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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oche May 16. 2019

조승우, 누구보다 평범한 그래서 특별한

# 평범해지지 않으면 특별해질 수 없는 직업, 배우

나는 직업인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 또한 직업을 갖는다. 어떤 이는 샐러리맨으로서 기업에 몸담고 있으며, 어느 누구는 손님을 위해서 근사한 요리를 만들고,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고자 법치 구현에 앞장서는 이도 있다.

배우 또한 직업의 일환(一環)이다. 하지만 훌륭한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고리(環)까지 매끄럽게 연결해낼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 피땀 흘려 오랜 시간 갈고닦은 경지에 비록 완전히 도달할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극에서만큼은 마치 그런 것처럼, 아니 때로는 그 이상을 표현해내야 한다. 표현이 서투르거나 필요 이상으로 과장되면 대중들의 지탄과 뭇매가, 지극히 자연스럽거나 극적(劇的)인 경우에는 갈채와 찬사가 쏟아진다. 바로 이 대목이 여느 직업은 결코 가질 수 없는 배우라는 직업의 전유물이요, 그들만이 맛볼 수 있는 묘미다. 이 때문에 아무리 태생부터 비범(非凡)한 배우라 할지라도 끊임없이 평범(平凡)해지려 노력해야 한다.

# 조승우, 평범함의 이면에 드리워진 특별함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아니 오히려 여느 누구보다도 더 수수한 차림새. 링사이드에 걸터앉아 모자를 벗은 사내, 그는 바로 조승우였다. 자신을 알아보는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몸을 푼 뒤에 스스럼없이 살짝 서툰 섀도복싱에 몰입하는 모습, 그 또한 더할 나위 없는 조승우였다.



춘향뎐으로 데뷔한 이래 20여 년의 연기 생활 동안 특별한 부침 없이 묵묵히 배우로서의 길을 걸어온 조승우. 어언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었다지만 그에게 쏟아지는 유혹의 손길은 비단 충무로에서뿐만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거세질 따름이다. 그의 연기력에 대해선 평론가와 관객 모두 엄지를 추켜세우며, 대한민국 최고의 중견배우들과 함께 출연한 극에서조차 존재감 측면에서 그들 못지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조명이 꺼진 일상에서 마주한 조승우는 일견 그라는 사실을 눈치 못 챌 정도로 우리네 모습과 닮아있었다. 심지어 자다 깬 표정으로 모자에 눌린 머리를 긁적거리는 그의 모습은 <말아톤>의 초원이가 떠오를 만큼 어수룩했고, 우뚝 솟아 볼륨감 있는 코를 제외하곤 딱히 이목을 끌만치 눈에 띄는 구석도 없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슬몃슬몃 관찰하다 인사라도 건네 볼까 싶어 그의 반경으로 조금씩 접근하던 차, 순간 면도날 같은 예리함이 그의 눈빛에 스쳤다. 영화 <타짜>에서 아귀를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던 고니의 날카로운 시선이 떠올라 상호 간에 인사는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 타고난 영리함, 그러나 누구보다 우직하게


선악이 공존하는 얼굴이라는 세간의 평가. 이는 먼저 소개했었던 이병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이 두 배우의 색과 결은 비슷한듯하면서 다른 구석이 있다, 물론 둘 다 디테일한 감정 표현에 능하지만 이병헌이 풍부한 표정을 구사하는 데 반해 조승우는 극에서 이병헌만큼 다양한 표정을 구사하지는 않는다. 한데, 오히려 이걸 자신의 강점으로 변환해내는 생득적 배우로서의 영리함을 지녔기에 조승우는 자신만의 견고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이병헌이 배역에 따라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는 편이라면, 조승우는 묵직한 직구로 밀어붙이는 스타일. 하기야 잘 다져진 원투펀치만큼 실전에서 유용한 것도 없다.



그렇다면 그의 원투펀치, 과연 조승우라는 배우가 가장 잘 그려낼 수 있는 감정선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분노를 꼽고 싶다. 스스로 억눌렀거나 누군가로부터 억눌려왔던 것이 뇌관이 되어 일순간 폭발하면서 그간의 온갖 감정들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 봇물 터지듯 뜨겁게 솟구치는 감정. 그 분출량은 감정의 온랭(溫冷)과 고저(高低), 양 극단의 이격(離隔) 정도에 비례하는 만큼 그것의 행위자는 누구보다 차가워야 하며 동시에 누구보다 뜨거워야만 한다. 조승우는 이 분노라는 감정의 메커니즘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데다 어느 배역에서건 명쾌하게 그려낸다.

# 억압된 감정의 총체, 분노에 분노하라!

대표적으로 <지킬 앤 하이드>를 그 일례로 꼽을 수 있다. 2004년 초연 당시 뮤지컬 불모지에 가깝던 대한민국에 뮤지컬 붐을 불러일으키며, 당시 조승우에게 한국 뮤지컬 대상 남우주연상까지 안겨준 지킬역은 선과 악이라는 상반되는 두 인격체를 동시에 그려내야 한다. 때문에 난이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15년이 흘러 다시금 지킬역을 맡아 관객들의 앞에 선 조승우는 한층 더 안정된 가창력과 원숙한 연기력을 선보이면서 명불허전, 조지킬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특히 인간 심연의 이중성에 대한 조승우의 해석은 한층 더 깊어진 느낌이었다.


          
선을 대변하는 지킬은 악의 표상인 하이드와의 공존이 불가능하다 일갈하나, 사실 그 둘은 서로가 서로를 존재하게 만드는 불가분의 관계다. 이를 애써 부정하던 지킬은 종국에서야 이 양극단이 맞닿아 있다는 걸 자인하고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게 된다. 조승우의 지킬은, 인간 본연에 내재된 선과 악과 더불어 그 둘을 분리할 수 있다는 한 인간의 교만함, 그리고 그 원대한 꿈이 좌절됐을 때 일그러지고 분노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여과 없이 표현해냈다. 이런 그의 탁월한 해석력, 그리고 작품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는 <지킬 앤 하이드>뿐만 아니라 그가 출연한 모든 작품에서 여과 없이 드러난다. <말아톤>의 초원이에서 <타짜>의 고니, <내부자들>의 우장훈 검사에서 <비밀의 숲>에 황시목까지 그는 각각의 고리(環)를 배우 조승우로서 한데 묶어냈다.    



# 직업으로서의 배우, 평범함을 그려내는 특별함

“저는 그냥 별거 아닌 배우일 뿐이에요. 그동안 작품 복이 많았던 거 같아요. 제가 출연했던 영화 중에 잘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죠. 그럼에도 다 분명히 의미가 있는 작품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중심을 잡은 작품들이 대다수였거든요. 그래서 전 주인공이든 조연이든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아요.”

타고난 자질과 재능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평범한 사람들을 연기해낸 조승우. 어쩌면 그와 나, 그리고 우리 대다수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그저 평범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때로는 평범해지는 게 가장 어렵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평범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축복이요, 굉장한 행운이다.

“조승우, 평범할 수 있는 만큼 비범해질 수 있는 이 시대 최고의 재인(才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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