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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Nov 26. 2022

그냥 그렇게, 그런 식으로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부쳐

늘 그러했다. 업무든, 인간관계든, 공부든 괴로워야만 진전이 있었다. '과정을 즐긴다'는 것은 순간에 집중하며 몰입할 수 있을 때만 해당하는 경우였고, 보통은 버티기만 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든 보상은 주어졌다. 설사 노력한 모든 게 헛물켰다고 느껴지면 예상 밖의 뚜렷한 결과물이 나타나, 그런대로 원인과 결과를 비과학적으로 이어 붙이며 만족하곤 했다. 이런 방정식을 이미 꽤 겪어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그럼에도 차라리 덜 힘들고 적당히 살자는 마음이 수시로 이는 요즘이다. 


퇴근길에 지나는 '연신내 문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서점이다. 여기에 들르는 게 2주에 1회꼴로 반복하는 루틴이다. 지난주에 산 책은 3권인데, 제목에만 '생각'이라는 단어가 총 4번이 들어갔다. 글을 쓰며 '생각'이라는 단어는 의미가 포괄적이어서 최대한 사용을 지양하고자 하는 편인데, 막상 읽을 때는 그 '생각'이라는 것이 나에게 필요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요즘에 특히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른 2권의 책과 아니 에르노의 인터뷰집을 한 권 더 사서 계산하려고 보니, 표지가 죄다 녹색 계열이었다. 녹색은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주는 색상이라던데, 편치 못한 나날을 보내는 나는 역시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책을 읽는 듯하다. 이렇게 또 한 번 독서의 목적을 확인했다.


이번 주말 이사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진행되는 일이 지금보다 더 많아졌으면 한다. 사실 그러자고 배우고, 읽고, 쓰는 것일 터다. 심지어 셸 스크립트, 앤서블을 활용한 코딩도 궤를 같이한다. 게으르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에 더 집중하기 위한 여유를 늘리고 싶은 것이다. 지금은 해야 한다고 느끼는 일이 하고 싶은 일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 대체로 즐기지 못하고 견디고 있다.


이런 나에게 요즘 읽은 책들이 일관되게 던지는 조언은 이렇다. 그놈의 '생각'을 좀 덜어내고 몸의 감각에 집중하라고. 주의가 또 다시 생각으로 옮겨갈 때면 이 주의력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음을 확신하고, 차근차근 감각에 집중하는 연습을 시작하라고. 신경과학자, 심리학자, 인지과학자들이 조언하는 뇌 휴식법과 내가 정반대로 하고 있음을 깨닫고, 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개 주변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나는 또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고 이런 글을 쓰고 있다. 이러다 내가 못 견딜 지경에 이르면 그들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연습 정도는 해볼 심산이다.


다음으로 발행할 글은 견디는 과정이 아니라 이루는 과정 어딘가에서 쓰고 싶다. 이번 이사가 그 과정 변화의 마디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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