예, 라고 대충 얼버무리는 투로 대답하면서 엉겁결에 IC카드 투입란에 카드를 투입했다. 그 순간 아저씨의 봉투 필요하시느냐, 라는 얘기가 오버랩 됐고 동시에 결제까지 이뤄졌다. 둘 다 머뭇대던 차, 아저씨께서 봉투를 뜯으시더니 손수 생수를 담아선 내게 건넸다.
“아, 죄송해요... 봉투값만 따로 내겠습니다.”
“됐어요. 이담에 주식으로 돈 많이 벌면 그때 와서 많이 사가요.”
비록 작은 호의였지만 감사한 마음에 엔피스를 추천해 드릴까 하다 그냥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 드리는 걸로 갈음했다.
거리에는 어제 금요일의 열기를 간직한 전단지가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어지러운 속세에서 빨리 벗어나고픈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본격적인 등산로에 접어들지도 않았는데도 숨이 달리기 시작했다.
“매일 운동을 하는데도 이거 좀 걸었다고 숨이 차네.”
투자건 뭐건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나의 평소 지론이었기에 주식을 시작하고난 뒤엔 코로나가 아닌 이상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강행했다. 주로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근력 운동을 하거나 복싱장에 갔는데 두 곳 모두 여의치 않을 때는 한강에서 자전거라도 타곤 했다. 특히 한계치에 다다랐을 때 나 자신을 더 몰아붙이곤 했는데, 이 모든 일종의 자학에 가까운 행위를 견뎌내는 원동력은 인고의 시간이 있어야만 원하는 걸 쟁취할 수 있다는 나만의 미신 때문이었다.
등산은 앞서 얘기한 모든 요소를 집대성한 종합예술이었다. 더군다나 신선한 공기와 멋진 풍광까지 무료로 제공했다. 그래서 주말 하루는 산을 찾았는데, 접근성이나 난이도를 종합 고려해서 주로 관악산이 낙점됐다. 특히 사당-연주대-과천향교 코스는 초반엔 경사가 꽤 가팔라 숨이 껄떡댔지만, 본격적으로 능선이 시작되면 옆에 펼쳐지는 풍광을 감상하면서 오르내리는 도정이 마치 깊은 산속에 들어와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근사했다.
“이제 이것만 넘어가면 정상이구만.”
뒤를 돌아보니 산세가 마치 주식 차트처럼 느껴졌다. 횡보가 길어지면 나중에 그 상승의 폭도 크기 마련. 기나 길었던 능선을 지나서 드디어 최종 고지탈환만 앞두고 있었다. 가방에서 물을 꺼내 몇 모금 마신 뒤 신발끈을 조이며 되뇌었다.
“그래, 피날레는 쩜상이다, 쩜상. 쩜상이야 쩜상!”
그렇게 아까는 희미했던 정상이 조금씩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