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날 소개팅에 대한 단상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우리가 연인인지. 우리가 연인이기에 사랑하는 건지. 어떤 것이 무엇을 앞서는지 희미하다.
대충 이제껏 나의 연애 패턴은 이러했다. 나를 좋아한다는 남자들이 있으면 나에게 가장 잘 해주는 남자를 골라 처음에는 그에 대한 감정이 미미하거나 없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내가 더 좋아하게 된다. 잘 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게 좋아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무나 와 연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소개팅이 제일 아이러니하다. 소개팅에 나온 남녀는 둘 다 연인이 되길 소망하며 나온 사람들인데, 여기서 서로 맘에 들면 만나고 맘에 들지 않으면 영영 만나지 않는다.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밥을 먹으며 시답잖은 질문들로 알아 가다가 연인이 되길 결정한다. 또 주선자는 어떤가, 그대와 내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개인의 경험을 통한 직관적 판단과 둘 다 만나는 사람이 없어야 하는 타이밍까지! 주선자가 의도적으로 세팅했으나 당사자 입장에서는 랜덤 한 만남의 장은 말이 안 되는 제도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종종 다소 격정적이었던 나의 연애들 중 몇몇이 소개팅으로 시작된 관계임을 보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요소들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두 사람이 소개팅이란 자리에서 반하는 것이 신기했다. 이렇게 목적이 눈에 보듯 뻔하고 로맨틱과 거리가 먼 매력적이지 않게 세팅된 자리에서 말이다.
동시에 그 자리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왔었더라도 결과는 비슷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곤 했다. 내가 아니라도.. 그 시간 그 장소에 있던 상대가 내가 아니었어도, 그는 같은 선택을 했었을까? 우리가 됨은 내가 특별해서였는지 그때 나를 먼저 알아봐 준 당신이 느끼던 외로움이었는지, 또는 고작 한 번의 만남만으로도 나의 특별함을 알아챘던 그는 정말 나의 "인연"이었던가 하는 찰나의 연단 생각이 낳은 가볍지만 어려운 근본적인 의문 말이다. 이러한 의문에 대답하지 못한 채 어김없이 말이 안 되는 소개팅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나를 스스로 웃기다 생각했다.
대체 가능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그에게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우리는 무엇에 근거하여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 내가 너와 만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벚꽃이었을까 너의 가죽 향이 나는 향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늦은 가을밤 나를 데리러 온 너의 온기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