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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r 28. 2020

지독한 독감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프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

 기세가 꺾인 줄 알았던 코로나19가 아직도 뉴스를 도배하는 지금, 독감에 걸렸던 몇 년 전의 일기를 꺼내보게 되었다. 기억해보려 애써도 머릿속엔 남아 있지 않은 그때의 느낌이 글로는 생생하게 남아있어 독감이 이렇게 아픈 것이었던가 했다.


201X년 12월 어느 날

오전 01:44


 잠도 못 잘 정도로 아파서 수면제 대신으로 멜라토닌을 먹었다. 3시간 동안 자는지 뒤척이는지도 모를 정도로 누워 있다가 지금은 아예 일어나 앉았다. 아프다는 그 강렬한 느낌으로 인해 직장이 나의 안중에 전혀 없을 정도로 ‘지금, 여기’에 충실하고 있다. 작년에도 전염의 우려 때문에 눈병으로 병가를 3일 정도 냈었는데 직장(학교)에서의 책무 때문에 불안감을 못 견디고 다시 나갔었더랬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제고할 여유조차 없다. 평범한 일상이 먼 얘기로 느껴질  정도로 독감이 이렇게 지독한 것인 줄은 몰랐다.


 내가 마지막으로 독감에 걸린 지가 언제지? 때는 초등학교 6학년, 하필 현장체험학습 당일, 체온이 40도나 될 정도로 열이 펄펄 난 적이 있다. 엄마는 내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현장체험학습을 못 가게 막았다. 그 때문에 이모의 임종 소식을 집에서 들었고, 엄마가 그렇게 크게 우시는 것도 처음 들었다.


 아프다는 느낌은 정말로 원초적이다. 가장 크게 아픈 부분은 가슴인데, 심장이 죄여 오는 것 같은, 왼쪽 가슴이 사방으로 막힌 듯 답답한 느낌이 든다. 그다음은 머리. 앞이마를 강하게 누르면서 뒤통수에 구멍을 내서 천천히 쑤시는 것 같은 두통이 있다. 다음은 코다. 재채기를 가끔 하는 것은 불편하지 않지만 이렇게 금방이라도 재채기가 나올 태세로 상시 코가 매운 것은 두통과 연결된 고통이 수반된다. 재채기, 콧물, 기침과 같은 단순한 감기 증상과는 차별화된 고통이다. 물론 이 단순한 증상들은 앞에서 설명한 모든 고통에 함께 포함되어 있다.


 나 스스로를 가엾게 여기는 것은 이 지독한 신체적 고통만이 현재의 고통을 모두 대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프면 정신에 대한 공격에 취약하다. 며칠 전 사랑에 대한 영화를 본 것으로 인해 이제는 거의 묻어버린 줄 알았던 이별의 고통이 되살아났다. 마음에 구멍이 나서 그 구멍 안으로 나의 일부가 천천히 잠식해 가는 것 같았다. 그 구멍은 블랙홀이며 빛도 모두 집어삼키는 칠흑 같은 어둠이다. 그런 블랙홀과 가장 가까운 부분부터 시작해서 나의 일부는 너무 깊어 끝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빨려 들어간다.


 다른 하나는 불안, 두려움이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할 때, 나는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감이다. 박사 합격 여부는 결정이 났을까? 요즘 대학원 입학 일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걸까? 사실 내가 요새 이렇게나 아팠던 건 박사 과정 준비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다. 의사도 설명하지 못하는 그것은 본인이기에 안다. 너무 원하면 집착도 커지는 법이다. 목표와 자아 간 균형은 주객이 전도될 때 깨져 버린다. 가장 좋은 것은 나 자체가 원하는 그 목표란 것을 초월하는 것이다. 원하는 그것을 손에 넣지 못하더라도 나는 나다울 수 있어. 나를 잃어버리지 않아.


 빨리 이 지독한 독감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일이 바쁘니 차라리 병가를 쓰고 푹 쉬면 좋겠다고 생각한 내가 어리석었다. 이렇게 아파서는 할 수 있는 게 정말 없다. 나를 구석구석 채우고 있는 고통과 나의 깊은 곳에 침잠되어 있던 슬픔이 고개를 들고일어나 나를 마주 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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