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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REAL Life Nov 30. 2020

속도전이라는 강박의 발효

Feat.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흐를때가 있잖아요


#1.

초가을에 접어든 저녁.

 

시원한 바람결이 좋아 자전거를 들고

한강변으로 나온다.


탁 트이는 시야와 흔들리는 들꽃들은

가을이 오는 청량감을 갖기에 충분하다.


자 어디를 갈까 고민도 잠시,

저 멀리 불빛으로 가득한 선유도를 점지하곤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가마솥 무더위가 지나가고

두 달 만에 느끼는 시원함에


그간 쌓여 있던 스트레스도

깃털처럼 날아가는 듯 한 시간.

 


#2.

선유도 안쪽에 있는 정자에 다다른다.


사람들도 별로 없어 조용하고

주변의 멋진 경치를 품어 항상 찾는


나의 “히든 플레이스”.


한적함을 느끼며 정자에 누워

가을 바람 결에 땀을 식힌다.


변함없는 고요함에

그간의 번잡한 고뇌들도 풀리는 느낌.


‘이 좋은 곳을 이렇게나 오랜만에 오다니...’

라는 혼잣말을 시작으로

살면서 덕지덕지 붙어버린 생각부스러기들을

지워낸다.


사실, 여기까지 오는데

날 가장 망설이게 했던 녀석을 꼽자면


자전거를 꺼내 집을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마음”.


‘덥지 않을까? 위험할 수도 있는데…

사람 때문에 많이 번잡할꺼야’ 같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들 덕에


매번 마음을 접었더랬다.


하지만 자전거를 꺼내고

페달을 밟기 시작하니


그 고민들은 힘을 잃고 사라진다.



#3.

우리 인생도 그런 것 같다.


하나를 실행하기에 앞서 놓여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들과

시작의 힘 겨루기에,


우린 마지못해 둘 중 하나에 손을 들어주곤

안도와 후회를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고민 패키지는

으름장, 위협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힘조차 쓰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


설사, 그 고민대로 사건사고가

자신을 괴롭힌다 할지라도


그 상황에는 꼭 피할 길이 분명히 생기는게

우리네 인생이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 장애와의 씨름”이

선사해 준 문제는 정작 다른 곳에서 발생한다.


즉, 그 치열한 힘겨루기에 살아남은 나머지

선택지는 결국 우리에게

그 역할에만 심하게 포커싱하게 만든다는 것.


어렵게 자전거를 꺼낸 우리는

자전거여행을 즐기기 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 역할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4.

물론, 운전자로서의 충실함은 필요하다.

하지만 너무나 치우쳐진 충실함은


내가 왜 자전거를 타는 지의 이유뿐 아니라

가는 방향에 놓여진 풍광 역시 놓치게 한다.


페달을 어떻게 밟고 기어를 언제 넣을지에

포커스된 생각만이 그 여정의 대부분을 채우는 것.


결국, 운전에 올인된 생각은 속도에만 치중되고

결과값으로 빨리 더빨리 도착하는 데에만 휩쓸려

결국 목적지까지 연결된 맥락은

볼 엄두조차 못 갖게 한다.


그렇게 “과정의 미학”이라는

여행의 본질을 놓친 채,


운전 코스가 기록된 지도를 들이 밀며

‘오늘은 어디를 찍고 왔다’는 자랑감 만이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엄청난 스피드가 찍혀진 속도계를

훈장처럼 페북에 업로드하면서 말이다.



#5.

선유도 정자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찰나,


무섭게 과속하는 자전거들이 눈에 들어 온다.


요란한 복장과 화려한 조명으로 이리저리

곡예운전을 하는 모습에

위험한 속도전이 펼쳐지고 있는 한국사회가

나도 모르게 오버랩 된다.


자전거 조차 저렇게 속도를 내야

속이 후련해 하는 라이더들의 모습에서


한국사람들에게 퍼진 속도전의 강박이

떠올려진 것.


그 화려한 스피드 세팅으로

도로를 질주하다 사고가 나는 모습에서

속도에 취한 한국사회의 다음 스텝도

우려되기 시작한다.


왜 그리도 서둘러 가야만 하나 라는 생각 끝엔

결국 너무나 실히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이 

다시 그려진다.



#6.

가끔은 각자의 역할의 무게감을

덜어내는 것은 어떨까?


삶이라는 풍광을 음미하며

삶의 본질을 맛 보는 인생을 지켜준다면


우리의 하루는 어떻게 바뀌어 갈까?


과정의 미학, 인생의 풍광과

삶의 이유를 찾는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

“코로나19” 이길 바라며


먼 훗날 한국에 퍼진 속도전이

“생의 의미 쌓기”로 발효시키는


또다른 시작이 되길 기도한다.


이런 저런 생각을 접어두곤, 다시 마스크를 착용한다.


그래, 다시 달려보자.



*데일리경제 칼럼 [윤한득의 안테나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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