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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린 Aug 22. 2018

마지막 마지막

우리가 헤어진 데는 이유가 있었지

그와 헤어진 지 정확히 2년이 되던 날이었다. 이제는 오래된 영화처럼 잊혀 가던 그였지만 주기적으로 문득문득 안부가 궁금해질 때가 있었다. 그러나 다시 만나거나 연락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의미가 없는 행동이라는 것에 대해 외부 조언이라던지 친구들의 케이스를 통해 희미하게 교육받은 나는 불쑥불쑥 올라오는 감정을 지독히 눌러가며 행동으로 옮기지 않던 스스로를 대견히 생각하던 때였다.


그 날은 그런 나를 자조하기라도 한 듯, 충동적으로 차단 목록에서 그를 지우고 연락을 했다. 사귀던 때 와 사뭇 달라진 내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가는 중이야"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그동안 참아온 나의 이성은 온대 간데없었고, 10분 뒤 도착한다는 그의 문자가 내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고 있었다. 궁금할 뿐이었지 그와 직접 대면하고는 싶지 않았는데, 잘 지내냐는 나의 연락에 앞뒤 제쳐 두고 밤 10시, 그는 용인에서 강남까지 달려오는 행동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파스타와 곁들인 와인이 문제였는지, 집으로 오는 길에 들었던 슈가볼의 노래가 문제였는지, 그의 생일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던 것을 의식하고 있었는지 무엇 때문인지 콕 찝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주사위 굴리듯 어떠한 반응도 예상하지 않았던 나의 치기 어린 행동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그에게 한편으론 고마웠다.


나에게 있어서 그간의 모든 연애는 3개월만 지나면 모두 미화되기 마련이었다. 그게 참 바보 같다 생각했다. 그와의 연애 끝자락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복합적인 이유들이 어린 나를 괴롭혔었고, 긴 연애의 권태로움과 무심하게 변해가는 그의 모습을 견디지 못했던 20대 중반의 나는 우리 연애의 죽음을 온몸으로 앓으며 맞이했었다. 이별을 고하는 나도 힘들었고, 괴로워하는 그를 상상하는 것도 생살이 뜯어질 만큼 고된 일이었다. 서로 많이 사랑했음은 분명했으나 이별을 그렇게 쉽게도, 어렵게도 겪었다. 잔인하게도 기억은 3개월 뒤, 어김없이 그를 괜찮은 사람으로 미화시켰고, 아무 조건 없이 사랑에 빠졌던 우리는 아름다웠고 행복했었던 나의 모습만을 아련하게 피어냈다.


10분 뒤 도착이라는 그의 메시지에 어떻게 그를 맞이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옷은 뭘 입어야 하지? 머리는 왜 이래, 화장은 또 왜 이렇고?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벼운 친구처럼 맞이해야 할까? 아니면 무게를 잡고 진지하고 어렵게 대해야 할까? 온갖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카카오톡의 친구 목록은 왜 번호를 지어도 여전히 살아 있는지 의문스럽다며 괜히 메신저 탓을 하며 분주히 "꾸민 듯 안 꾸민 듯" 룩을 연출하고 있었다.


집 앞으로 온 그의 차 조수석에 올라탔다. 반가움보다 긴장감에 사로잡혀 마치 면접 보러 들어가는 사회초년생같이 떨었다. 보고 싶었다는 그의 말에 크게 웃으며 어색한 기류는 금세 사라졌다. 2년 전 보다 성숙해 보이고 멋있어진 그의 모습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나 또한 그렇게 변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삼십 분 정도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부모님과 가족들은 잘 지내는지? 서로의 친구들의 근황까지 말하며, 없는 사람 취급했던 2년간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서로를 따라잡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 때였나, 우리가 헤어진 이유에 대한 의문이 들 때쯤, 그는 내가 없는 동안 어떤 여자들을 만나 시간낭비를 했는지 자세히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의 소중함(?)을 어필하려 했던 행동이었리라.. 순진한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대목에서 순간 2년 전 내가 그에게 이별을 고하고 아파했던 모습이 눈앞에 영화 스크린처럼 생생히 되살아났다. 그의 잘 못도 나의 잘 못도 아니었지만, 우습게도 갑자기 차가워진 분위기에 서로 당황해하며 찝찝한 무언가를 흘리고는 잘지내라는 말과 함께 나는 차문을 박차고 집으로 올라왔다. 그를 잊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2년이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이제는 쓸데 없는 상상력과 함께 미화된 기억에 속지 않을 나이도 되었는데, 오늘도 옛 연인들을 생각하면 모두 아름답고 멋있는 사람들로 추억되며 그런 그들과 헤어졌다는 사실에 대한 괴로움과 그리움의 감정에 연연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나 다시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데는 추억은 추억으로 고스란히 두는 것이 더 아름답다는 것이 정설임을 깨달았기 때문이고, 힘들게 헤어짐을 고했던, 많이 아팠던 그 날의 나에 대한 믿음과 위로의 표현 임이라.


Inspired by 마지막 마지막 - 슈가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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